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가 스스로 책을 내지 않는 한, 이 책은 

김민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상세한 책이자 자료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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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처음 고문을 당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옛날 보안사에 한 번 끌려 들어갔는데, 거긴 정면이 유리창인데 반대편에서만 안을 볼 수 있었지. 누군가가 취조받다 자살한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진짜 잘 패더라. 이만 한 공사장 각목 가지고 배를 한 대 치고, '욱' 하니까, 어느새 얼굴을 치더라고, 다시 위에서 '팍' 찍는데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어. 성냥개비로 만든 인형이 후다닥 사그라져 가듯이 정신이 가물가물하는데 나를 패는 놈들이 갑자기 슬로비디오가 되는 거야. 정신을 잃어가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나 때문에 공연히 이 사 람들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너무 죄송하더라니까. 내가 없었으면 이 사람들이 죄를 지을 리가 없잖아. 예수가 죽어가면서 이 사람들 용서해달라고, 이들은 자신의 죄를 모른다던 그 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더라.

카세트 뒷면에 반주부를 담을 때 학생 운동 진영에 있었던 운동권들은 나의 그런 작업을 비참한 한국 노동자 현실과는 동떨어진 쁘띠부르주아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당시만 해도 카세트 녹음기는 매우 비쌌고 대학생들조차 소유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나는 공장 생활을 통해 카세트 녹음기가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겐 최고의 문화적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박봉을 쪼개고 쪼개 한 방의 룸메이트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마련한 뒤 고된 노동의 휴식시간에 카세트 녹음기로부터 유일하게 위안을 받았다. 관념으로만 계급을 이해하려는 이들은 그런 현실을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 <공장의 불빛> 공연과 관련하여.  

거룩한 성자의 삶이라고 표현하면, 김민기 본인은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겠지만 며칠을 고민해보아도 성자라는 표현말고는 김민기를 설명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에는 각각 주철환과 강헌과 나눈 대담이 하나씩 실려있어 김민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의 꿈은 어딘가 외진 곳에다 학전 창고를 하나 짓고 창고지기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만 하여도 암은 없다나봐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인터뷰가 벌써 20년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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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이 모인 야학의 영어 교재에 적힌 나는 노동자, 당신은 사장. 아이들에게 정신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 사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세상을 가꿔온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어떤 수식도 표현도 붙이기가 어렵다. 김민기는 그냥 김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