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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7.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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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5159640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세계 각 나라의 수도의 어원과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을 작성해보겠습니다.

 

각 대륙 별로 권역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2) 유럽: 서유럽, 중부유럽, 북유럽, 남유럽, 동유럽
(3)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4)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남아메리카
(5) 오세아니아: 오스트랄라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번외: 미승인국가

 

이번 글에서는 서아시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입니다.

 

서아시아.png

 

서아시아에는 국가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음과 같은 권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아라비아 반도 - 거대한 장화 모양의 반도. 이슬람의 발상지.

 

(2) 레반트 및 키프로스 - 레반트는 고대의 가나안 지역과 시리아 인근을 가리키는 지리 용어입니다. 라틴어로 '떠오르다'를 뜻하는 'levare'에서 유래하여 '동쪽에 있는 나라'를 뜻합니다. 키프로스 섬은 레반트 지역에 인접해 있습니다.

 

(3) 이란 - 이란은 아랍과 민족, 문화가 매우 다르며, 종교는 이슬람으로 같지만 아랍 대다수 국가가 수니파 중심인 반면 이란은 시아파 중심 국가입니다. 이란과 아랍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앙숙 관계로 서로를 혼동하면 둘 다 화냅니다. (우리에 맞게 비유하자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그거 아님? 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4) 튀르키예 - 튀르키예도 아랍과 민족, 문화가 매우 다릅니다. 다만 종교는 둘 다 이슬람 중에서도 수니파 위주입니다.

 

(5) 캅카스 - 아시아 서북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산악지역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서아시아 국가 중 레반트 및 키프로스에 위치한 국가들의 수도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1) 이라크 - 바그다드 / بَغْدَاد (Baghdād) (아랍어) / 바그다드

 

바그다드.png

바그다드의 깃발/문장

 

--> '바그다드'는 이슬람 도래 이전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a) 가장 유력한 의견: 중세 페르시아어 'bagh (신)' + 'dād (주어진)'의 합성어로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라는 뜻
b) 고대 바빌로니아어 표현 'bagdadu' 내지는 'hudadu'에서 유래
c)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최초로 통일한 국가이자 인류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 (Akkad)'의 이름에서 유래

 

바그다드는 압바스 왕조의 제2대 칼리파 아부 자파르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 알 만수르 (أبو جعفر عبد الله بن محمد المنصور (Abū Jaʿfar ʿAbd Allāh ibn Muḥammad al-Manṣūr), 714-775; 흔히 '알 만수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가 762년에 압바스 왕조의 수도로 건설하면서 역사의 중심에 등장하였고, 기존의 대도시였던 크테시폰 (사산 왕조의 수도였음)을 대체하였습니다.

 

바그다드는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였지만, 압바스 왕조의 내전, 이란계 부와이흐 왕조의 점령, 셀주크 제국의 점령을 겪으며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바그다드는 중흥하기도 했지만, 1258년에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학살과 파괴가 자행되어 몰락하였고, 이슬람 황금기도 종언을 고하게 됩니다.

 

몽골 제국에서 분리된 일 칸국이 바그다드를 지배하였고, 뒤이어 몽골-튀르크계 잘라이르 왕조가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여 자립했습니다.

 

하지만 1401년에 티무르의 공격으로 다시 한번 학살과 파괴가 자행되어 바그다드는 철저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이후 바그다드는 카라 코윤루 (흑양 왕조), 아크 코윤루 (백양 왕조), 사파비 왕조의 지배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바그다드는 1535년에 바그다드 에얄라트의 중심지가 되었고, 1864년에는 바그다드 빌라예트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으로 몰락하자, 바그다드는 영국군에게 점령되어 1920년에는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의 수도가 됩니다.

 

또한 이라크 왕국이 1932년에 독립하면서 바그다드는 이라크 왕국의 수도가 됩니다.

