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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6.29 09:59
75
7
https://itssa.co.kr/14965266

※출처 BBC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v2200y0860o 

 

위 링크는 6월 28일자 BBC코리아 톱에 뜬 기사 내용이다.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이런 현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나도 몇 번인가 은둔형 생활을 해본 적 있다. 다만 방안에 콕 박혀 가족과 관계를 단절한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순전히 나의 가족과 나의 성격 덕에 심각한 수준까지 고립되진 않았지만(부모님 속은 많이 타들어갔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득했던 경험이다.

 

간단히 내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대학 졸업 후 작가 되보겠다고 1년간 방에 틀어박혀 글만 썼다. 물론 실패했다. 두번째는 4년 정도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취업한다면서 1년 정도 나 스스로를 가두고 방치했다. 세번째는 4~5년 정도 직장생활 하다 그만두고 2년을 틀어 박혔다. 이때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든 시점이라 정말 아득하다 못해 아찔했다. 그럼에도 운이 좋아 다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은둔형 외톨이들을 돕기 위한 한 단체 대표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 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이유를 '관성'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완전히 공감한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방으로 숨어 들어가는 건 '관성'이다. 그래서 이 관성을 끊어내는 노력과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겪어보기 전까진 절대 모른다. 또 어디선가 이렇게저렇게 하면 된다더라 떠들어도, 은둔하는 사람들마다 사정이 달라 명확한 해소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낚시와 같다. 찌는 던지지만 스스로 물기를 기다려야 할뿐이다. 그 찌를 바꿔가면서 말이다.

 

문득 은둔형 외톨이가 왜 생길까 하는 고민을 해봤다. 흥미롭게도 집에 '개인방'이 생긴 것도 한 이유라고 본다. 최소한 나 자신을 가둘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방으로 은둔할 수 있다. 과거 온식구가 단칸방에 살던 시절 은둔형 외톨이가 가능할까. 그때는 그냥 가출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길거리 노숙자나 방에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나 머무는 공간의 차이만 있을뿐, 닫혀버린 심리 상태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신세 아닐까.

 

개인적으로 고립된 이들의 행동반경을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도 방 밖으로 나오길 꺼려한다. 가족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족들이 다소 규칙적으로 비우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면 그의 행동 반경은 방에서 집으로 넓어질 수도 있다. 행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마음의 공간도 넓어진다. 넓어진 공간만큼, 비로소 자신의 고민과 두려움이 얼마나 작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고립된 이들 중 일부는 산책을 하거나 제한된 사회활동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들의 경우 조금만 더 도움을 준다면 훨씬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경험했던 것 중 가장 큰 도움은, 바로 '나의 기록'이었고 그것이 주는 작은 성과였다.

 

은둔 백수시절 2년째 접어들 무렵이다. 이전 직장에서 겪었던 상처와 분노 그리고 새로 시작하려던 일의 좌절이 나를 예상보다 긴 은둔생활로 몰아 넣고 있었다. 절대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아득하고 아찔한 시간을 스스로 끝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겉으로 가족들에게 괜찮다며 너스레 떨었지만(언급했듯이 나는 가족과 단절하진 않았다), 정말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문득 오래전부터 하려던 일이 하나 떠올랐다. 파란만장했던 나의 직장생활을 정리해 적어보자는 계획이다. 첫 회사를 두번이나 입사하고 퇴사했다. 그곳에서의 일을 적어보자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 당시의 기억들은 지금도 기억이 날만큼 강렬했던 경험이었다. 출판이나 웹에 게시하는 목적은 아니다. 개인 블로그에 1~2일에 한 편씩 써서 올렸다. 과거 업무노트까지 뒤져가며 뒤섞인 기억들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불과 2년의 기록이었음에도 12편 정도의 글이 나왔다. 그리고 9편째를 쓰고 있을 때였나,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이때는 이런 일들을 이렇게까지 해냈는데, 지금 내가 다시 일 못할 건 없지?"하는 마음이 들어 구인공고를 보던 중, 뜻밖에 나같은 놈에게 딱 맞는 일을 하나 찾았다. 두번째 시도만에 성공했다. 그리고 입사 전 마지막 글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끝냈다.

 

'나의 기록'을 꾸준히 쓰는 건 꽤나 효과가 있었다. 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시간으로 기억된다. 글을 쓰는 시간과 글에 담긴 시간들. 지금 당장은 내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과거 시간을 유용하게 썼던 나를 상기시킨다. 내가 쓸모 있었다고 느끼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글 한 편이 마무리될 때마다 나의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작은 성공'을 느낀다. 경제적 소득은 없을지라도, 나의 생명을 살리는 소득인 셈이다.

 

또 글을 쓰면서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뭔가를 찾아보고 적절한 단어와 좋은 표현을 찾는 노력. 내가 다시 '노력'이라는 걸 한다는 걸 스스로 각인시킨다. 고립의 또다른 말은 '방치'다. 스스로를 놓아버린 것이다. 그런 내가 다시 방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의 지나온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물론 쓰다보면 더 좌절하거나 글이 엉뚱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물이 좋든 나쁘든 글을 좋게 써보고 싶다는 욕망과 노력이 나를 변화시켰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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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링크에 따르면 2023년 은둔형 외톨이 인구를 54만명 정도로 추산(보건복지부 자료)하고 있다. 물론 폐쇄 정도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멀쩡히 잘 키운 청년들이 이 정도 숫자가 잉여인력으로 남아 있다는 건, 사실상 국가적 재난이라고 본다. 저출산 걱정을 하며 애 많이 낳아 기르라는 소리는 과거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코나 할 법한 소리가. 마치 동네 들개들 때문에 닭이 잡아 먹히는 판국에 남은 닭들이 달걀 적게 난다고 걱정하는 꼴 아닌가. 들개부터 잡아야 한다. 은둔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은둔생활은 일종의 '관성'을 갖고 있다. 관성의 꼬리를 끊기 위해선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 모두의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다. 위 기사에 나온 부모들(고립청년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모들)은 적어도 그 도움을 주고자 상담을 시작한 부류다. 국가도 저출산 해소 타령만 하지 말고 이런 문제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오늘도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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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9 10:00
    베스트

    차비가 없어서 안 나갔던 기억도..

  • 2024.06.29 10:11
    베스트

    기록을 통해서 삶을 성찰하고 성장해온 느낌이 물씬 들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느낌이 들어요. 그 기반이 된게 가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둘째아이가 심리상담을 받는데 상담사께서 늘 해주시는 말씀도 그거에요. 아이가 바람에 아무리 흔들려도 뿌리가 튼튼하면 얼마든지 극복할수있다고 그 근간이 가정이라고.  님 글 보면서 다시한번 상기하네요. 다음글도 기대해보겠습니당 좋은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