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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소설/대본] 잡썰..... 4
2023.06.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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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4441311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참말로 오랜만에 때를 벗기러 동네에서 조금 커다란 찜질방을 찾았다.

주말의 오후였는데 웬일인지 냉탕에는 너댓명의 꼬맹이들이 팔딱거리면서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대구 계명대학근처에서 자라다가 부산으로 이사왔을때, 길거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어른에게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하굣길에 장난을 치며 길거리에서 떠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개새끼들, 느그들 거기 똑바로 서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을때, 정말 학교선생님 자태가 물씬한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예?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른의 커다란 손바닥이 양쪽뺨을 연달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는 욕설들이 난무했고, 친구들과 나는 고개가 180도로 돌아갈 정도로 따귀를 심하게 맞았다.

마침 지나가던 한 남자가 "아니, 길거리에서 아아들을 와 이리 두들겨 패는교." 하고 끼어들었다.

 

"당신은 가던 길이나 가! 내가 교육계에 30년을 몸담고 있는 사람이야. 이 개쌍놈의 새끼들이 길바닥에서 얼마나 떠들고 지랄인지, 지금 길바닥 예절을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 목소리와 그 말투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얼라들이 길거리에서 놀고 떠드는 걸 가지고 이리 뚜디리 패는기 교육이요? 아아들아, 느그들은 어서 집에 가라! 뭐 이런 양반들이 다 있노!"

 

"뭐 이런 양반? 이 새끼야, 내가 니보다 나이가 많아도..."

 

"아, 나이 많으면 다요? 얼라들 길거리서 떠든다고 뚜디리 패는기 선생들 할 짓이란 말요?"

 

아마 옆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의 선생들은 길거리에서 꼬맹이들을 두들겨 패다가 난데없이 엉뚱한 사람과 시비가 붙어 다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는데, 아이들을 어른이 그렇게 때릴 수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확실히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다닐때까지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기관총을 든 군인이나 권총을 든 경찰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의 한마디라면 부모님이고 뭐고 모조리 납작하게 엎드려 발발 기어야 했으니까.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신상태를 의심해볼만한 선생님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난,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선생보다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선생을 말리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렸을때 우연히 가졌던 그 생각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서도 한치도 바뀌지 않았다.

 

요즘에는 학부형들도 열받으면 학교로 쫓아가 선생들을 두들겨 패고, 학생들도 열받으면 선생들을 두들겨 팬다는데, 이는 오래 전 그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선생이라는 이들에게 당할만큼 당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례로 중학생때, 어느 국어 선생은 수업시간에 여차저차 태도가 불량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를 불러내서 팬티까지 벗긴 다음 칠판 옆에 세워 두었고, 또다른 선생은 수업시간에 화장실 좀 갔다오면 안되느냐고 하는 아이들을 복날 개패듯이 두들겨 팼다.

이유는 쉬는 시간에 뭘하다가 수업시간에 오줌싸러 변소찾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두들겨 팬 다음에는 화장실은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친했던, 정말 성격이 활발한 친구였는데, 그 수업시간에 소변을 참지 못해 걸상에 앉은 채로 바지에다 실례를 해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나와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던 그 친구가 어딘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 사건 이후부터였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아주 자그만 상처에도 민감하다.

단지 그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을 몰라 자신도 꺼내보기 싫어하는 기억들만 따로 모아두는 가슴속 자신만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둘 뿐.

성장해서 그 상처를 스스로 직시하게 될 즈음이면, 그 상처를 자신에게 안겨준 어른들을 경멸하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만일, 내 아들이나 딸이 중학생이나 되었는데 수업시간에 잠시 엉뚱한 짓을 했다고 수업이 끝날때까지 팬티까지 내린체 학우들 앞에 서 있는 일이 생긴다면 법이고 나발이고 당장 학교로 달려가 그 선생을 붙잡아 발가벗긴 다음 국기게양대에 거꾸로 한시간 동안 매달아둘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곳에서 떠들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집에 가서 부모님께도 고하고, 인터넷에도 올린다.

 

요즘의 교육계가 이래저래 두들겨 맞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스승으로서의 선생님보다는 엄연한 직업인으로서의 선생이라는 명칭이 더 잘 맞는다고 본다.

진정 스승이 되고 싶다면, 중고등학생들이 진심으로 압도할만한 지성과 교양을 쌓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요즘의 아이들을 평생 따라 잡으며 살아가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엇나갔는데, 다시 사우나의 목욕탕으로 돌아가서, 냉탕에서 떠들던 아이들은 금새 사우나의 직원으로부터 따끔한 꾸지람을 들었다.

