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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8.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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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5832292

미국 경제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오늘만 봐도 어제 대비 다우지수 산업지수는 -2.8%, S&P 500 지수도 3% 빠졌고,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계속해서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일본이 이른바 엔캐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실제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는 게 문제입니다.

꺼내기도 싫은 단어, '리세션', 즉 불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불황은 시작됐지만 이것이 드디어 실물경제와 숫자로 이뤄지는 금융경제 모두에서 제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돈을 쓸 여력이 없습니다. 실제로 마켓이나 식당에 가 보면 한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돈을 쓰기가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는 올랐습니다. 2년 전 이맘때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면 50-100 달러 선에서 끝나던 것이, 뭐 특별히 더 사는 것이 없는데도 쉽게 2백-3백달러가 나옵니다.

소고기 좋아하던 미국인들이 돼지고기로 갈아타고 있는 것도 눈에 보입니다. 일 마치고 코스트코 가 보면 푸드코트 앞에서는 $1.50 짜리 핫도그를 먹기 위해, 혹은 $9.99 에 팔리는 피자 한 판을 사서 집에 가져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곳들만 호황이지, 동네 마켓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오른 이자율 때문에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고, 그나마 그 사업체마저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몇몇 아주 잘 나가는 식당들을 제외하고,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판데믹 때보다도 더 나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인들이 많이 경영하는 식료품점이라던지, 세탁소나 테리야키 레스토랑 같은 곳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폐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특히 소규모 식료품점들의 폐점은 지금껏 절대로 주유소와 그로서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어떤 불문율 같은 것을 깨 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다 저렴하게 휘발유를 넣기 위해 세이프웨이나 프레드 마이어, 코스트코 같은 대형 체인점에서 쌓은 포인트를 사용하며 갤런당 몇 센트라도 더 저렴하게 주유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고, 장을 보는 횟수도 줄이고, 외식은 아예 하지 않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주거비도 엄청나게 올라 수년 전 1천달러가 안 되던 아파트 평균 렌트비가 지금은 2천달러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거리의 인생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을 잉태한 건 로널드 레이건 시대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시절부터 구축해 놓았던 각종 사회복지 혜택들이 무너지고, 부자들에 대한 대규모 감세가 벌어지고, 한번 이렇게 후퇴한 것을 다시 돌려놓겠다는 정치인들은 나오지 않았고, 대기업과 해외 자본들이 제공하는 정치자금에 중독된 미국 정치는 국민을 위해 제대로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냉소적이 된 국민들에게 한때 희망의 불빛이 됐던 게 버니 샌더스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득권들은 실제로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았던 그보다는 민주당 내의 기득권 세력의 상징 같았던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고, 기성 정치에 지긋지긋해하던 미국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하면서 미국은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졌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들 속에서, 팬더믹 때 뿌려진 엄청난 지원금도 다 소진되고, 그 후로 신용카드 빚을 내어 살아온 미국인들은 더 이상 빚을 낼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한꺼번에 쓰나미로 밀어닥치며 미국은 이제 확실히 나락으로 가고 있는 중인 것이 제 눈에도 쉽게 띌 정도입니다.

지금껏 미국이 경제가 호황이니 어쩌니 했던 뉴스들은 실제 이곳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겐 와 닿지 않는 뉴스였습니다. 좋은 일자리들은 사라지고, 노조에 가입된 미국인들은 10%가 안 됩니다.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매우 듣기엔 매끄러운 말로 해고가 쉽게 자행되는 이 나라에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모두 모여 지금 폭발의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돌리기 마련이고, 미국의 극우화는 이런 지점에서 위험하게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리세션을 넘어 '디프레션'으로 넘어가면, 이곳에선 다시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그려졌던 상황들을 보게 될까요.

저야 어떻게 살겠지요. 하지만 우리 애들이 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지. 아메리칸 드림의 맨 끝자락에 올라탄 사람으로서 그냥 미안하고 가슴아플 뿐입니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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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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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운 사례들로 미국 경제에 대해 짚어주셔서 이해하기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미국 유학을 준비중인 조카가 있는데 가게되도 현지 생활이 쉽진 않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부탁드립니다

  • 고양이네마리 작성자
    2024.08.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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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Blue

    예 감사합니다

  • 2024.08.0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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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불황 때는 라면 잘 팔린다는데 삼양 불닭볶음면은 잘 팔리나요?

    미국 물가로 비싸서 사람들이 안 먹을 거 같은데

  • 고양이네마리 작성자
    2024.08.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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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싸웰

    라면은... 정말 많이 팔리고요, 제 직장 동료들도 쉬는 시간에 라면들 많이 먹더라구요. 

  • 2024.08.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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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네마리

    불닭 볶음면이 많이 팔린다니 다행이네요

  • 2024.08.07 13:13
    베스트

    유튜브 보다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살기 좋고 일자리도 잡기 쉬워서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 고양이네마리 작성자
    2024.08.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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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사는이유

    삶이 어디서든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이민오시는 분들은 아마 많이 못견디고 돌아가시는 듯... 컴퓨터 같은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곳 생활이 빨리 적응되실 수 있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요즘은 정말 추천 못합니다. 저도 과거엔 무조건 미국 오시는 게 좋다고 강조했던 사람인데... 미국의 펀다멘털이 정말 안 좋아졌어요. 특히 신참 이민자들에겐 제가 보기엔 잔인하다... 고 느껴질 정도네요. 저는 1990년에 부모님 따라 미국에 왔으니 여기서 산 지 34년 됐구요. 

  • 2024.08.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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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네마리

    어딜 가나 먹고 사는 게 힘들군요...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정말 모르겠네요..

오버씨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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