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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5.0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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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가 실제로 체험했던 것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와 나는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함께 뛰놀고, 행동했다는 의미에서, 우리 두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소년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느 누구도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굴욕을 당하거나, 심지어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폭력이나 분노로 반응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적이었던 아이들은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200년 사이에, 어떠한 이야기들이, 즉 예수가 어린 소년으로서,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오늘날의 작가들에 의해서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다른 아이들을 치유하고, 죽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었다거나, 아니면 진흙으로 상(像)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주장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예수에 대해 더 신비적인 관점에 열려있는 현대인들을 속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또다시, 예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의 본보기를 따르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또다시, 유대인들의 출애굽기(성경에 묘사된 것처럼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또 다른 사건)와 예수를 인위적으로 결부시키기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헤롯(Herod)왕은 육화해 있던 추락한 존재였으며, 특정한 시기에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였던 것은 추락한 존재들이 할 수 있었던 범위에서 결코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로의 피신은 하지 않았으며, 예수와 나는 나사로에서 어린 시절을 계속 살았으며, 마을을 벗어나, 멀리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

나에게는, 예수가 정상적인 아이였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약간이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야기는 예수가 초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강한 직관력은 갖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가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마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를 고집불통이고, 완고한 아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예수는 그렇게 완고하지 않았으며, 단지 어떤 사람이나, 외적인 환경, 혹은 관습으로 인해, 자신이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결코 굽히려고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하게 여길 정도로, 자신들 주위에 단단한 우리(cage)를 만드는 관습과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만약 안식일(Sabbath) 기간 중에, 현대 이스라엘을 방문해, 엘리베이터를 타 본 적이 있다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좀 달랐지만, 그러한 전통들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으며, 예수는 그러한 전통들에 대해 인내심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는 여덟 살 때부터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특정한 전통들에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초기에는 이것이 집안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나는 두 가지 경우를 목격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나이 많은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나게 됨으로써, 전통을 깨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꽤 젊은 나이에 어머니가 되었으며, 예수가 공동체 내에서 정상적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가진 보호본능의 표현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임신하기 전부터, 예수가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만약 예수가 정상적인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나쁜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가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는 이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여덟 살에, 예수는 오늘날 주일학교와 비슷한 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나는 주일학교에 함께 가기 위해 예수를 데리러 갔으며, 나는 예수가 부엌의 한가운데에서 평범한 옷을 입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집게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평상시의 그녀의 온화한 얼굴에서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단호한 표정으로 예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 역시도 얼굴 표정이 아주 단호해 보였으며, 나는 이전에도 예수의 이러한 표정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너는 내 아들이야, 그리고 이 마을의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너도 주일학교를 가야 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차분하게, “어머니,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가지 않을래요.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나는 그걸 믿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눈에 띌 정도로 속상해했으며, 거의 화가 난 목소리로,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믿음과 관습을 안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어. 나는 네 엄마고, 내가 가라고 하면, 가야 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도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이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두 사람 간의 관계에 해(害)가 될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입을 벌린 채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갑자기 예수는 입을 다물었으며, 잠시 전체적인 상황이 외부와 단절된 채 중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예수는 “엄마, 가겠어요,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가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나는 예수를 따라가면서, 뒤를 돌아다보았으며,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에는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녀 역시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예수가 자신의 경계를 정하도록(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 마리아가 이해하게 될 때까지, 이와 유사한 상황들은 많이 일어났었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자신의 경계를 아주 잘 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요셉은 나이도 많고, (전 부인과의 사이의) 다른 아이들도 있었으므로, 어머니 마리아보다는 경험이 많았습니다. 요셉은 예수가 잘 처신할 수 있으며, 예수에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의식이 대다수의 사람들보다는 높은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나 어머니 마리아보다는 낮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그들의 더 큰 권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자신도 예수처럼, 의식의 144번째 단계에 거의 근접해 있었습니다. 그녀가 어머니였기 때문에, 그녀는 특정한 부분에서 예수가 자신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예수 역시도 어머니만큼 커다란 영적인 업적을 성취했다고 느꼈으므로, 어머니의 권위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144번째의 의식 단계에 근접해감에 따라,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으며, 몇몇 경우들에서는, 이로 인해 상승이 실제로 늦어지거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에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다 높은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낮은 권위에 굴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사명이 타인들을 돕는 것이라면, 그들을 돕기 위해, 때로는 내면적으로는 굴복하지 않지만, 겉으로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고도로 진화해 있는 많은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섬세한 균형입니다.

