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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평론] 이념을 위해 죽는 것
2022.09.0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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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90041

진보의 방향을 잘 설정했더라도 그 방향의 끝은 절멸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며, 오로지 속도의 완급에서의 시간 - Chaos=E*1/F(x=Logos)=Cosmos'에서 E*1/F(x=Logos, pathos, ēthos)가 바로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시간성이며, E가 엔트로피, 즉 인간이 사용가능할 수 있는 총에너지와 Logos, pathos, ēthos 가 인간의 총체적 이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시간의 완급 조절뿐입니다.- 성에 의해 진보(그것이 공산주의가 됐든 무정부주의가 됐든)는 그 진위에 걸맞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진보진영에서만 무성했던 진보운동과 좌파적 의미는 뭘까, 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내부에서 반목질시만이 핏대를 세우고 갈 뿐이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보수*극우의 반대한다는 논거에 불구하고도 진작 그 내부의 반대논거는 오로지 그 내부에 있을 따름이란 것을 말입니다. 왜, 내부의 통일은 그렇게 어려운 걸까,를 절치부심했습니다.

그러고서 제가 얻은 결론은 인간 사이(틈)의 간격은 의외로 수 많은 질점으로 가득하다는 걸 돈오로 깨달았습니다. 오직 인간들 개개인의 양심은 각자의 자신감과 자만을 충족시킬 만큼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껏 인간사의 질서에서는 필연(생의 의지든 권력의 의지의 끝없는 투쟁의 연속으로 인한 인간 이해의 합일과 통일이 분열될 수밖에 없는)이라는 것을 눈이 시리도록 느꼈습니다.

 

따라서 좌파적 성격의 투쟁의 조건이 완성될 수 있는 시점은 오로지 신적 폭력(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개념에 의지하자면)에 기대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유럽 사민주의에 바탕을 둔 복지적 성격의 정책이 완벽하다면 좌파대중투쟁은 어쩜 필요가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치적*경제적 입장의 어느 편에 서길 언제나 강요당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권 투쟁의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전적으로 합당한 가치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국면이 됩니다.

즉 복지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완비하고 있다고 해도 복지 정책의 철학적 비전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인간 개개인나 집단 이익의 그 투쟁양상은 오로지 힘 있는 자(생의 의지들로 넘쳐나는)들의 편의에 따라 조정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에 의해 이해 당상자간에 불거져 나오는 저항과 대립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투쟁의 조건도 성립할 수는 있지만 그 저항을 합리적 방안으로 조정*해결하는 문제는 극히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보의 최고 단계, 즉 좌파적 혁명의 완성을 향해 가는 그 과정 자체가 진보(좌파)라면, 우리는 그 진보의 진위적 성격 규정이나 어떤 상태가 진보인지에 대해 더 이상 규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무엇(보수나 극우/파시즘적 정치행태)에 대한 그 무엇(좌파적 성격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이 상대적 의미로서만 그 의의를 갖게 될 뿐, 생존투쟁 상태의 조건이나 권력투쟁의 
연속성에 놓이는 상황만 재현될 뿐입니다.

진보가 어떤 선한 민주적 절차(그것이 선거라는 형태)나 혁명에 의해 어떤 정치 구조형태의 권력이 진보성을 획득했다손 치더라도 이전의 투쟁에서 보여지는 그 치열성은 차츰 퇴색되는 가운데 국가 자체의 권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치구조(인간이 만들어 가는 정치구조가 필연적으로 폐쇄성을 띤다는 증거입니다. 왜냐면 내부에서는 언제나 권력투쟁이 벌어지기에)는 더 공고해지는 게 인간의 역사였습니다.

지금처럼 점점 더 자본(물적 토대)의 위세가 창궐하는 글로벌 시대에서는 그 조정 관계 역시, 그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도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그 안정성을 스스로 파괴시킬 만한 절멸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생명현상의 기본 테제입니다. 그것이 생존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됐든 뭐든 간에 말입니다.

 

진정 진보(좌파)의 문제는 인간 본연의 이데를 맛볼 수 있는 조건(그 진보의 완성되는 순간,시점)의 완성, 다시 말해 완전히 국가의 소멸이나 생의 의지의 절멸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 인간의 끈질긴 생명 현상에서 그 진보에 걸맞는 이상을 절대로 맛볼 수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이 진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맛보게 되는 그 날이 바로 인간 역사의 종말(신적 폭력)입니다.

