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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7.02 14:12  (수정 07.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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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5029719

1.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강박적 편집증이 꽤 심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인격장애 수준이었는데,

덕택에 외삼촌을 제외한 가족들은 꽤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할머니의 천성과 멋대로 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주위를 볶는

성품으로 (되면 한다!가 아니라 하면 된다!의 불굴의 의지)

딸 둘은 평생 할머니를 책임지고 살았지만 독립적인 성품을 갖고,

애완 아들은 의존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존감이 0에 수렴하는

인격 파탄자가 되었다. 그의 사회 부적응은 덤이고.

할머니의 업이며 핏줄의 결과였다.

 

돌아가신지도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들 생각에

집 문을 열라고 문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모습으로

가끔씩 꿈에 나오신다.

어떤 종류이든 집착은  버려야한다.

스스로를 망치고, 주위를 버린다.

가족들 모두가 어느정도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그 집에서 가볍게 나올 수 있었다.

90넘은 노인네의 임종까지는 버텼으니 가족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남겨진 "아들"과 돌아가신 할머니는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책도 음반도 아끼던 모든 것을 두고 나왔다.

집착과 미련을 던질 때의 쾌감은 던져봐야 알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기억 속에 있고, 인터넷만 있으면 아쉬울 것이 없다.

삶의 어느 순간에 한번쯤은 게워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2.

성장 과정에 빌런이 있어서였는지,

무난하면서도 무난하지 않은 성품이었다.

학창 시절은 내내 스스로를 바라보며 깎아내는 기간이었다.

사회성을 익히기에 대한민국의 여학교 만한 것은 없다.

세렝게티보다 치열한 투쟁의 장소.

국민학교때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샘 부리는 아이들이 구두를 쓰레기장에 던져버려 집에

늦게까지도 집에 못간 적이 있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누가 훔쳐갔어"란 말을 입버릇 처럼 했나보다.

3학년즈음 짝이 말했다.

너는 왜 물건을 잃어버려놓고 다른 사람을 도둑취급하냐고.

객관화된 내모습을 인생에서 처음 마주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입버릇이었다. 우리집에서는 관용구였다.

나는 그런 식으로 학창 시절 내내  <적응>할 수 있게 연습했다.

배웠다. 따돌림도 당해봤고 언어 폭력도 당해봤는데,

그것들은 나에게 상처도 남겼지만 교훈도 얻었다.

스스로는 상처보다 그렇게 익힌 사회성과 매너의 가치가

더 높다고 느낀다. 그 시절 배우지 못했다면 이후의 내 인생은

<이유도 모르고 비참>했겠지.

겪을 수 있는 경험에서 얻지 못할 교훈은 없다.

그러니 상처만 보고 나아가지 못하면 안된다.

유치하지만 진짜 "피가되고, 살이된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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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2 14:14
    베스트

    9ab1ad0bb6b5624e8d48664ef752f2f8.gif

  • 2024.07.02 14:21
    베스트

    인생은 참 어려워요.

    나이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것도 아니고

    경험이 쌓인다고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자꾸 작아져가는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 2024.07.02 14:22  (수정 07.02 14:25)
    베스트

    작은 생채기가 암사자님을 거대 커뮤니티 '잇싸'의 시인으로 견인해 주었을까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24.07.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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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위로 토닥토닥.  유년기 청소년기의 가정과 학교에서의 생채기. 

  • 2024.07.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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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렝게티보다 치열한...크으 ㅠㅠ 심금을 울립니다 ㅠㅠ

  • 2024.07.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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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여학교가 그런 곳일 줄 이제 처음 알았음.

    난 세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또렷함. 가끔씩 우리 집에 와서 꽤 오랫동안 머물며 온 집안을 긴장시켰던 표독한(?) 성격.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2024.07.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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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글은 요즘 저에게 꼭 필요한 말들이네요 ㅜㅜ

    상처를 잘 살피면서 성장해가는 사람으로 만들기위해 엄마로써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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