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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3.09.26 00:59  (수정 09.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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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6634830

어쩜, 이 이야기는 남들이 보기에 영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데 이것은 논픽션이며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 영화로 말하자면 화양연화처럼 쓰라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소녀에게서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녀가 내게 선사한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아름다웠던 17살 소녀의 심성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라일락꽃향기 짙은 4월을 애절하게 보냈고, 그 추억 속을 회상하면 난 지금도 그 황홀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소녀의 1차 가출(추측건데, 그 소녀의 첫가출은 아마도 1997년 IMF 이후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부모의 다툼이 컸던 거 같다)에 의해 어느 고시원에서 만나, 2차, 3차 가출은 그녀가 오로지 나랑 살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때(26살)까지 여자의 손목 한번 못 잡고, 연애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게 그렇게 영화 속에서 일어날 뻔한 첫사랑을 경험하고서 난 4년 동안 홍역을 앓아야 했다.

 

1993년 나의 군입대 이후, 우리집은 서울 정릉에서 원주 장양리로 이사를 갔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엄마는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 서울 생활이 그리웠던지, 원주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계셨다. 그것이 나의 군생활을 힘들게 했다(엄니는 우울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난 꿋꿋이 군생활을 버텨냈고, 아무 탈 없이 1995년 가을에 제대를 했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안 좋은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에 엄마는 또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그 이듬해(1996년) 여름까지 난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 도중에 엄마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고, 1년 가까이 난 꿀꿀한 청춘을을 보내던 그때, 우연찮게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어느 중3 여학생(1981년생)을 놀이터에서 알게 되었는데, 차마 언급하기가 난망할 정도로 몹시 쇼킹한 경험을 한 이후, 난 많은 혼란(트라우마)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퇴원한지 몇 달 안 되어, 엄마는 아버지와 대판 싸운 끝에 또 다시 서울 백병원으로 입원한다는 엄마의 말에 난 그 상황을 못 견디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의반 타의반 서울로 가출하였다. 내가 군입대 하기 전까지, 나의 중딩*고딩 시절을 함께 했던 정릉으로, 정릉 2동 숭덕초등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그렇게 나의 첫 고시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수중에 가지고 있던 용돈이 점점 부족해지자, 그해(1996년) 늦가을부터 그 이듬해 5월까지 난 신문배달을 하였다. 신문배달 도중에 난 또 중2 소녀를 통해 혼란을 겪어야 했지만, 원주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그 사연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26년 전 새해 첫날(1997년 1월 1일)인 새벽 2시 즈음, 서울 하늘 아래 정릉에서 비를 맞으며 한 중학생 소녀(그 소녀는 본인이 다녔던 고려사대부중 건너편에 마주하던 북악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1982년생이었다...1997년 그해 12월에 만났던 첫사랑은 1981년생의 고등학생 1학년이었다)랑 같이 신문을 배달하게 되었다. 
 
신년 첫날 새벽에 그렇게 겨울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서로 비옷을 입었지만), 그 소녀를 오토바이 뒷 자석에 태운 채 신문을 배달하던 새해 첫날은 처량함이 따로 없었다. 신문배달을 끝마치고 배급소에 돌아와 석유난로의 불을 째며 몸을 오들오들 떨던 그 소녀는 그 이후로 나오질 못했다. 우스웠던 건 신문을 돌리겠다던 그 소녀의 복장이 꼭 미팅을 나가는 복장같았다. 꽉 끼는 진에 깔끔한 차림새로 나온 모습에, 난 아연실색했다. 그것도 신문을 돌리겠다고 새벽에 나온 복장이 참말로, 이렇게 겨울비도 내리는데, 오늘만은 나 혼자 돌릴테니 그만 들어가라고 일렀지만, 한사코 같이 돌리겠다니. 그 상황 자체가 난감했다.
 