 

이라크 왕국은 1958년에 압드 알 카림 카심 (عبد الكريم قاسم (ʿAbd al-Karīm Qāsim), 1914-1963)의 쿠데타로 무너졌고, 바그다드는 이라크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 (صدام حسين (Saddam Hussein), 1937-2006)의 독재, 이라크 전쟁, 이라크 내전 (ISIL에게 점령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을 겪는 와중에도 바그다드는 이라크의 수도로 유지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2) 시리아 - 다마스쿠스 / دِمَشق (Dimašq) (아랍어) / 디마슈크

 

다마스쿠스.png

다마스쿠스의 깃발/문장

 

--> '다마스쿠스'는 고대 쿰란어 דרמשק (Darmeśeq) 또는 고대 시리아 아람어 ܕܪܡܣܘܩ (Darmsûq)에서 유래했는데, 모두 '물이 풍부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 명칭은 그리스어 Δαμασκός (Damaskos), 라틴어 Damascus, 그리고 아랍어 دِمَشق (Dimašq)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의 다마스쿠스에는 기원전 2000년 경부터 대규모 정착지가 형성되었고, 기원전 1350년 경 고대 이집트 아마르나 문서에서 '디마스쿠 (Dimasqu)'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과 히타이트가 이 지역을 놓고 쟁탈한 끝에 기원전 1259년에 평화협정을 통해 고대 이집트 신왕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으나, 기원전 1200년 경에 바다민족이 도래하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11세기에 셈계 아람인들이 정착하여 도시국가를 세우면서 수도 '디마슈크 (Dimashqu)'가 되었는데, 아람인들은 디마슈크의 운하와 터널을 건설하여 배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디마슈크는 이후 아시리아 제국, 신바빌로니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가 시리아를 놓고 한 세기간 전쟁을 벌입니다.

 

기원전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이 도시를 정복하였는데,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직사각형으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였습니다.

 

또한 서기 125년에는 코엘레-시리아의 메트로폴리스로 격상되었고, 222년에는 식민도시로 승격되었으며,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성 요한 대성당이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동로마제국과 사산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놓고 각축전을 벌였으며, 다마스쿠스는 634년에 이슬람 세력의 지배 하에 들어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고, 715년에는 성 요한 대성당을 개조하여 다마스쿠스 대모스크 (우마이야 모스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가 쇠퇴하고 압바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다마스쿠스는 지방 도시로 쇠퇴하였고, 이후 툴룬 왕조, 카르마트인, 이흐시드 왕조, 파티마 왕조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다마스쿠스는 11세기 후반에 셀주크 제국이 장악하면서 다시금 중요도가 올라갔지만, 셀주크 계열 군벌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십자군까지 쳐들어 오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살라흐 앗 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1137-1193; 흔히 '살라흐 앗 딘' 내지는 '살라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는 십자군을 격파하고 이집트와 시리아를 장악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세웠는데, 아이유브 왕조는 이집트의 카이로를 수도로 두기도 했지만 많은 기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두기도 했습니다.

 

다마스쿠스는 1260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점령당하기도 하지만, 맘루크 왕조가 몽골군을 몰아내면서 맘루크 왕조의 시리아 통치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1516년에 맘루크 왕조를 격파하고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여 삼 에얄레트 (ایالت شام (Eyālet-i Šām))의 중심지로 삼았고, 1865년에는 시리아 빌라예트 (ولايت سوريه (Vilâyet-i Sûriye))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면서 영국은 아랍 반란을 후원하였고, 시리아 아랍 왕국이 성립하지만 이내 프랑스 영향 하의 시리아-레바논 위임 통치령이 되고, 다마스쿠스는 시리아-레바논 위임통치령의 수도가 됩니다.

 

시리아가 1946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고,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 연합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을 잠시 이룬 것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시리아의 수도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1970년에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로 집권하고, 2000년에 바샤르 알 아사드가 물려 받은 뒤 현재까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2011년부터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여 현재까지 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쓰는 것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디마슈크'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 요르단 - 암만 / عَمَّان (ʿAmmān) (아랍어) / 암만

 

암만.png

암만의 깃발/문장

 

--> '암만'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대 민족인 '암몬 (עַמּוֹן (ʻAmmōn))'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도시는 암몬인들이 중심지로 삼았는데,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라바트 베네 암몬 (רַבַּת בְּנֵי עַמּוֹן (Rabbaṯ Bənē ʿAmmōn))' 내지는 '라바 (רַבָּה (Rabbā))' 로 언급되는데, '(암몬인의) 수도/왕의 거처'라는 뜻입니다.