 

후년에, 어머니 마리아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던 예수를 정말로 다루기 힘들었다고 때때로 토로하곤 했었습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에게는 그것이 정말로 힘들었을 거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보면, 예수가 무의미한 관습과 전통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강요할 필요가 없는 이러한 관습과 전통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전통과 관습에 저항할 용기가 거의 없었던 반면에, 예수는 감히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 깊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예수는 혼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요셉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네 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요셉이 건강한 남성이었으며, 또한 어머니 마리아가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므로, 이 두 사람 사이에도 예수 다음으로 두 명의 자녀가 더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집에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이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은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아주 빠르게 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 했다고 느끼면, 예수는 종종 밖으로 나가, 그늘 밑에 앉아, 언덕과 계곡을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나는 빠르게 배웠으며, 그 이유는 단지, 예수가 눈을 감고 있거나, 멍하게 앉아 있었으며,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을 혼자 앉아 있곤 했습니다. 한 번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 예수는 “사람은 생각하게 되어 있는 것 아냐?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고통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생각하지 않는 거라고 여기지 않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열 살이었던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예수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예수가 자신이 맡은 일을 다 하고 나면, 다른 일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가 예수에게 다른 일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예수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빨리 끝내고, 혼자 있을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은 아주 차분한 성격이었으며, 그는 조용히 어머니 마리아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요셉은 그녀의 볼에 손을 갖다 대며, 아주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여보, 우리 둘은 예수가 다른 아이들 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 내 생각에는, 예수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예수를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예수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도록 방해할 뿐이야. 그러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손실이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사랑에,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이 바뀐 것처럼 보였으며, 그 이후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간의 사랑을 목격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생에서, 내 부모의 사랑에 뭔가가 잘못이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거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호 수용과 상호인정(認定)이라는 오라가 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

 

예수와 나에게 특별했던 것은 이전의 육화들을 통해, 우리 두 사람이 영성과 신비주의 그리고 종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거기에 대한 지식을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것들에 대해 폭넓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내 아버지는 대개 같은 작업장에서 함께 일했으며(이들은 목공일뿐만 아니라, 기술을 요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일을 할 수 있었음), 우리에게 종종 유대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들과 자신들이 믿고 있던 신비적인 믿음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습니다. 따라서 모험과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는 종교와 신비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이전의 생들을 살아가는 동안, 상당히 높은 수준의 영적인 업적을 성취했으며, 예수는 144번째의 의식 수준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이 수준에 이르게 되면, 과거 생들에서 성취한 업적을 많이 지닐 수 있게 되며, 꽤 어린 나이에도 이러한 업적에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차르트가 다섯 살의 나이에 음악을 작곡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은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이전에 이해했던 것에 다가갔으며, 우리끼리 많은 토론도 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요셉 - 성경에는 아리마테아의 요셉(Joseph of Aramithea)으로 알려져 있음 - 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한 명이 있었으며, 그는 상인으로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또한, 그도 우리의 아버지들이 다녔던 신비 학교를 다녔으며, 그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신이 접했던 종교 혹은 영적인 가르침들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곤 했습니다. 그는 종종 먼 나라에서 온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으며, 우리는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그들이 가진 믿음들에 대해 열심히 들었으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아직 의식적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

 

12살이 되었을 때, 우리의 어린 시절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은 일종의 은총의 시기로, 대부분의 카르마, 혹은 사명을 다룰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12살이 되면, 카르마의 주요한 부분이 내려오게 되며, 이것이 십 대의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12살)가 되면, 보다 더 진보해 있는 영혼들은 이번 생에서 자신들이 지닌 사명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크게 결여되어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삶에는 어떠한 사명이 존재한다는 것(혹은 삶에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들이 양육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인식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내 부모들은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생에 육화했을 때, 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이러한 직관적인 인식은 단계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 설명되어 있는 사건들 중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 하나는 우리가 12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들이 우리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 공히) 그 당시에 유대교의 사원이 어떠했을 거라는 아주 낭만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이 대개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며, 이들은 예루살렘이 고대의 도시이므로, 그 당시에도 모든 것들이 오늘날과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동일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사성은 거기까지입니다.