여튼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신문을 돌리겠다던 (같은 학교 친구 사이인) 두 소녀 중에 한 소녀랑 새해 첫날 겨울비 내리는 새벽녘에, 처량하게 신문을 돌리게 되었다. 본인이 돌리던 구역 중에 한 구역을 며칠 동안 두 소녀에게 인수인계를 해 주던 참이었다. 신문을 돌리는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나 혼자 배달할 테니 들어가라고 했지만, 극구 같이 배달하겠다고 따라나섰다가 그 고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 그 소녀와의 나이 차가 열살이었지만 끝끝내 말을 놓지 않았다. 하물며 이름조차도 묻지 않았다. 집집 계단들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는 많이 나누었지만, 원주에서의 쇼킹한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만약에 말을 놓은 분위기에서 그 소녀의 이름을 알았더라면, 그 이후 그 소녀를 찾을 수도 있었건만. 지금쯤 그 소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어엿한 아이 엄마가 되어 있을까. 아니 그때 그 시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게 처량했던 신년 첫날을 뒤로 하고, 난 그해 5월까지 열심히 신문을 돌리다 그만 두었고,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다. 공부라고 해봤자, 정독도서관을 왔다갔다 하면서 책읽기와 책 속의 내용들을 열심히 노트화시키는 작업이었지만, 아무튼 피나게 공부했다. 그러는 와중에 서울예전 극작과에 다니던 한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 또한 미스테리한 구석이 많았다. 사귈 정도로 연애를 한 건 아니었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이별까지 극적이었다. 고시원 휴게실에서 옥신각신하던 말다툼 끝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본의 아니게, 자기 의도와는 달리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오빠는 너무 순수하다는 고백이 내 면전에 박혔고, 그 이후 그녀는 고시원을 떠났고, 난 고시원 생활을 계속 이어가다, 그해(1997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이주 앞두고 운명의 그 소녀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에 그 소녀와 40일간 같이 보내며, 울고 웃었던, 영화 같은 이야기가 논픽션 형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은 최종적으로 다듬어져, 문학적 상상이나 묘사가 가필된 단편 소설 형식으로 형상화 될 것이다. 기필코 죽기 전에. 제목은 '라일락꽃 필 무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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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소녀를 처음 본 건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남선녀의 가슴을 들뜨게 하던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두고, 그와 그 소녀는 서울의 어느 한적한 고시원에서 스치듯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휴게실에서 한 여자에게 눈길이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방금 샤워실에서 나와 물기가 촉촉이 젖은 머릿결을 한 채, 샴푸 향기를 가득 머금고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가 힐끗 보기에는 갓 입학한 대학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물끄러미 창밖 먼 공산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한 모금 길게 내뿜었습니다. 휴게실 문을 열고 좁디좁은 고시원 안 복도로 들어섰습니다. 때마침 휴게실에서 잠깐 스치듯 지나갔던 그녀가 친구로 보이는 한 여자와 함께 방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스듬히 두 여자 사이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총총 걸음으로 자신의 일평 남짓한 방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후, 윗문 덧창으로 쪽지가 하나 날라 들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우리 서로 알면서 지내자는는 글귀와 함께, 뭐 하는 사람인지를 물어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는 쪽지를 읽자마자,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그 쪽지를 앞 책상에다 툭 던져 놓고 계속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자, 또 쪽지가 날라들었습니다. 어느 여자들의 수군거리는 재잘거림과 함께. 그는 그 쪽지를 줍고서 재빨리 문을 열어 보았지만, 어느새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귤 두 개가 열려진 윗 쪽문으로 휙 날라 들었고, 앉아 있는 그의 몸을 맞추고 말았습니다. 쪽지와 함께, 그 쪽지에는 또, '서로 알고 지내자는...'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는 쓴 웃음만 지어 보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기가 어색했습니다. 

 

이윽고, 이내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가 싶더니만, '똑똑'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어떤 한 사내가 쪽지를 건네주며, "지혜라는 아이가 이걸 당신에게 전해주라..."고 해서, 그 사내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술 한잔이나 하면서 얘기나 나누자고 했습니다. 지금 주영이는 자신의 방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영(그때 가명을 씀, 원래 이름은 지혜)이한테 잠깐 가보라고 일렀고, 가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말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호기심 삼아 그 사내의 제안을 수락하고, 사내가 일러준 방으로 가서 그 여자를 보았습니다. 한데, 그 여자는 다름아닌 조금 전 휴게실에서 잠깐 스치듯 보았던 그 여자였습니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에게 맥주 한잔 하자고 청했고, 그렇게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허나, 그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 둘은 지방에서 가출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쪽지를 건네준 사내는 바로 그 소녀들의 앞방이라서 서로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쪽지를 썼던 그 소녀와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휴게실에서 그 소녀가 그를 대충 보기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으로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도 빡빡 밀었기에, 대학입학 시험에 떨어져 그런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이 없는 만남을 접한 그로서는 그 소녀들에게 집에 빨리 들어가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둘 다 전라북도 익산이라는 곳에서 올라온 가출 소녀였습니다. 그는 걱정이 앞섰기에 두 소녀에게 당부의 말(이렇게 가출한 상태로 오래 머물다간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아울러 곁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이 없는 만남을 뒤로 하고 호프집을 나와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그 다음 날 새벽 1시 정도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는 방문 앞 복도로 난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눈이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있었습니다. 옆이 근질근질하여 바라보았을 때, 그는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글쎄, 그 소녀가 몰래 몸을 숨기고 얼굴만 쏙 내밀고 엿보고 있었기에 말입니다. 들키고 만 그 소녀는 내심 모른 척 하며, 복도 끝에 자리잡고 있는 앞방을 노크했고, 노크소리에 열린 문으로 냉큼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은 어느 아르바이트 생 여자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습니다. 