 

헬레니즘 시기에 이르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Πτολεμαῖος Φιλάδελφος, 309 BC - 246 BC)가 이 도시를 점령하고 재건하면서 자신의 별명을 따서 '필라델피아 (Φιλαδέλφεια, '형제애')'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로마 제국을 거쳐 정통 칼리파 시대에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정복한 뒤 '암만'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고, 우마이야 왕조 시기 수많은 궁전과 성이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8세기 중반 여러 차례 지진이 발생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이 도시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도시는 1878년부터 재건되기 시작했는데,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쫓겨온 무슬림 난민들과 러시아-체르케스 전쟁에서 쫓겨온 체르케스 난민들을 이 도시에 정착하여 경작지를 배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1903년부터 다마스쿠스와 메디나를 잇는 히자즈 철도가 개통되면서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면서 영국은 아랍 반란을 후원하였고, 그 결과 1920년에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이 성립합니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산하에 있던 트란스요르단 아미르국의 아미르 압둘라 1세는 이 도시로 수도로 삼았고, 1946년에 트란스요르단 아미르국이 요르단 왕국으로 독립한 뒤에도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오늘날에 이릅니다.

 

 

 

4) 레바논 - 베이루트 / بيروت (Bayrūt) (아랍어) / 바이루트

 

베이루트.png

베이루트의 깃발/문장

 

--> '베이루트'는 '우물'을 의미하는 고대 가나안어 단어 bīʾrōt가 페니키아어 bēʾrūt, 아랍어 بيروت (Bayrūt), 프랑스어 Beyrouth, 영어 Beirut로 이어졌습니다.

 

베이루트는 기원전 3000년 경에 건설되었고, 기원전 14세기에는 고대 이집트의 아마르나 문서에서 페니키아의 도시인 '비루타'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후 비루타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내전 중 기원전 140년에 파괴되었고, 내전 이후 '페니키아의 라오디케아 (Λαοδίκεια ἡ ἐν Φοινίκῃ)'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쇠퇴한 뒤에는 아르메니아 왕국이 이 도시를 점령하였지만, 기원전 64년에는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이 도시를 정복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이 도시에 '베리투스 (Berytus)'라는 이름이 붙었고, 기원전 14년에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딸인 율리아 아우구스티 필리아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의 이름을 따서 '콜로니아 율리아 아우구스타 펠릭스 베리투스 (Colonia Iulia Augusta Felix Berytus)'라는 이름의 식민 도시로 지정하였습니다.

 

베리투스는 법학교로 유명해져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로마 제국의 3대 법학교 소재지가 되었고, 로마법대전 편찬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기 551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어 법학교는 시돈으로 이전되었으며, 서기 560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재건되지 못하고 폐허가 됩니다.

 

무슬림들은 635년에 이 도시를 점령하여 재건하였으며, 십자군 시기 에루살렘 왕국의 국왕 보두앵 1세 (Baldwin I)는 1110년에 이 도시를 점령하여 '바루트 (Baruth)'로 명명하였습니다.

 

십자군과 무슬림 세력이 공방을 거듭한 끝에 1291년에는 맘루크 군대가 십자군을 축출하고 이 도시를 점령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1516년에 이 도시를 점령하여 삼 에얄레트 (ایالت شام (Eyālet-i Šām))의 일부로 삼았고, 1660년에는 시돈 에얄레트 (ایالت صیدا (Eyālet-i Ṣaydā))의 일부로 삼았습니다.

 

베이루트는 19세기 중반에 들어 서구 열강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888년에는 베이루트 빌라예트 (ولايت بيروت (Vilâyet-i Beyrut)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으로 패망한 뒤, 베이루트는 프랑스 영향 하의 시리아-레바논 위임 통치령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베이루트는 레바논이 1943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에는 레바논의 수도가 되었으며, 금융과 교육,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오일 머니에 힘입어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서 1975년에 레바논 내전이 전국적으로 발발하였고, 베이루트는 서부의 이슬람 지역과 동부의 기독교 (주로 마론파 기독교) 지역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개입하면서 더욱 개판이 되었고, 이슬람 및 기독교 종파 내에서도 갈등을 겪다가 1990년이 되어서야 레바논 내전이 종결됩니다.

 

레바논 내전이 종결된 뒤 베이루트는 재건되기 시작했으나,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공격을 명목으로 2006년에 침공했을 때는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한편 2020년에는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베이루트'라고 써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바이루트'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5) 이스라엘 - 예루살렘, 텔아비브 / יְרוּשָׁלַיִם (Yerushaláyim), תֵּל אָבִיב-יָפוֹ (Tēl ʾĀvīv-Yāfō) (히브리어) / 예루샬라임, 텔아비브-야포

 

예루살렘_텔아비브.png

예루살렘의 깃발/문장 (위); 텔아비브의 깃발/문장 (아래)

 

--> '예루살렘'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황혼과 평화의 신 '샬렘 (Shalem/Shalim)'의 '토대 (셈어 yry')'에서 유래했습니다.

