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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3.11.1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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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7810188

우리 집안에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들이 몇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끔찍한 현실이 옥죄서가 아닌 삶에 대한 회의감 때문인듯. 

현실에 강요 당하지 않는, 삶 그 자체가 더러 무거워 짐 덜듯 육신을 두고 떠난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결심 직전 그들을 만났다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고, 또 나 자신에게 상황을 입혀봐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그들은 결심을 굳혔을까. 그만큼 확신을 가진 선택들이었을까. 

다만 그런 것조차 물을 용기가 내겐 없다. 그들의 고민을 내 안에 담을 그릇이 내겐 없다.

-

 

죽음은 두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훌륭한 보험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다. 혹여 운이 좋아 만만한 현실을 살아간다면, 그 따분함마저 우리를 옥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그 욕심을 채울 수 없어 불행하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삶을 지탱할 욕망을 잃어 불행하다.

결국 인간은 어느 땐가 '허무'를 마주한다. 

 

근대와 현대 유럽 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을 얽매던 '신'으로부터 해방됐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무한한 자유를 의미한다. 모든 것은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 

욕망도 탐욕도 더 이상 죄가 아니게 된다. 사회가 막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마침내 '죽음'도 우리 손에 쥐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던 종교적 믿음에서조차 벗어났기에.

 

그들은 신을 떠나고 나서야 '이브의 사과'를 베어 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마치 "넌 언제 어떻게 죽어도 죄가 되지 않아"라는 유혹과도 같다.

나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떠나거나, 내가 욕망하지 않는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최후의 자유'

결국 현대 철학자들은 이 '허무주의'와 싸워야 했다. 

-

 

이러한 무신론적 철학사조를 신봉하는 나기에, 나는 그들을 붙잡을 논리가 없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도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생각이었다.

가벼운 충동이었든 깊은 고뇌였든, 운명이란 전차에 들이받혀 그런 선택을 했다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다만 딱 한 가지 제안만은 하고 싶다.

"하루만 더 살자. 오늘은 가서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보고 싶은 것도 좀 보고."

 

산은 단숨에 오르지 못한다. 한발한발 내딛어 올라야 한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죽기 전까지는 산을 오르듯 걸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자유인이기에 언제라도 그 자리에 멈춰 설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간절히 이 제안만은 하고 싶다.

 

"아무 걱정말고.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자."

댓글 7

댓글쓰기
  • 2023.11.18 01:34
    베스트

    삶을 마감한 이들을 지켜보는 일도 고통입니다

    우렁각시서방님께 토닥토닥해드리고 싶네요

  • 2023.11.18 01:53
    베스트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2023.11.18 02:16
    베스트

    감사합니다.

  • 2023.11.18 06:14
    베스트

    우리모두 힘 냅시다.💙💙💙💙💙💙💙

  • 우렁각시서방 작성자
    2023.11.18 19:27
    베스트

    많은 격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저의 우울함에 있지 않습니다. 근래 들어 사고의 톨레랑스(≒관용)가 사라지는 것이 참 슬퍼서입니다.

    혹여 주변에 삶에 대한 욕망도 미련도 없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같이 이 작은 제안 하나만 던져보는 게 어떨까 해서 적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자.."

    그의 선택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대신, 마지막 축제라는 마음으로 하루씩 더 살아보자는 작은 제안. 어떨까요.

  • 2023.11.22 06:45
    베스트

    글을 참 잘쓰시네요, 전적으로 공감되는 글이에요. 

  • 2023.11.25 23:42
    베스트

    아 우렁각시서방님 글 읽으며 감정이입이 되어봅니다~담담히 받아들이셨네요 더이상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