 

그는 그 우스꽝스런 광경에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와 안절부절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온갖 사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일 년 전, 자신의 순수성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그 여성이 생각났기에 말입니다. 그녀는 S예전 극작과에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그가 군대 후임병을 만나고 돌아오던 그 날밤, 술에 만취해 고시원 계단에 앉아 있었고, 그 때 그는 뭐가 그리 서러운 게 많았는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계단을 올라오면서 그를 보았는지, 그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씻고 나오는 그에게 음료수와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러, 그는 기회를 엿보다 그런 인연의 보답으로 그는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집과 함께 그녀가 건넸던 손수건을 세탁하여 돌려주었습니다. 

 

그가 지금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아마 일 년 전 그녀와의 결말이 안 좋았던 기억이 퍼뜩 떠올라 괴롭혔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극작과 출신답게 문학과 음악, 그리고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와의 짧은 인연에서 가슴 아픈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그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오빠는 너무 순수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오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그 와중에 더 말 못할 속 깊은 사연이 있지만 여기서 생략하고, 그와 17살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그는 그 소녀가 조금 전 방에 들어간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 곧바로 소녀의 뒤를 쫓아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너 말이지, 아저씨가 좋니?"하고 대뜸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니?" 하고 그는 재차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약간 쑥스러운 듯, 짤막하게 "그냥 좋다"고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아' 하는 한숨을 내쉬고, 재차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 아저씨랑 같이 살래?" 하고 장난기 섞인 말로 물었습니다.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네" 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는 썩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다그치며 다시 물었습니다. "이 아저씨는 돈도 잘 못 벌고, 나랑 같이 살면 굶어 죽기에 딱 알맞은 데도 같이 살거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녀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황당한 질문을 던졌던 이유를 독자들에게 필설하기에는 그 전에 좀 머쓱한 상황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와 그 소녀는 그 짧지 않은 사랑의 행로에 들어섰습니다. 그러고 며칠이 흘러, 그 소녀와 친구는 각자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내려갔고,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공부에 다시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 소녀는 그를 못 미더워 했던지 아니면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그녀를 억눌렀던지, 그와 같이 살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허나, 그에게는 당장 직업이 없었고, 미성년자인 그 소녀를 같이 데리고 살기에는 그 당시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는 그 소녀에게 타일렀고, '네가 졸업하면 같이 살자'고 설득하였습니다. 한 번은 계속 올라오겠다는 전화가 왔고, 그는 그것을 즉시 그 소녀의 집에 알렸습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그 소녀는 엄마랑 많은 실랑이를 벌였던 모양입니다. 그런 억지에 그녀의 엄마는 발렌타인데이 기념으로 그녀를 서울로 올려보냈습니다. 그 대신에 만나고, 그 다음 날에 내려 보낸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가 이런 것을 승낙하는 데도 그녀가 엄마에게 허락을 받는 조건 하에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소녀는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건넨 노란 후레지아 곷다발을 남긴 채.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는 다시 전화상으로 같이 살겠다면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에게 무엇보다 그 현실적 상황을 감당해낼 만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발렌타인데이 만남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가 싶어 그 소녀에게서 또 전화가 온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은 서울이며 친구랑 같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이 영악한 소녀는 자기가 올라온다는 사실을 그가 미리 알면, 또 다시 자신의 집에 연락할 것을 알고서 서울에 올라와서야 연락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그 소녀를 붙잡았고, 다시 집에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그녀와 친구의 부모님은 전날 연락을 받고 그 다음날 저녁에 올라왔습니다. 둘은 각자 엄마의 손에 붙잡혀 봉고차를 타고 또 다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 그녀는 단 3일만 같이 있게 해 달라고 자신의 엄마에게 애원했고, 그에게도 그렇게 자신의 엄마에게 청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는 막상 그녀와 그렇게 약속을 했지만, 그는 그녀의 청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봉고차에 올라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맘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봉고차문을 닫으며 그에게 "이젠 끝이야~" 하는 울먹임과 함께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그는 전화를 걸어 소녀의 맘을 위로해 주었고, 안정시킬 목적으로 그가 익산에 내려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다시 그와 그 소녀의 사랑을 확인할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로 "나, 졸업할 때까지 꼭 기다려 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흘러 그는 약속한 대로 익산에 내려가서 그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다짜고짜로 다시 가출했다고 하면서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고 애걸복걸 했습니다. 이젠 그도 지쳐버린 나머지 그녀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그녀가 어리니까, 며칠 간 그와 살다 보면, 아무런 대책없이 사는 게 힘들구나, 하고 느껴 내려가겠지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힘들다는 내색도 없이 그와 함께 보내는 것이 마냥 행복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서는 막막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고프면 안 먹고 안 쓰면 되지만, 도대체 무얼 해서 먹고 사나, 하는 그런 걱정에 몹시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공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소녀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자주 가던 비디오 숍 가게에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촌 여동생이라고 소개해주면서, 그녀에게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하고서 말입니다. 