 

'샬렘'의 이름은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 (שָׁלוֹם (šālōm))', 아랍어 '살람 (سَلاَم (salām))'과 어근이 같습니다.

 

이에 따라 '샬렘의 토대'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평화의 도시/거처'라는 뜻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지명

 

이 도시는 기원전 2000년 경 이집트 중왕국 시기 '루살리뭄 (Rušalimum)'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며, 기원전 1700년 경 이집트 중왕국을 멸망시킨 힉소스의 지배 하에 들었습니다.

 

또한 기원전 1550년 경 이집트 신왕국의 봉신국이 되었다가, 이집트 신왕국이 바다 민족과의 전쟁으로 쇠퇴하자 기원전 1178년에 이집트 신왕국의 영향 하에서 벗어납니다.

 

이후 가나안 민족의 일파인 여부스 부족이 거주하다가, 기원전 1010년 경에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솔로몬 왕이 기원전 962년 경에 예루살렘 제1성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뒤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북부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예루살렘은 유다 왕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바빌론으로 끌려갔는데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합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39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뒤, 바빌론 유수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하였고, 기원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이 건립됩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케메네스 왕조를 멸망시킨 후, 이 지역은 알렉산드로스 3세 휘하의 장수들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전쟁 (마카베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기원전 142년에 마지막 독립 왕조인 하스몬 왕조를 세웠고, 하스몬 왕조는 모압, 암몬, 에돔 등 유대인과 별도로 있던 민족들을 유대교로 강제로 개종시켜 유대인으로 흡수해버립니다.

 

하지만 로마 공화국이 하스몬 왕조를 정복한 뒤, 헤로데를 지원하였는데, 그가 바로 헤로데 대왕입니다.

 

헤로데 대왕은 기원전 19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증축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죽은 뒤인 서기 63년에 증축 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서기 70년에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고, 성전 서쪽 축대만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이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Publius Aelius Hadrianus, 76-138)가 서기 130년에 예루살렘 폐허를 방문하여 '아일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라는 이름으로 재건하였는데, 하드리아누스의 중간 이름인 'Aelius' 그리고 로마에서 유피테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모시는 신전이 있는 언덕인 'Capitolinus' 언덕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드리아누스가 유대인의 할례를 금하자, 유대인들이 봉기하였으나 철저히 진압되었고, 유대인이 아일리아 카피톨리나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디아스포라가 일어납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뒤인 325년에는 이 도시가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성묘 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를 비롯한 기독교 성지들이 건립됩니다.

 

그러나 이후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가 예루살렘을 놓고 각축전을 벌였고, 638년에는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슬람에서 예루살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도시이자 최초의 기도 대상으로 상당히 중요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는 당시 폐허였던 성전산에 '바위의 돔 (قبة الصخرة (Qubbat aṣ-Ṣaḵra))'이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압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 셀주크 제국이 예루살렘을 지배했고, 십자군 원정으로 기독교 왕국인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지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아이유브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유브 왕조 이후에는 맘루크 왕조가 예루살렘을 지배하였는데 이 시기 예루살렘은 소규모 도시로 전락한 상태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516년에 맘루크 왕조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예루살렘을 대대적으로 재건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으로 몰락하자, 영국군이 1917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1920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설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서예루살렘을, 요르단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967년에 발발한 제3차 중동 전쟁에서 동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 관구를 창설하여 오늘날에 이릅니다.

 

한편 '텔아비브'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유대인 작가이자 현대 이스라엘의 국부인 테오도르 헤르츨 (Theodor Herzl / תֵּאוֹדוֹר הֶרְצְל (Te'odor Hertzel), 1860-1904)의 소설 '오래된 새로운 땅 (Altneuland (The Old New Land))'의 히브리어 제목 תֵּל־אָבִיב (Tel Aviv)에서 유래합니다.

 

또한 이 이름은 히브리어 תֵּל (tel, '인공 둔덕')와 אָבִיב (aviv, '봄')의 합성어로 두 단어는 각각 '고대'와 '재생'을 상징합니다.

 

텔아비브는 원래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세운 유서깊은 항구 야포 (히브리어 יָפוֹ (Yāfō) / 아랍어 يَافَا (Yāfā); '야파', '욥바'라고도 합니다.)에 부속된 지역이었습니다.

 

'텔아비브'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오스만 제국 치하의 유대인들이 1909년에 야포 교외에서 조개껍데기를 이용한 추첨을 통해 땅을 배분하고 '아후자트 바이트 (Ahuzat Bayit)'라는 이름의 마을을 건설한 뒤 1910년에 '텔아비브'로 개칭한 뒤입니다.