 

예수와 내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아주 더운 날씨에, 며칠에 걸쳐 여행을 했습니다. 도시에 들어섰을 때, 우리 두 사람은 검은 에너지 구름이 마을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 당시에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에너지장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도시를 덮고 있는 검은 에너지를 느꼈으며,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론, 그 당시에 유대교의 핵심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사(赦)하는 것이었으며, 이렇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식이 동물을 재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질적인 측면에서 이것(동물을 재물로 바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됨에 따라, 우리는 동물의 무리들이 도시를 향해 이동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보다도,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동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이들 모두의 배설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떠한 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불쾌한 냄새였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그와 같은 냄새를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것은 감각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마음과 감정마저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구경거리, 잡다한 많은 소음들 그리고 온갖 냄새들이 가득했습니다.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성전산(temple mount : 聖殿山)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싸우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사원이 틀림없이 굉장히 멋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며, 그 당시의 유대교에서 볼 수 있었던 건축물에 비해, 장관이었을 거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원은 당시에 동양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건축물들, 혹은 현대의 많은 건축물들에 비해, 특별히 크거나,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성전산(聖殿山)에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냄새는 더욱더 강해졌으며, 이제는 소리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유대교의 제사장들이 가장 많은 동물들을 재물로 바치는 날이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소, 양, 염소들이 울타리가 처진 성전산의 한쪽 구역에 갇혀 있었습니다. 의식(儀式)이 시작되자, 재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은 비명소리를 냈으며, 다른 동물들이 이 소리를 듣고, 피 냄새를 맡게 되자, 모든 동물들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식(儀式)은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었습니다.

 

***

 

언덕을 따라 성전산으로 올라가면서, 우리는 피가 계단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이곳저곳에 피가 고여 있었으며,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빠르게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건조되고 있는 피에서 풍기는 냄새와 겁먹은 동물들의 배설물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정말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으며, 너무 혐오스러워, 이곳이 성스러운 장소라는 인식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아예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은 아주 체계화되어 있었으며, 현대 용어로 “산업화(industrialized)”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식으로 인해, 산업적인 규모로 동물에 대한 도축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재물로 바치는 재단의 한쪽으로는 동물들이 한 줄로 서서 안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쪽으로는 동물들의 사체가 한 줄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동물들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그런 다음 죽은 사체를 모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뭔가를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정신이 없었던 많은 군인들을 보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사실,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은 군인들의 마음이 데몬들에게 점령당함으로써, 아무 생각 없이 살생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특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마치 이들이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불안해하거나, 흥분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광기(狂氣)가 서려 있으며,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분명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재물을 바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던 대다수 사람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표정과 정확하게 똑같았습니다.

 

예수와 나는 성전산 위에 검은 에너지 구름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사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우리는 거의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사원 주위에 있는 개방형의 광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거의 걸을 수가 없었으며, 말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수는 나를 쳐다보며, “나는 이곳에서 살아 있는 신(神)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어, 적어도 내가 관계하고 싶어 했던 신(神)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내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원 내에 살아 있는 신(神)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 신(神)은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창조해놓은 신(神)으로,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대인들은 추락한 존재들이 창조해놓은 신(神)을 넘겨받아,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여러 부족들이 창조해놓은 여러 개의 집단적인 영들(spirits)과 하나로 합쳐놓은 거짓된 신(神)이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행성에서 중동지역으로 왔던 진화가 지체된 존재들은 그들 자체로 집단적인 영들(collective spirits)을 지니고 있었으며,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뿐인 최고의 신(神)이라고 추락한 존재들이 주장했던 이 신(神)과 그러한 영체들 가운데 일부가 하나로 합쳐지게 된 것입니다.

