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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작문/소설/대본] 광우동상(狂牛銅像)
2022.10.1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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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902632

어느 도심에 한 소년이 살았다. 그 소년은 숙제가 끝나면 도심 한복판 광장의 모퉁이에 시무룩하게 서 있는 광우동상(狂牛銅像)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를테면 도심에서 제일 부자인 청기와집 아저씨가 밀수를 했는데 경찰이 눈감아 줬다는 이야기와 함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대해 들려줬다. 한참을 광우동상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면, 소년은 굳은 표정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광우동상에게 키스를 날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어깨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 버리듯 광우동상은 설레는 마음으로 소년을 기다렸다. 소년은 봄비를 맞으며 광우동상을 보러 갔다. 광우동상은 소년에게,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겨울 내내 기다렸어. 내 사연은 그 어떤 하소연으로도 부족할 거야. 그건 인간에게 저주가 씌어서 그런 거야. 투쟁을 시작해. 그러면 내 머리가 맑아져 하늘 위에 있는 인연과 연분이 닿을 거야. 비록 지상에서는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하며 슬픈 표정을 내보였다. 소년이 "투쟁?"이라고 반문하자, 광우동상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고 속삭였다.


소년은 집으로 곧장 달려가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비오는 광장의 한 복판에서 스피커로 외쳤다, "투쟁하라, 투쟁!", 그때 슬픈 광우동상의 얼굴이 소년의 얼굴 위로 아른거렸다. 거리의 광대도 경찰들도 가게 주인들도 모두 모여 투쟁을 도모했다. "자유를 위하여!",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소년의 고함 소리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소년이 힘주어 "투쟁!"이라고 목청껏 다시 외치자, 소년의 가짜 콧수염이 떨어져 시민들에게 들통났다. 체구가 큰 편이라 어른이라고 착각했던 그들은 이내 눈치를 채고 소년에게 따져 물었다, "누구를 위한 투쟁이야? 우리를 위한 투쟁인 줄 알았는데 고작 저 광우동상을 위한 투쟁이었어!", 하며 탄식했다. 실망한 시민들은 제 각각 흩어져 자신의 일에 다시 열중했다. 거리의 광대들은 제 갈 길을 갔고, 경찰들은 언제나 그렇듯 잡범들을 때려잡으러 돌아갔고, 가게집 주인들은 상품을 열심히 팔아대기 시작했다. 허탈해진 소년은 광우동상 앞에 서서 흐느꼈다.


갑자기 우렛소리와 함께 광우동상의 머리통이 하늘로 치솟으며 소년에게 외쳤다. 고맙다고, 투쟁 뒤에 자유가 있을 거라고. 봄비가 그치고 따스한  햇살이 광우동상의 목잘린 몸뚱이를 더욱 빛나게 했다. 소년은 점점 하늘 위로 사라지는 광우동상의 머리를 바라보며 눈물의 미소로 화답했다. "투쟁하라, 투쟁!",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행렬 속에서 소년은 투쟁을 외치며 집으로 내달렸다. 광우동상이 서 있던 공간은 서글픈 소년의 마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https://youtu.be/wfzoyDOXf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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