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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이상만
EastSideStory
2024.04.20 05:07
155
7
https://itssa.co.kr/13326591

마찬가지로 개성, 서울을 비롯한 예성강, 임진강, 한강 유역도 신라에게는 그저 변방...

그런데 갑자기 이 지역 호족들이 강성해지고 나라를 세운다. 

그게 태봉을 거친 고려..

 

고려의 왕건은 할아버지가 무려 당 숙종(또는 선종)의 사생아 작제건???

즉 고려는 왕건을 당나라 사람 후손이라 주장했다.

 

중국의 당말 오대십국의 난때 난을 피하여 상당수의 당인들이 바다를 건너 현재의 경기도 지방으로 이주했고

이들이 당나라를 세운 호족의 중심아니었을까..

그러니 이때부터 전해져 온 중국계 성씨는 당인과 혼혈일 거 같다는...

 

근데 왜 발해는 평양을 버렸냐규우!!

날씨도 평양이 만주보다 더 좋구마이!!!

그때는 만주 기후가 솔찮히 좋았던건가..

 

당(唐) 선종(宣宗)의 나이 13세 때는 당 목종(穆宗)의 재위 때인데 장난 삼아 황제의 용상에 올라가 신하들에게 절(揖)하는 자세를 지었다.
목종(穆宗)의 아들 무종(武宗)은 마음으로 그를 꺼리더니 무종(武宗)이 즉위하매 선종(宣宗)이 궁중에서 해(害)를 만나 기절하였다가 다시 소생하여 몰래 빠져 나와 멀리 도망하여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고루 세상의 험난함을 맛보았다.
염관(鹽官)의 안선사(安禪師)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대우가 특히 각별하였으므로 염관(鹽官)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또 선종은 일찍이 광왕(光王)이 되었는데 광군(光郡)은 곧 양주(楊州)의 속군(屬郡)이요. 염관(鹽官)은 항주(抗州)의 속현(屬縣)이니 다 동해에 접하여 있어 상선이 왕래하는 지방이었으므로 화를 무서워하여 항상 깊이 숨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산수를 유람하는 것으로 명목 삼아 상선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선종이 신라 송악 마가갑(摩訶岬) 양자동(養子洞)에 이르러 보육(寶育)의 집에 머무를 때 두 딸을 보고 기뻐하며 옷이 따진 곳을 꿰매 주기를 청하였다.
보육(寶育)은 중국에서 온 귀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마음 속에 "과연 술사(術士)의 말과 부합된다."고 생각하고 곧 큰딸로 하여금 명에 응하게 하였더니 문턱을 넘다가 코에 피가 흘러나오므로 진의(辰義)를 대신으로 드디어 천침(薦枕)하게 되었다.
기월(期月) 동안 머무르다가 임신하였음을 깨닫고 작별할 때 말하기를, "나는 당(唐)의 귀성(貴姓)이라." 하고 활과 화살을 주며 "아들을 낳거든 이것을 주라."고 하였다.
곧 아들이 태어나니 작제건(作帝建)이다.

개털리우스였음. 테장금 준비중.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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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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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기후가 좋았을거 같지는 않아요

    드럽게 추워요

  • 2024.04.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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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가 설 때는 신라가 대동강 이남을 잡고 있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말갈족을 이끌고 무주군으로 부터 도망칠 곳으로 동모산이 그나마 나아서가 아닐까요? 평양까지 어느세월에ㅜ가여

  • 테트라고날 작성자
    2024.04.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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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복오크

    근데 노력을 안혔자나유우..왕건 사촌동생이 평양에 군대몰고 갔을때는 여진족 소굴됐었다구 했었지예..

  • 2024.04.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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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2024.04.2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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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 만화책을 빌려놨는데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가 어디서 나올려나 ㅋㅋ 힌번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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