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날, 길가다 마추진 노숙자는 저무는 겨울 햇살을 만끽하며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방석삼아 앉아 있는 모습이 초연했다. 그가 끌고다니는 낡은 유모차엔 빛바랜 신문지 뭉치가 세탁한 옷들처럼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그 해 겨울 이후, 그 노숙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해 여름에 자전거를 타다가 원주 단구동 근린공원에서 몇 번 마주쳤던 게 전부였다. 그땐 행색이 노숙자처럼 보였는데 마지막 모습은 걸인에 가까웠다.
매서운 한겨울 동안 계속 노숙하며 추위를 견뎌낸 모습이었다. 노숙자의 코와 입 주변이 추위로 벌겋게 텄더랬다. 머리는 망나니처럼 뻣뻣한 산발이었고, 몇 달 동안 씻지 못했는지 바싹 마른 낙엽처럼 푸석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나의 소심함으로 인해...굳이 그의 독서삼매경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내심 저 걸인에게서 부러움을 느꼈던 건 디오게네스처럼 모든 물질로부터 초월한 자유였던 것 같다. 아무나 부러워할 수 없는 자유였기에, 나는 몹시 서글펐다!
댓글 1
댓글쓰기문학적 표현이 느껴져 멋지네요.
몽골고원에서 천상의 노마드 같은 삶을 꿈꾸는 그런 사람일까요? 그냥 적자생존 경쟁에 낙오되어 어쩔수 없이 떠밀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일수도 있잖요.
현 세상에서 노자나 디오게네스, 성철스님 같이 깨달음을 얻고 의도적으로 은둔 자적,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나 현 시대의 물질과 과학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인간은 더더욱 가능성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