이유는 역시 목욕탕에서 과도하게 떠든다는 것이었는데, 확실히 어른들도 많은 목욕탕 같은 곳에서는 과도하게 떠드는 것이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나는 그 나이의 꼬맹이때, 부산 영도에 위치한 이송도에서 수영을 했다.

거기서는 아무리 떠들고 아무리 소리치고, 아무리 지랄용천을 떨어도 누구하나 꾸짖는 사람이 없었다.

여름이면 주로 영도바다에 첨부덩거리고, 가을이나 겨울이면 봉래산에서 뒹굴거나 뛰어놀거나, 지붕에 꽁꽁 얼어있는 고드름을 따서 양손을 호호 불어가며 오도독 깨먹던 기억이 선하다.

그러고보니 요즘의 아이들은 정말 피곤하겠구나... 어디 한번 마음놓고 웃고 떠들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지 떠든다는 이유만으로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을 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오래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에 비하면 요즘의 아이들은 훨씬 더 피곤하고, 요즘의 아이들에 비하면 다음의 아이들이 훨씬 더 피곤할 것이다.

그것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에게 과거에 파묻혀 살아가는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횡설수설하고 있기는 한데, 결론은 아이들 없는 미래는 어른들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떠드는 것도 싫고, 아이들에게 돈을 쓰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아이를 만드는 자체가 예전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는 탓에 시덥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는 미혼의 남녀가 꺼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아이들은 정치가들이나 공무원 못지 않을 정도의 철밥통을 필요로 하는 선생들에게나 필요한 존재이지, 더이상 부모를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우리가 자랄때는 언제 어디서나 크게 웃고, 크게 떠들고, 심지어 달이 언제 지는가 보자며 새벽까지 달을 보며 들판에서 뛰어다니지 않았는가.

달이 지는 것을 보기는 커녕, 머리 위까지 오르는 것을 보는 것도 힘이 들어 놀다놀다 지쳐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하고는 했다.

 

"아니, 이시간까지 놀데가 어디 있다고 싸돌아 댕기다 인자 들어오노?"

 

자정이 다되도록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놈이 귀가하지 않아도 걱정할 일이 없는 세상과 어른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웃어대면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이 가득한 세상.

세상은 아이들이 살기도 힘들고, 어른들이 살기도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아이들이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모두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어른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당최 뭔 결론을 지을려고 이런 글을 써내려갔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아닌 결론은 가끔가다 시끄럽기는 하더라도 천진난만하게 웃어대는 얼라들을 보더라도 너무 심하게 질책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내 집 아이가 떠드는 것은 용서해도, 윗층 아이가 떠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어른들의 모습은 똑같은 카테고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해줄 뿐이다.

알아서 조심해야 할 것은 어른이지만, 조심해야할 것을 조심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와 더불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박해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라진듯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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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0 20:29
    베스트

    팬티까지 벗겨 칠판옆에 셔워두다니! 

    모멸감 치욕감을 넘어 큰 트라우마가 생길듯ㅜㅜㅜㅜ

    정성글 잘읽었습니다! 👍🏻👍🏻👍🏻

  • 2023.06.11 11:54
    베스트

    드라마를 본줄

  • 2023.06.11 11:54
    베스트

    드라마를 본줄

  • 2023.07.25 14:30
    베스트

    가부장제 사회분위기에서 억눌렸던 여성들이 소위 페미니스트를 옹립하며 남녀평등을 외쳤을 때

    여성들을 매도하고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던 기성세대는 한발 물러나 버렸다.

    그리고 남녀평등이란 미명하에 역차별적 시선과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휩쓸 때

    공격당하고, 차별받는 건 평생 남녀차별이란 걸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어린 남성 사회초년생들 이었다.

    지금, 과거의 일부 교육자와 교육계가 망쳐놓은 이 교단에 인과응보라는 말로 보이는 냉소는

    이젠 늙어빠져 은퇴해버린 폭군들을 향하고 있지 않다.

    20대의 꽃다운 우리 미래들이 그 곳에 있는데, 

    어린 미래를 꽃 같은 미래가 키워내고 있는데,

    하나같이 소중한 아이들, 청년들을 함께 지켜냈으면 좋겠다.

     

    상상력제로 님의 아픈 기억을 맘 아프게 생각하며....저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네요.

    다시는 그런 일들이 안생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