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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10.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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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980767

전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고장) 면내에 5일장이 서면 항상 외할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여러 곳에서 모인 장돌뱅이들의 왁짜지껄하던 시장 안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여름 철 장날에 갔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외할머니는 이면수(생선의 이름)와 외(할머니는 참외를 항상 '외'라고 하셨다)를 사셨고, 전 옆에서 물끄러미 외할머니가 장사꾼들과 흥정하는 모습을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봤습니다. 시골장 풍경은 한 마디로 온갖 맛나는 먹거리로 풍성했기에 장이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면내에 장이 설 때면 왕복 5km가 족히 되는 길을 할머니랑 손잡고서 오가곤 했습니다. 그 당시 시내 버스가 없었던 시절이라, 비포장 도로를 터벅터벅 외할머니를 따라 걸었던 그 길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로수로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미루나무가 길 양옆으로 고즈넉히 턱 버티고 서 있었고, 그 길 옆으로는 주천강이 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습니다. 

 

저의 외가는 작은 면내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지구리'라는 마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을 맞이하면 언제나 외할머님 댁에 가서 방학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리움이 서려 있던 외할머님 댁 정경을 떠올려 봅니다.
 
우선 잊을 수 없었던 정경은 뒷마당 푸른 이끼를 배경으로 서 있던 자두 나무와 앵두 나무입니다. 이른 여름 아침, 앵두 나무에 가보면 간밤에 검은 왕거미가 어김 없이 앵두 나무 가지 사이에다 거미줄을 수놓았습니다. 그럼 새벽에 곱디고운 이슬방울이 맺힙니다. 간혹가다 이른 아침에 깨어 잠이 가시지도 않은 눈을 부시시 뜨고, 전 그 거미줄을 쳐다보며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까 하고 넋을 빼놓고 한참 쳐다봤습니다.

 