 

텔아비브의 유대인들은 1917년에 오스만 제국의 전시 조치로 추방되기도 했지만, 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하고 영국이 텔아비브를 장악하면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오면서 유대인-아랍인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고, 야포에서 폭동이 일어난 뒤 야포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대거 텔아비브로 이주하며, 텔아비브는 1934년에 야포로부터 독립합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텔아비브는 임시 수도가 되었고, 1950년에는 야포를 통합하여 '텔아비브-야포'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행정 수도로 기능하고 있지만, 총력전에 대비해 경제산업부처, 방위기관, 국유기업, 증권거래소는 여전히 텔아비브에 위치합니다.

 

예루살렘, 텔아비브로 써도 좋지만, 히브리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예루샬라임, 텔아비브-야포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6) 팔레스타인 - (동)예루살렘, 라말라 / القُدس (al-Quds), رام الله (Rām Allāh) (아랍어) / 쿠드스, 람알라

 

쿠드스_라말라.png

팔레스타인이 관할하는 동예루살렘의 교외 지역의 중심 아부 디스 (위); 라말라의 랜드 마크 자말 압델 나세르 모스크 (아래). 동예루살렘과 라말라의 깃발/문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예루살렘'의 아랍어 이름 '알 쿠드스 (القُدس (al-Quds))'는 '거룩한' 또는 '거룩한 성소'를 의미하는데, مدينة القُدس (Madīnat al-Quds; '거룩한 성소의 도시')를 줄인 형태일 수 있습니다.

 

'라말라'는 아랍어로 '신 (الله (Allāh))' 의 '산/언덕 (رام (Rām))'이라는 뜻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1517년에 팔레스타인을 장악하였고, 아랍계 기독교 부족인 하다딘 부족이 16세기 중반에 라말라를 건설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으로 몰락하자, 영국군이 1920년에 라말라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설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요르단이 동예루살렘과 라말라를 비롯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967년에 발발한 제3차 중동 전쟁으로 동예루살렘과 라말라를 비롯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점령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통치에 불만을 가졌고, 1987년에 대대적으로 봉기합니다 (제1차 인티파다).

 

제1차 인티파다 결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 사이에 오슬로 협정이 맺어졌고,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됩니다.

 

오슬로 협정에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총 3개의 구획으로 나뉘었습니다:

 

a) A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18%.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행정권과 경찰권을 가짐.
b) B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22%.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행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함께 경찰권을 행사함.
c) C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60%. 이스라엘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가짐. A지구와 B지구를 수백 개의 구획으로 분할하고 있음.

 

(동)예루살렘은 오슬로 협정 논의에서 제외되었고, 라말라는 A지구로 분류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명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라말라가 (임시) 행정 수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동)예루살렘, 라말라로 써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의미에 가까운 표기인 쿠드스, 람알라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7) 키프로스 - 니코시아 / Λευκωσιά (Lefkosía) (그리스어), Lefkoşa (튀르키예어) / 레프코시아

 

니코시아.png

니코시아의 깃발/문장

 

--> '니코시아'는 그리스어 λευκός (leukós; '하얀') + θεός (theós; '신')이 합성된 표현인 Λευτεῶν (Leuteō̂n), Λευκοθέον (Leukothéon), Λευκοί Θεοί (Leukoí Theoi), Λευκούπολις (Leukoúpolis) 등이 동로마 제국 시기 Λευκουσία (Leukousía)로 정착되어 '하얀 자산 (ἡ λευκή οὐσία (hē leukḗ ousía))'을 의미하게 된 것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십자군 시기 지명이 전해지면서 L과 N이 혼용되고 발음이 바뀌는 과정을 거쳐 라틴어 표현인 Nicosia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고대 '레드라 (Λήδρα (Ledra))'로 불리우는 도시 국가가 있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인 기원전 280년에 앞서 언급된 '레우테온 (Λευτεῶν (Leuteō̂n))', '레우코테온 (Λευκοθέον (Leukothéon))' 등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또한 서기 4세기 경에는 주교좌가 설치되고, '레프코시아 (Λευκουσία (Leukousía))'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키프로스 섬의 중심지였던 살라미스 (Σαλαμίς (Salamis))가 647년 아랍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뒤 키프로스의 내륙 지역이 중요해졌고, 비잔틴 제국이 키프로스 섬의 지배를 회복한 뒤 965년에 이 도시는 키프로스 섬의 중심 도시가 됩니다.