 

사원을 마주 보며, 그곳에 서 있는 동안, 갑자기 이 신(神)의 환영이 나타났으며, 나는 이 창조물(creature: 생물)이 유대인들에게 이와 같은 대량학살(bloodbath)을 저지르도록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의 재물을 요구하는 신(神)은 최고의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생에서) 내가 접했던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일은 최고라고 여기는 신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어떻게 그러한 참상을 저지르도록 요구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거세게 밀려오자, 나는 그야말로 심한 구토증이 일어났으며, 남들이 내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의 평정심을 되찾았을 때, 나는 예수를 쳐다보며, 별생각 없이, “누군가는 사람들이 이러한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예수는 벼락을 맞은 듯이, 곧바로 땅바닥에 쓰러졌으며, 거의 1분 동안 의식이 없는 것처럼, 몸을 심하게 떨었습니다. 의식이 다시 돌아와, 일어났을 때, 예수는 나를 보며,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둘은 이 말의 진실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의 부모들, 네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사원 단지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는 몇 명의 랍비(Rabbis: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율법(Torah)을 읽고, 경전들을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이 방의 두꺼운 벽들로 인해, 도축할 때 나오는 대부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강한 향냄새로 인해 역한 냄새도 차단해 주었습니다. 전체 에너지의 장이 약해진 것처럼 보였으며, 얼마 후, 나는 예수를 향해 “이 모든 도축을 하도록 시킨 존재들이 바로 저 제사장들이야. 그리고 이 제사장들은 여기에서 1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율법의 애매한 점들에 대해 강론을 하고 있어. 이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강론이 (동물을 재물로 바치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걸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일부는 모르겠지, 하지만 나머지는 알고 있어, 그렇지만 신경을 쓰지 않아”라고 답했습니다.

 

아버지들은 예루살렘에 볼 일이 있었으며, 어머니들도 사야 할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들을 따라가든지, 아니면 이 홀에 남아있을지 선택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의를 듣기 위해, 여기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일을 다 보고 난 다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떠난 후, 강의를 보다 더 잘 듣기 위해, 우리는 방의 중앙으로 좀 더 가까이 이동했습니다. 강의의 진행을 주도하고 있던 사람이 유대인들의 최고 공의회(the supreme Jewish council)인 산헤드린(Sanhedrin)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 존재가 육화한 루시퍼라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둘은 이 사람이 소문으로 떠도는 마스터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렸으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조종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습니다. 그는 경전에서 특정한 문구들을 읽고 난 후, 먼저 듣는 사람들이 완전히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생각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 문구들을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했으며, 분명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해석을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본 강의가 끝나고 난 후, 방청인들이 공개적으로 질문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루시퍼와 경전에 대한 루시퍼의 해석에 대해, 처음의 몇 사람들은 전혀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예수가 점점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결국 예수는 더 이상 참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는 일어나서, 아주 대찬 목소리로 “지금 당신은 유대교의 신(神)이 죄를 사해주는 대가로, 동물을 재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는데, 최고의 신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데, 왜 동물들이 피를 흘려야 하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루시퍼는 완전히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으며, 충격을 준 것은 예수의 말보다, 예수의 목소리가 지닌 진동이 더 큰 충격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초가 지나자, 루시퍼는 평정심을 되찾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미래에 학자가 될 사람이 있는 것 같네요.”라고 말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서, 고압적인 표정으로 예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이곳이 소년이 이야기할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가 자리에 앉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는 계속 일어선 채, 루시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루시퍼는 예수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며,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면, 난처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면서, 루시퍼는 “신(神)이 예언자들에게 전한 말씀에 따라, 동물을 재물로 바치는 의식(儀式)을 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명령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피를 흘리게 한 죄는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갚아야 하지만, 고대에 했던 것처럼, 인간을 재물로 바치는 대신에, 우리는 동물만 재물로 바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선 채로, “인간이 폭력을 저질렀던 의식을 바꾸지 않았는데, 순수한 동물들이 피를 흘리게 한다고 해서, 이것이 어떻게 인간이 저지른 죄를 보상할 수 있나요?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없애려고 하지 않으면서, 죄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믿는 신은 장사꾼인가요, 아니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천상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폭력과 이기심을 키우기를 바라는 것인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루시퍼는 벼락을 맞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루시퍼는 자기만의 계시, 즉 그 생에서의 루시퍼의 주요 사명이 예수의 사명을 파괴하는 거라는 것을 어둠의 마스터가 보여주는 계시를 이미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말을 멈춘 후, 루시퍼의 표정은 편안해 보이지 않았으며, 그는 사원과 관련하여,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루시퍼는 부하들에게 이 토론의 진행을 대신 맡으라고 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예수가 했던 말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몇몇 사람들이 주제를 바꾸어 이야기하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예수와 나는 부모님들이 돌아올 때까지, 뒤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