전 인간의 인식적 진보(정치와 경제적 이상)를 어처구니 없는 절망에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자신의 희망마저 뭉개버리고 마는 인식적 내지 필연적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혁명(진보라고 불리우는 모든 형태의 인식)이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종국에 가서나 겨우 맛볼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혁명이 성취되었다고 믿어질 때 그 제도화된 혁명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역사의 구체적인 개념을 통해서 볼 때 각각의 관념은 각 역사적 단계의 사회적 추진력에 불과하며, 따라서 모든 진보는 애매모호할 수 밖에 없다. 하나하나의 진보는 일정한 위기 상황에서 성취된 것이며, 곧 그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중략)...대립이나 자유 없는 변증법이 있을 수 없듯이, 혁명의 와중에서 저항이나 자유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알려진 모든 혁명이 타락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즉 확립된 정권으로서의 혁명은 결코 운동으로서 과거에 존재했던 혁명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말하자면 혁명은 성공했고 하나의 제도로서 마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역사적 운동으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은 성취되면서 자체를 '배반'하고 '손상'시킨다. 혁명은 운동으로서 진실이고 정권으로서는 거짓인 것이다." - M. 퐁티, '변증법의 모험' - 중에서.

 

+

 


조르주 브라상스 _ Mourir pour des idées / 이념을 위해 죽는 것


이념을 위해 죽는 것, 생각은 대단한 거지.
난, 난 그걸 가져본 적 없어 죽음 면했네.
그걸 가졌던 사람들은, 짓누르는 듯한 무리들은
모두 죽음을 울부짖으며 내 위로 쓰러졌네.
그래 그들은 날 설득했고, 내 무례했던 뮤즈는
제 과오를 버리고 그들 믿음에 가담했네.
그렇지만 조그만 단서를 하나 달고: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머무적거리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또 가는 길에 빈둥거리며, 저 세상으로 가자.
너무 속력을 내다보면, 이튿날엔 안 통하는
이념을 위해 죽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 쓰라린,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신에게 혼을 되돌려준 뒤라도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잘못된 이념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게 좋아.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순교를 설파하는, 황금 빛 입*의 '성스러운 사람들'은
더구나 대개는 이곳 낮은 데에서 꾸물거리지.
이념을 위해 죽는 것-다시 한번 말해 두는데-
그건 그들 삶의 이유야. 그들은 그걸 포기하지 않지.
그래 거의 모든 종파에서 곧 므두셀라보다
더 오래 살게 될 사람을 우리는 보게 되지.
난 그들이 나직이 다음처럼 말해야 한다고 결론짓지: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유명한 희생을 요구하는 이념을,
온갖 종류의 종파들은 줄줄이 내놓지.
그럼 풋내기 희생자는 묻게 되지:
이념을 위해 죽는 건 정말 좋은 일인데, 어떤 이념?
그리고 모두들 서로 비슷해서,
그들이 큰 깃발을 들고 오는 걸 보면,
분별 있는 사람은 멈칫하며, 무덤을 돌아갈 거야.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황소 백 마리의 산 제물로 몇 번 충분하여,
결국 모든 게 바뀌고, 모든 게 정돈된다면야!
그 많은 에, 그 많은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면,
우린 벌써 지상 낙원에 살고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황금 시대는 끊임없이 무기한 미뤄지고,
신들은 늘 목 말라 하고, 물릴 줄 모른다네.
그리고 늘 다시 시작하는 건 죽음이야,..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선동자들이여, 잘난 전도자들이여,
그대들 먼저 가오, 우리가 그대들에게 양보하리라.
하지만, 부디 딴 사람들은 살게 내버려 두오!
목숨은 이들이 이 땅에서 가진 하나뿐인 사치라오.
나중에 저승사자가 몸소 알아서 신경 쓸 테니
사람들이 일부러 낫을 쥘 필요 없는 것이오.
단두대 주변의 죽음의 춤이 더 이상 없길!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서서히,
좋아, 하지만 서서히.

 

https://youtu.be/A2n5_q01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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