 

그 비디오숍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필요할 때마다 부르겠다고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는 군말없이 잘 나갔습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올라온 지 몇 주일이 지나 전화로 그녀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심시켜드렸습니다. 아마 그녀의 엄마도 그랑 같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별 걱정이 없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녀와 서울로 올라오는 그 날도 그녀의 엄마는 뭔가 낌새를 느꼈다고 합니다. 전에 같았으면 그녀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날 따라 그런 잔소리도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녀가 같이 살겠다고 엄마에게 애걸복걸했으면,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엄마도 전에 그를 보고 이젠 자신의 딸이 가출해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던 적이 있기에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점차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도 모든 것을 그에게 내맡기고 그와의 달콤한 생활에 만족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허나, 그는 내내 같이 살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만에 하나 그녀가 잘못되었을 때는 책임이 전적으로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못 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런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개해 준 비디오숍에서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일하고 있던 숍은 4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 중에 하나였는데, 부부가 따로따로 비디오숍을 두 개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운영하는 숍은 옆 동네에 있었고, 그녀가 나가는 숍은 아주머니가 직접 관리하였습니다. 아주머니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녀를 본 바깥 주인 아저씨는 자신이 맡고 있는 곳으로도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그 아저씨가 자꾸 이상한 것을 물어온다고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아저씨가 자기와 오빠와의 관계를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같이 산다고 말했고, 그러자 그 아저씨는 민감한 것까지 물어온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뽀뽀(?)는 몇 번을 하는지...등등.

 

심지어 그 아저씨는 자기 아내랑 매일 아침에 뽀뽀를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습니다. 그녀가 아르바이트 일을 그만두고, 헤어숍을 다니겠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자꾸 말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비디오숍을 나가길 꺼려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녀가 비디오숍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밤에, 그는 걱정이 되어 그 아저씨의 비디오숍에 들렀을 때,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보통 때면 밤 12시가 되면 집에 들어오던 그녀가 그날 따라 새벽 1시가 돼서도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걱정이 앞섰던 그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로 전화를 걸었고, 아주머니는 좀 전에 퇴근시켰다는 말을 아저씨에게 전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새벽 한 시 반이 돼서야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고, 지금 횡단보도 앞에 있으니까 마중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약간 취해 있었고, 주인 아저씨랑 같이 노래방엘 갔었다고 했습니다. 자꾸 안 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보통 퇴근할 때, 그 아저씨가 텍트(소형 오토바이)로 태워다 줬는데, 이 날도 아저씨가 바래다주긴 했는데, 퇴근할 즘에 주인 아저씨는 노래방엘 가자고 그녀에게 강권했는지, 그녀의 의견도 무시한 채 무작정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할 수 없이 노래를 30분 부르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에 몹시 분노한 그는, 그날 새벽에 그 소녀와 다퉜고, 그 다음날 아주머니한테 가서 아저씨의 행태를 따졌습니다. 절대로 자기 아저씨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아주머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이실직고하고 말았습니다. 내용인 즉, 아저씨가 관리하고 있는 매장으로 달려가 남편의 핸드폰을 박살내고, 자기 남편이 착신시켜 놓고, 매일 친구들이랑 노름(도박)하러 다닌다는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놀음빚도 갚아 주냐고 힘들었다고 그에게 고백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도 할 말이 많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그는 만나서 얘기한다는 상황이 우스워 거절했고, 그 뒤로 아주머니는 속타는 맘을 울음으로 달랬었나 봅니다. 그 후에 가서 보니까,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그녀와 대판 다툰 끝에 집에 내려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같이 죽을 결심까지 하였습니다. 아파트 옥상에서 같이 투신자살 하자고 했습니다. 안 내려가겠다는 그녀를 설득하여 결국 익산에 함께 내려갔고, 그렇게 그해 가을 제 심술에 첫사랑과 영영 헤어지는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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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6 01:21
    베스트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어렵고 힘든것 인가 봅니다..

    저도 님과  비슷한 사춘기 시절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감이 가는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보들레르 작성자
    2023.09.26 01:24
    베스트
    @동이족
    그럼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함께 공유해 봅시다.ㅋ
    정말 듣고 싶어요^!^
  • 2023.09.26 01:38  (수정 09.26 01:38)
    베스트

    기억 할 첫사랑의 추억이 있다는것..

    아련하네예~

  • 2023.10.01 16:18
    베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