 

부모님들이 도착하여, 우리가 떠나려고 할 때, 루시퍼와 다른 두 명의 제사장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며, 루시퍼는 요셉에게 “당신이 이 젊은 친구의 아버지인 것 같군요, 당신과 이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요셉이 대답을 하고 나자, 루시퍼는 “나는 방금 전에 어린 예수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경전에 대해 뛰어난 안목과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원에서는 도제(제자)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내 참모들과 상의하고 난 후,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어떠한 자리를 예수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예수는 율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언젠가는 사제단에도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종교적인 권위가 있는, 이 사원의 어떠한 위치(지위)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머물면서, 예수는 우리의 개인적인 안내를 받아, 곧바로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루시퍼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예수가 엄청난 위험을 느끼고 있으며, 요셉과 마리아도 분명히 그러한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요셉이 예수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예수는 머리를 약간 흔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요셉은 루시퍼를 향해, “그런 제의를 해주시다니, 당연히 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좀 더 신중하게 이 문제를 고려해 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늙어가고 있으며, 지금은 나 대신 내 아들들이 많은 일들을 맡아야 할 때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며칠간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우리가 결정을 하고 난 후,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평범한 장인(匠人)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에 대해, 루시퍼는 아주 불쾌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루시퍼는 요셉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난 후, 요셉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시퍼는 “예수를 가능한 한 빨리 훈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동의한다는 듯이 말을 얼버무리고, 우리는 길을 나섰습니다. 문을 통과하고 난 후,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으며, 마치 루시퍼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만 천둥 구름처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문제의 끝이 아닐 거라는 것을 생각했으며, 실제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가 성곽 밖으로 빠져나오자, 갑자기 예수가 쓰러졌으며, 한동안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숨을 헐떡이며, “극도의 위험에서 막 벗어난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우리가 그 위험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감지했기 때문이며, 요셉과 마리아도 똑같이 느꼈으므로, 우리는 길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요셉과 내 아버지는 신비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민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그의 집을 들렀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난 후, 집 주인은 이웃에 살고 있던 같은 회원들을 몇 사람 불렀습니다. 이들은 몇 마리의 말을 빠르게 준비했으며, 우리는 어둠을 틈 타, 열 명 정도의 무장한 남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나사로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을 루시퍼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 아버지의 동생인, 아리마테아의 요셉에게 연락하기 위해, 우리는 우회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와 연락이 닿는데 이틀이 소요되었으며, 짧은 대책 회의를 마친 후, 가장 안전한 방법은 예수를 요셉의 캐러밴(caravans : 이동식 주택)에 태워, 동쪽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다른 많은 종교들과 영적인 가르침들을 직접 체험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언제 다시 보게 될지도 알지 못한 채,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가슴 아픈 시간이 있었으며, 요셉에게는 이것이 현실이 되었으며, 우리가 갈릴리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그는 죽었습니다. 작별 인사를 끝내고 난 후, 나는 간신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내가 예수와 함께 갈 거라는 것을 알고 계시겠죠. 이것은 정말로 이번 생에서 내가 해야 하는 사명의 일부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으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나를 보고, “너를 놔두고, 혼자서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너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물론, 알고 있었지, 부모님들께서도 알아주시기를 바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부모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동쪽을 향해 미지의 세계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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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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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피씨로 써요 모바일로 써요?

  • 2024.05.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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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긁어 오셨어요?

  • 2024.05.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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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로 가는 시나리오인가요?

  • 2024.05.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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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이 즈질인디..

  • 2024.05.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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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 뭐하는 사람인지?  신흥종교?

  • 2024.05.0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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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교단에서 나오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