 

제3차 십자군 전쟁 당시 키프로스 섬이 잉글랜드 왕국의 리처드 1세 (Richard I of England, 1157-1199)에게 점령된 뒤, 리처드 1세는 1192년에 성전 기사단에 이 섬을 매각하였습니다.

 

성전 기사단의 기 드 뤼지냥 (Guy de Lusignan, 1159-1194)은 키프로스 왕국을 세우고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니코시아'라는 라틴어 표현이 사용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1489년에 키프로스를 점령하여 키프로스 왕국을 멸망시켰고, 1570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키프로스를 장악했습니다.

 

키프로스는 1878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베를린 회의에서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도운 대가로 실질적인 통치권을 넘겨 받고,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정식으로 합병합니다.

 

키프로스가 1960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로도 니코시아는 키프로스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 주민들이 대립한 끝에 그리스계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키프로스 정부를 전복시켰고, 이를 명분으로 튀르키예가 1974년에 키프로스 문제에 개입하면서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며, 니코시아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니코시아'로 쓰는 것도 좋지만, 그리스어/튀르키예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레프코시아'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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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나라의 수도 (0) 개괄: https://itssa.co.kr/living/14553505
세계 각 나라의 수도 (1) 동북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553544
세계 각 나라의 수도 (2) 동남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576021
세계 각 나라의 수도 (3) 남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602915
세계 각 나라의 수도 (4) 서아시아 - 아라비아 반도: https://itssa.co.kr/living/1486331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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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7.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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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그다드는 순니파가 중심이 되었던 압바스 왕조의 수도였지만, 쉬아파의 성지도 있습니다 (마스지드 알-카지마야 (مَسْجِد ٱلْكَاظِمِيَّة (Masjid al-Kāẓimiyya))). 이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들이 쉬아파 이맘들을 경계하여 바그다드로 소환한 뒤 죽을 때까지 감금했고, 그 결과 바그다드에 쉬아파의 분파인 12이맘파의 7대 이맘 무사 알 카짐과 9대 이맘 무함마드 알 자와드가 안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다마스쿠스는 역사가 매우 오래된 도시로 성경에도 등장하는데, 가톨릭 성경에서는 '다마스쿠스', 개신교 성경에서는 '다메섹' 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원래 기독교를 탄압했는데, 이곳을 여행하다 회심하여 기독교를 믿게 된 것에서 유래한 'road to Damascus (생각이나 믿음에 있어 큰 변화/반전이 일어나는 경험)'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3. 암만은 토박이가 거의 없는 도시인데, 팔레스타인 (1948년, 1967년), 이라크 (1990년, 2003년), 시리아 (2011년~)로부터 난민이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4. 베이루트는 로마 제국 당시 로마법 연구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베이루트의 깃발과 문장에는 책이 그려져 있고 라틴어와 아랍어로 '베이루트, 법들의 어머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5. 예루살렘은 국제법과 유엔 총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르면 국제법상으로 유엔군이 다스리는 중립 지대로 영유권의 귀속을 유보한 공간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What is Jerusalem worth? ???: Nothing... Everything!
    6. 텔아비브에는 이스라엘의 수교국들의 대사급 외교공관들이 많은데, 이는 예루살렘 관구에 상주하는 대사급 외교공관들의 철수를 요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한 478호에 의거한 것입니다. 주 이스라엘 대한민국 대사관도 텔아비브에 있습니다.
    7. 라말라에는 주 팔레스타인 대한민국 대표 사무소가 소재합니다.
    8. 니코시아는 1974년에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2003년부터 남북간 횡단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 2024.07.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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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발과 문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7.0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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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킬라칙칙

    저도  그런거 좋아합니다

  • 2024.07.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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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오래된 역사가 있는 지역이지만 동서양의 중간에 위치하다보니 굴곡도 심하고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지역이네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7.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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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번시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7.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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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데,,,이런거 조사하면서 머리에 다 넣고 쓰느거에여?? 아니믄 대부분 넣은 상태에서 몇개 추가하고 쓰는거에요?? 님들 읽다보면 지식이 너무 방대해져서 저는 뒤죽박죽됨 ㅎ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7.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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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유불금

    조사하면서 메모장에 정리해놨다가 복사-붙여넣기해서 합니다.

  • 2024.07.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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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지구본연구소 들으려고 샀던 지구본 다시 꺼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7.0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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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oo52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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