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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4.2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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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340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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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나라에 갔을 때 많이 놀랐던 것 중 하나가 타민족들이 이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신들만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거였습니다. 당연히 그러다보니 그 문화권의 문물들도 상당히 들어와 있었지요. 제가 머물던 곳이 동대문과 을지로 6가가 만나는 곳이었는데, 그쪽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에서 오신 분들이 비즈니스를 왕성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드카를 참 쉽게 마실 수 있더군요. 매우 저렴한 것부터 꽤 값 나가는 것까지 다양한 보드카를 미국에서보다 더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보드카는 소주와 궤를 같이 하는 술이지요. 처음 미국 왔을 때, 이곳에서 소주를 구할 수 없어서 싸구려 보드카를 사다가 여기에 스플렌다나 스윗 앤 로 같은 인공감미료를 아주 조금 넣고, 보드카의 양만큼의 물을 부어 소주를 제조해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 한국에 갔다오면 꼭 소주를 사오곤 했었죠.

아무튼 지금은 제 기준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그 소주를, 친구들을 만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는 건 한국에서나 누릴 수 있는 일입니다. 공공교통도 잘 돼 있고 대리운전도 흔하고, 무엇보다 소주값이 저렴하고. 식당 가면 소주 한 병에 적게는 11달러, 많게는 20달러 이상도 내는 게 이곳의 현실이고, 그러다보니 소주 같은 독주를 마시고 싶으면 마켓에서 사다가 집에서 마시는데, 그 소주 한 병의 가격이 7달러 정도고, 앞으로는 더 오른다고 합니다.

아무튼, 보드카 이야길 하고 싶었던건데 이렇게 이야기가 딴데로 새네요. 그나마 지금은 한국마켓이나 중국마켓에서 소주를 팔고 있지만, 대용품은 늘 보드카였습니다. 싸구려 보드카에 물을 타서 마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름만 들어본 유명 보드카들을 소주 대신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좋았습니다. 식당 가면 이상하게 한국인들은 크라운 로얄이라고 하는 캐나다 위스키들을 마시곤 했는데, 저는 이게 잘 안 받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자리에선 이걸 마셨지만, 저는 깔끔한 보드카를 더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코스트코 보드카를 사다가 소주병에 소분해 놓고 마시지만, 가끔은 브랜드 있는 보드카들을 살 때가 있습니다. 이때 손이 가장 먼저 가는 게 스톨리치나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소련에서 생산됐다는 이유 때문에 이를 러시아 보드카로 생각하지만, 지금은 라트비아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라트비아는 나토의 일원으로서 러시아에 각을 세우고 있지요. 러-우 전쟁 발발 당시 미국에서 러시아 물건에 대한 자발적 불매운동이 일었는데, 그때 제일 피본 회사중 하나가 이 스톨리치나야입니다. 아무튼 그리고 나서 스톨리치나야는 앞으로 이름을 그냥 '스톨리'라고 바꾸기로 했다지요. 하지만 이 보드카에 입혀진 인상이 너무 러시아적이어서, 바꾸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합니다.

스톨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게 알코올의 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는 겁니다. 보드카는 곡물 주정을 숯에 얼마나 많이 여과하고 또 증류 과정을 몇번 거치는가를 가지고 급수가 정해진다고 보면 되는데, 스톨리치나야는 동유럽에 즐비한 자작나무로 만든 숯을 가지고 여과를 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참 부드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소주 같은 느낌도 듭니다. 단지 우리 전통 증류식 소주가 갖고 있는 특유의 곡물향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연속증류의 단점이긴 하겠지요.

가끔 제대로 된 설렁탕엔 이렇게 소주 비슷한 보드카가 딱입니다. 설렁탕은 아무래도 오래된 가마가 있고 그런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계속 끓이는 것이 관건이겠지요. 그렇다보니 이제 시애틀에도 자리를 오래 지키고 꽤나 맛있게 설렁탕을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전통설렁탕'이란 곳이 있어서 가끔 가는데, 둘이서 먹으면 설렁탕 한 그릇당 $15.99에서 $20.99, 여기에 수육이라도 시키려면 또 25달러에서 30달러 이상, 그리고 세금에 팁까지 하면 둘이 가서 백불 가까이 쓰고 오는 건 일도 아닐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소주까지 한다면...

맛은 너무 좋은데, 이런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지요. 그렇다보니 테이크아웃(여기서는 투고 To Go 라고 합니다)을 해서 집에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팁은 안 내도 되고, 또 설렁탕을 먹으면 소주 한잔 해야 마땅하고 옳은 일처럼 느껴지는데, 음주운전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술 놓고 마음편하게 설렁탕 한 그릇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물론 그 설렁설렁 끓어대는 뚝배기의 맛은 아쉽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설렁탕에 스톨리 한 잔 했다는 이야길 이렇게 길게 빼고 마네요. 아주 차갑게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보드카를 꺼내어 마시는 맛도 좋지만, 스톨리 정도면 노지로 마셔도 나름 괜찮습니다. 저렴한 보드카들은 실온에서 마시면 알코올의 킥 때문에 역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전통의 스톨리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일요일 오후와 설렁탕, 그리고 스톨리치나야는 꽤 괜찮은 조합이지요.

어쨌든, 그 '러시아의 이미지'로 먹고 살았던 스톨리치나야는 이제는 '스톨리 보드카'로 이름을 완전히 바꿨고,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것처럼 자기들은 라트비아 술이라며 러시아의 그림자를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뜨끈한 국물 안에 담긴 양지와 도가니 등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그 집에서 내어 준 깍두기도 한 조각 먹으며 털어넣는 보드카 한 잔이 사실은 '진짜 소주'이지요. 우리네 희석식 소주가 갖고 있는 노동착취와 농민착취의 서사와 스톨리 보드카가 갖고 있는 서사는 조금 다른 걸까요? 아무튼 밥 먹으면서도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 하다가 탕이 다 식었을 때 다시 조금 더 끓여야 했습니다.

지난번 한국 갔을 때 갔던 '이남장'이라는 노포 설렁탕 집이 생각나네요. 그곳에서 먹었던 설렁탕과 함께 한 빨간 뚜껑 소주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아무튼 가슴을 찌릿하게 만드는 보드카는 아직 봄기운과 겨울 기운이 섞인 시애틀에 잘 어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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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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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2 21:56
    베스트

    지난주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이제는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더군요. 싱가포르에서 한국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이전에는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사람은 오히려 소수이고 외국인이 더많더라구요. 한국이 이만큼 국제적으로 성장했는데 민주주의는 퇴행을 하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고양이네마리 작성자
    2024.04.22 22:38
    베스트
    @멜번시민

    일단 멀리뛰기 도약을 위해 한 발 물러섰다고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도 듭니다. 퇴행한 건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설마 이런 일을 통해 발전의 계기가 완전히 사라지겠어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지난한 역사도요.

오버씨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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