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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이상만
EastSideStory
2022.10.14 06:49
231
5
https://itssa.co.kr/916092

요즘 초등학생들은 예전보다 대부분 똑똑하고 영악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니 교육열도 높기에 배움의 속도가 훨씬 빠르고, 뇌구조가 변했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만 자립심이나 남을 배려하는 면에서 상당히 예전보다 못하다는 걸, 예전 학원 차량을 운전하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 아이들을 다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운전하다가도 열불이 뻗칠 때가 많았다. 간혹가다 타고난 심성이 올곧고 배려심이 남다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게 가정교육과 환경 때문인지 타고난 심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내 마음이 훈훈해져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오여 년 전 즈음일 거다. 내가 마실 가듯 자주 찾는 횡성도서관은 횡성초등학교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도중에, 초등학교 교문 근처에서 우연히 인연이 있던 한 남학생(당시 3학년에 재학중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소년을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마주치기 몇 개월 전이었다. 그 날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는데, 우산도 없이 앞에서 걸어가는 내 뒷모습이 처량하게 보였던지 뒤에서 어느 어린 학생이 "아저씨! 우산 같이 쓰고 가요." 외치는 거였다. 그러더니 냉큼 달려와 까치발을 하고서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치켜세우는 게 아닌가.

어떨결에 어른인 나는 조금 머쓱했고 그 소년의 마음 씀씀이에 어쩔 줄 몰라, "우산은 내가 들게" 하고, 이런저런 얘기(집은 어디며, 학교는 어디에 다니고 있으며, 몇 학년인지 등등)를 나누며 내 목적까지 함께 걸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꼬마 친구라 더욱 반가웠다.

그렇게 몇 개월 전에 만났던 그 소년이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도중에 또 우연히 마주치게 된 거였다. 맨 처음에 그 소년이 날 알아보지 못해, 우산 얘기를 꺼냈더니 금세 기억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 학생을 멈춰 세우고 얘기(책은 좋아하는지, 횡성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지 등등)를 또 나눴다.

"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물었더니,

"경찰이요." 하며 그 아이는 대답했고, 나는 또 되물었다.

"하고 많은 일 중에 겨우 경찰이 되고 싶어? 이왕 꿈인데 원대하게 대통령 정도는 해보는 게 어떻겠니?" 하며 의중을 살폈다. 그 소년은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난 궁금증이 일어 그 소년의 생일을 물었다.

"추석(양력 9월 20일) 전에 태어났어요." 하며 나즈막이 대답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처녀자리이면서 음력 8월생이네' 

그래서 그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의 대통령(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력 생일은 9월 1일)도 처녀자리이면서 음력 8월생인데, 너도 지금부터 대통령에 대한 꿈을 가지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을텐데 꿈을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니? 하고 의중을 타진했다. 그 소년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로 날 쳐다보며 반문했다.

"정말,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암 그렇구 말구, 김영삼도 중학생일 때 자기 책상 머리에다 미래의 대통령이 될 거라고 써 놓았다고 하는데, 정말 대통령이 되었거든."

지금 그 아이의 책상 위에는 '미래의 경찰관이 될 거야' 하고 써 놓았다고 하길래, 꿈을 바꿔 보라고 말했던 거였다. 그 소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심산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집에 돌아가거든 그거 떼어내고, '난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써놔" 했더니만, 그 소년은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서 헤어졌다.

작별인사로 손을 흔들자, 그 소년은 깍듯이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여러 번 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찰나에, 마지막 당부의 말도 곁들였다.

 

"그 대신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야 해."

아마도 그때 난 그 소년(그 또래의 나이에 비해 배려심이 특출난)과의 첫 대면에서 남의 안쓰러운 처지를 돌아볼 줄 알고, 그렇게 행동할 줄 아는 어린이라면 성장하여 충분히 대통령이 되고도 남을 인재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소년을 그 이후(2, 3년 후)에 우연찮게 또 횡성 섬강둔치에서 보았는데(어느덧 훌쩍 성장한 모습에 의젓해지고 전보다 말에 힘이 붙어있었다), 때마침 또래 친구 몇 명과 함께 자연학습 겸 곤충채집하러 나왔던 거다. 알아보고서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같은 아파트에 살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무렵, 치킨집이 눈에 들어오길래, 그때 그 소년에게 신세진 것을 갚을 심산으로 치킨을 사준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는 거였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얼씨구 좋구나 하면서 얻어 먹거나, 아니면 어른이 좀 만만하게 보이면 사달라고 조르는데, 이 아이는 역시 남달랐다. 정말이지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 저 나이 때 철없이 굴던 초딩생이었는데...

그 소년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성장한 어른이 되었을까?

 

https://youtu.be/w40ushYAaYA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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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4 08:30
    베스트

    뇌구조가 변했을리가.. 교육과 환경이 변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