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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결혼 말고 동거'…북한 정권 위협하는 '뜨게부부'들 - BBC News 코리아

 

최근 몇 년 새 북한 젊은층 사이에서 ‘동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함께 사는 남녀를 의미하는 북한말, '뜨게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차 전국 어머니대회에서 ‘출생률 감소’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저출생으로 고민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19년에 탈북해 2020년 한국에 입국한 29세 여성 김모 씨는 BBC 코리아에 “북한에서 20대 초중반에서 동거를 하는 남녀가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1인 가구를 실질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며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은 경우, 성인이 되어 독립했을 때 본인 명의로 된 집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법적인 제재가 많이 따른다”고 증언했다.

“이런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 커플 가운데 한쪽이 상대방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형태의 동거가 생겨나고 있어요.”

 

북한의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다가 2018년에 탈북한 30대 여성 박모 씨 또한 “학생일 때는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주변에 동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며 “처음에 놀라기는 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탈북민 71명의 심층면접을 토대로 발간한 통일연구원의 ‘2023 북한인권백서’에는 최근 북한 내 가부장적 특징이 약화하면서 이혼율이 높아짐에 따라 제도적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 내부의 취재 파트너와 협력해 주기적으로 북한 정세를 파악하는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2015년경부터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내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농촌에선 여전히 일정 나이가 되면 대부분 사람이 결혼하기를 선택하지만, 도시로 나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는 사례가 많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한 내 동거 양상은 계급 간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시마루 대표는 “일상생활에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북한의 고위층 간부나 출신 성분이 좋은 집안의 경우에는 비슷한 지위의 사람과 만나 결혼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고 좋은 집을 얻어 사는 데 무리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전통적 분위기가 여전히 자리 잡혀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구 대부분은 서민이고, 특히 코로나 이후 서민들의 경제적 상황이 더 악화했기 때문에 부모마저도 자식에게 결혼을 추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한 내부 취재 파트너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에게 혼인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더니 ‘결혼해서 부양가족이 생기면 더 부담이 많아진다. 차라리 돈을 열심히 벌면서 혼자 사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즉, 결혼 후에도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부유층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결혼 적령기가 되면 혼인을 고려하지만, 서민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의 생계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어 결혼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저 또한 이건 정말 큰 변화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부모들이 자녀를 생각해 무리하게 당장 결혼할 필요가 없으니 좀 여유가 생긴 이후에 해라, 아이를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키우겠냐, 아이를 가지지 마라, 이런 분위기가 지난 4~5년간 많이 확산한 겁니다.

한국에 거주한 지 7년 차가 된 탈북자 여성 박모 씨도 “(경제적인) 체계가 바로잡히고 집안 환경이 좋은 소위 말해 ‘금수저’라면 동거하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지 않거나, 계시더라도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되지 않을 때 동거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20대 초반이면 북한 내에선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남녀 커플은 동거를 택하는 거죠.”

북한 국경 지역에 거주했다는 탈북자 김모 씨는 “북한의 결혼식은 한국보다 형식을 더 제대로 갖춰서 하는 집안 대사”라며 북한 살던 당시 자신의 지인도 결혼식 비용에 따른 부담감 때문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결혼식 비용이 워낙 많이 들다 보니 결혼식을 생략하고 동거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오래 같이 동거하다가 혼인신고를 하기도 하고요.”

 

김모 씨는 또 장기간 동거를 한 연인들 가운데 결국 혼인신고를 해 법적 부부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동거도 북한에서 연애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23 북한인권백서’에도 “젊은 세대들은 동거하다 헤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2~3년 함께 살아보고 계속 같이 살 것 같으면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추세”라는 증언이 담겼다.

이시마루 대표는 이에 대해 “'결혼하기 전 연애의 한 과정으로서 함께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동거 열풍의 시작이었다는 것에 동의한다”며 “그러나 그 시점을 지나서 이제는 결혼 자체를 전제로 하지 않고 남녀가 동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이혼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점도 동거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북한에서는 이혼을 신청해도 재판소에서 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 내지 2년까지도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의 어려운 결혼생활을 봐 온 북한의 2030 세대 중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혼자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김모 씨 또한 “북한에서는 이혼의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결혼할 때 더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여성들이 점차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는 본인의 꿈에 무게를 두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박모 씨는 “여전히 북한에선 여자가 집안일을 하고 남자가 사회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내는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기 때문에 나 또한 결혼을 하면 내 커리어가 깨지진 않을까 걱정해 비혼을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김모 씨 역시 “결혼했을 때 북한 사회에서의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결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북한 젊은 세대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결혼을 좀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은 부부도 사는 게 어려우니 아이 두 명을 낳을 바에는 하나만 낳아 키우자는 인식도 강해졌죠.”

 

이시마루 대표는 ‘독신’이나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형태가 북한 역사상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개인의 자유, 개인의 선택권 문제거든요. 따라서 이 추세는 사회 질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북한 국민 개개인이 자아를 찾기 시작하면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 구조에 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죠.”

그는 동거 형태의 증가에 따른 출생률 감소도 북한 당국의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8명으로,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1990년대 대기근 때 많은 북한 주민들이 사망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공개된 바 없지만, 군대 입대하는 사람도 많이 모자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한 농촌도 인력 부족이 심각합니다. 국가 장래를 고려했을 때 인구 감소가 북한에서도 큰 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인 겁니다.”

그는 인구 감소를 북한이 이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분석했다.

이러한 우려에 북한은 동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민반, 학교, 직장 등을 통해 동거가 불법임을 강조하고, 남녀가 함께 거주할 시 혼인신고를 반드시 할 것을 교육하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가정은 인민반을 통해 통제받습니다. 동네 30~40세대 정도를 하나의 유닛으로 분류해서 관리를 하는 거죠. 인민반장이 자신의 관할 구역에 속한 가구에 누가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다 파악을 하고 있어요. 따라서 인민반장만큼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죠.”

2021년 이후부터는 북한 당국이 동거를 ‘비사회주의 행위’로 규정해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상에 오염된 행위라고 규정한 거죠. 동거라는 게 결국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자본주의적 생각이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올바른’ 선택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애국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비판을 시작한 겁니다.”

비사회주의 행위로 규정된 이상 법적 제재도 피할 수 없다.

이시마루 대표는 “동거하는 남녀에게 이미 경고했음에도 여전히 동거 형태로 생활하는 것이 적발되면 노동단련대에 한 달, 석 달, 혹은 6개월까지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탈북자 김모 씨는 여전히 북한의 기성세대가 동거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공개적인 동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역 공동체 성격이 아주 강해요. 최근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웃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데, 북한은 한 마을에 살면 서로가 너무 친하기 때문에 소문도 금방 나고 사정을 모를 수 없어요. 부모님 세대는 아직 보수적이기 때문에 동거를 공개적으로 하기엔 조금 어렵죠.”

그는 다만 “동거를 허락해주는 부모도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선 확실히 유연해진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시마루 대표는 “당국의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젊은층도 동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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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10 19:47
    베스트

    삭제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