아침이 지나 한낮이 찾아오면 그리 높지 않은 뒷동산에서 매미가 연실 '맴맴'하며 울어댔습니다. 낮은 뒷동산은 정말 사진 속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낮은 초목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동네 아이들과 공을 차기도 했고 여러 곤충을 잡아 채집하기도 한 자연 학습장과도 같은 구실을 했습니다.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자연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집 밖을 나서면 논두렁이 보이고 앞에는 개천이 흘렀습니다. 그 곳에서 아이들과 멱도 감고 어항을 놓아 탱바귀와 모래무지도 잡고, 아니면 논두렁 수로에서 족대로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곤 했습니다. 또한 들판녘을 새까맣게 수 놓았던 잠자리떼와 푸르디 푸른 논자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즐거웠던 한때는 잠자리를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반나절을 보내며 논들녘을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전 이상한 풍경도 목격하곤 했습니다. 한낮에 내려쬐는 뙤약볕을 피해 툇마루에 앉아 있자면, 이따금씩 살모사나 구렁이가 뒷 담벼락을 타고 유유히 가로질러 장독대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뱀이라는 요물이 제겐 그렇게 무서운 동물이었다기 보다는 신기한 영물과도 같았습니다. 심지어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전 종종 뱀을 보기 위에 툇마루에 걸터 앉아 뱀이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살금살금 뒤를 쫓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안 보이는 구멍으로 재빨리 뱀이 달아났지만 말입니다. 더군다나, 독이 있는 줄 몰랐던 저로서는 할머니에게 그 광경을 들키고 나서는 혼쭐이 나기도 했습니다. '뱀에게 물리면 죽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온몸이 싸늘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집 외양간의 오물이 나오는 곳에서 죽은 어미 살모사의 뱃속에서 어린 새끼들이 여러마리 뒤엉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아연질색했습니다. 그 풍경이 몹시 괴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죽은 어미 살모사의 터진 뱃속에서 걸죽한 액체로 범범이 된 새끼 뱀들이 뒤엉켜 죽어 있는 모습은 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뒷마당 모퉁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펌프우물하며, 부엌 부뚜막에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 있던 쇠솥단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어슴푸레한 저녁이 찾아오면 아궁이에다 군불을 지피기 위해, 왕겨를 쑤셔 넣고 바람을 일으키다 눈물을 삼켰습니다. 워낙 눈이 매운지라, 바람을 일게하던 풀무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참나무와 소나무 타는 향기가 은은하여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큰 숨으로 들이마쉬곤 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저녁풍경은 저마다 똑같습니다. 늘상 저녁 시간 때면 마을의 모든 굴뚝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던 연기를 보고 저 집도 저녁을 준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시골 마을의 아이들에겐 별다른 먹거리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게라곤 '리' 마을당 겨우 하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게라고 해봤자 조그만 구멍가게거나 어느 집 농가의 다락방에서 팔던 주전부리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랬기에 외할머니는 손수 먹거리를 이것저것 장만하여 내오셨습니다. 간식거리 중에 잊을 수 없었던 맛은 가마솥에서 만들어진 엿이랑 누룽지, 그리고 화롯불에 구운 군감자랑 계란 후라이에 곁들인 생강차였습니다. 특히 겨울철에 먹었던 계란 후라이와 생강차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별미였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님 댁에서는 언제나 저의 코를 자극하던 두 가지의 향내가 뇌리 속을 뒤흔듭니다. 그 당시 마을 농가에선 소득을 올리기 위해 부업으로 누에를 치곤 했는데, 외할머님 댁에서도 누에를 치셨습니다. 아직도 누에의 독특한 향내와 뽕잎을 먹는 누에의 꿈틀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한 방안 벽모퉁이에 매달려 있던 메주 덩어리의 퀴퀴한 냄새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맥주의 원료로 쓰이던 호프를 따기 위해 외할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가서 품팔이로 호프를 땄습니다. 호프 또한 그 냄새가 독특하였기에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그 톡 쏘던 향내가 얼마나 따가왔던지 호프를 따면서 연실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어디를 가던지 전 외할머니와 함께였습니다. 물론 동네 아이들과 놀던 시간도 많았지만, 언제나 전 외할머니의 치마폭을 졸졸 따라다니며 외할머니와의 추억으로 방학 시간을 채우는데 바빴습니다. 

 

https://youtu.be/Ef2NMNhNQN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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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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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 이지튀르 작성자
    2022.10.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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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프리 제 외할머니가 계셨던 마을은 안흥면 지구리.
  • 2022.10.18 16:58
    베스트

    수필 느낌이라 좋네요

  • 2022.10.18 17:04
    베스트

    바이크타고 강원도 자주 갔는데 안흥도 자주 갔던;;

  • 이지튀르 작성자
    2022.10.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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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갑

    아! 그러시군요.ㅎ
    바이크라면 오토바이?
    6번 국도를 타고 가시지 싶습다.

    저는 원주에서 자전거 타고
    횡성 서원, 갑천, 청일, 둔내, 안흥은 종종 갑니다.

    바이크를 타시는 라이더들은 둔내 쪽으로 많이들 가시죠?
    안흥에서 강림쪽으로 주천강을 끼고 고시리 터널 지나
    영월 쪽으로 가셔도 좋지 싶습다.

    차량들도 별로 없고 풍경도 좋고 한적해서 좋지요.

  • 2022.10.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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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튀르 양평지나서 횡성 평창 정선 강릉 매년 갔는데 올해는 못갔네요 ㅎㅎ

  • 이지튀르 작성자
    2022.10.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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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갑 저는 정선은 아우라지 쪽으로 라이딩을 해봤죠.
    닭목령으로 해서 아우라지 삽당령으로...

    한 달 전 즈음, 평창 진부의 방아다리재를 넘다가
    알게 되었는데, 바이크도 백두대간을 따라
    넘는 코스들이 있더라구요.힝

    자전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말입다.
  • 2022.10.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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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들이 눈에 그려지는듯 하네요^^b

  • 2022.10.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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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수필같은 어린시절의 자화상  이군요..

    보관하고 싶을만큼 잘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