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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작문/소설/대본] 삼겹살 4
2023.05.2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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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4065141

"아니, 우리 신랑은 고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좋아해도 이만저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데, 아, 얼마 전에는 아침에 삼겹살을 좀 구워 먹으면 안되느냐는거예요."

 

이제 결혼한지 2년차에 접어드는 사무실의 한 여인네가 말문을 열었다.

 

"세상에,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는다는게 말이 되요?"

 

글쎄, 내 생각에는 뭐, 아침에 삼겹살을 먹으면 아니되느니라, 하고 국법에 쓰여져 있는 것도 아닌데 못먹을 건 또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살아오면서 아침에 삼겹살을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고,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싶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체질적으로 술자리나 마눌님 때문이 아니라면 육류를 찾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삼겹살에 대한 애끓는 연정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솔직히 아침 밥상에 삼겹살이 올라온다면, 그게 또 못먹을 음식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 지금 같은 남자라고 우리 신랑 편 드는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뭐 삼겹살을 아침에 못먹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아침부터 삼겹살처럼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겠어요?"

 

"에... 글쎄요, 뭐....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술판을 벌일 것도 아니고, 삼겹살 너댓 조각 정도 나오면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옆에서 다른 남정네들이 호, 그렇지, 없으니 못먹지 있으면 또 못먹을 건 아니지, 하고 내 생각에 호응해왔다.

 

"아, 진짜 남자들은! 무슨 아침부터 삼겹살이 먹고싶다고 그래욧!"

 

"아니, 내가 먹고 싶다는게 아니라, 있으면 못먹을 건 아니다... 이런 뜻인데..."

 

"그게 먹고 싶다는 말이잖아욧!"

 

어째 솔직한 생각을 말했는데, 분위기가 잠시 험악해졌다.
하긴, 아침부터 출근을 앞두고 삼겹살을 굽는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그래도 신랑이 그렇게 삼겹살 송을 주야장천으로 부른다면, 주말 즈음 큰 마음 먹고 한번 구워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까지 입밖에 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사실 삼겹살이란게 아침부터 어디 나가서 사먹기는 참으로 화기애매모호한 음식 아닌가.

 


"아니, 당신은 무슨 아침부터 삼겹살이예요? 그 기름진게 아침부터 넘어가겠어요?"

 

그날 저녁 자초지종을 들은 마눌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마눌님, 내 말을 잘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그러니까 마눌님도 잘 알잖아요, 내가 육류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는거. 난 솔직히 밥반찬으로 먹자면 등심같은 것보다 자반 고등어를 더 좋아하잖습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삼겹살을 아침부터 먹고 싶다는게 아니라, 있으면 못먹을 건 또 뭐냐, 이 말이지."

 

"그러니까 없어서 못먹는다는건, 그게 먹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다, 이게 아니라 아침밥상에 삼겹살이 올라오면 못먹을 음식은 아니다, 이 말인데... 에... 가만, 이 말을 지금 어제부터 몇번째 하고 있지? 내가 표현력이 딸리나?"

 

"아니, 무슨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참 나..."

 

이게 잠깐,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나?
분명히 조리있게 말한 것 같은데, 삼겹살을 아침부터 먹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니, 그게 무슨 아침에 먹으면 독극물이 되는 음식도 아닌데, 못먹을 것은 아니지 않나?
이게... 어떻게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해석이 되나.

 


다음날 저녁, 또다시 삼겹살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대체 삼겹살이란 음식을 어느 놈이 만들어냈길래 사람을 이리 피곤하게 만드나.

 

"동네 아줌마한테 물어봤는데 있잖아, 다들 그래, 무슨 강호동도 아니고 아침부터 삼겹살을 찾냐고."

 

"아니, 마눌님,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에.. 내가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게 아니라, 아니... 가만, 아침에 삼겹살을 먹으면 안되나? 에... 내 생각에는 뭐, 아침 밥 한공기 먹으면서 삼겹살 서너 조각 정도 상추에 싸 먹으면... 아니, 그게 못먹을 음식은 아니지 않나, 하는 말이지."

 

"아휴, 알았슈, 봐서 아침에 삼겹살 한번 구워줄께."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우와, 진짜로 미치고 환장하고 폴딱폴딱 뛰겠네."

 


일요일 아침, 신문을 펴들고 심란한 뉴스들을 접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방에서 지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달려가 보니 후라이팬 위에서는 한무더기의 삼겹살이 올라가 자글거리고 있는 거다.

 

"아니, 마눌님! 무슨 아침부터 삼겹살을..."

 

"삼겹살 먹고 싶대매!"

 

"아니, 내 말은 아침부터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에... 있으면 못먹을... 어이쿠... 머리야."

 

"그러니까 있을 때 실컷 한번 드셔."

 

아니, 가만 이건 정말로 내가 지어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어째 억지로 지어내고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삼겹살을 아침부터 먹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에...

 

"삼겹살 이거, 지금 몇그램입니까요?"

 

"한 근."

 

"......"

 

아침부터 삼겹살 600그램을 먹게 생겼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자면 난 여전히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침부터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상추에 삼겹살을 한 점 올려 입안에 넣는데 물어오는거다.

 

"맛있수?"

 

"음... 뭐, 맛있네."

 

"참 나."

 

마눌님도 삼겹살을 한 입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엉엉 우는 소리를 내는 거다.

 

"으흥흥흥흥흥!"

 

"아, 왜 그러십니까."

 

"나, 오늘 평생 살아오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어!"

 

"음? 뭐?"

 

"삼겹살은 아침에 먹어도 맛있구나!"

 

"......"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네 가족 식구들이 둘러앉아 삼겹살 먹기 대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마눌님!"

 

"응?"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나 먹으라고 삼겹살을 구웠다기보다는 마눌님과 애들 드시려고 구운 형국이지 않습니까요?"

 

"하하하핫! 우리 앞으로 일요일 아침은 삼겹살 먹는 날로 정할까?"

 

"......"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참말로 환장하겠네.
실험결과, 아침에 먹는 삼겹살은 여전히 맛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늘어난 설거지거리를 해치우고 빵빵한 배를 어떡하나, 고민하는데 마눌님은 산책 나가자고 방방 뛰고 있다.

 

"아니 아니, 지금 배가 너무 불러서..."

 

"밥 먹고 드러누우면 소가 된다면서. 당신이 소가 되면 소는 누가 키운데?"

 

"......"

 

아침에 삼겹살을 먹으면, 마눌님은 하루가 즐거워지고 힘이 넘쳐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다.
내 생각에는 너댓 조각만 먹는게 딱 좋을 것 같은데 아침부터 이렇게 목숨 걸고 먹는 것은 앞으로 기피해야겠다.

그런데 가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그러니까, 아침부터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게 아니라... 에잇, 나도 모르겠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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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2 23:24
    베스트

    엥? 자연스럽게 올린 글인데~~😂😂😂

     

    https://itssa.co.kr/3888856

     

  • 2023.05.22 23:30
    베스트

    제목 : 중전마마와 삽겹살

    장르 : 판타지 로맨스

    작가 : 상상력제로

  • 2023.05.22 23:31
    베스트

    와이프께서 상상력제로님이 먹꼬시퍼 얘기꺼내나부다 생각하신듯~~~

    가족들이 맛나게 드셨으니 됐지예 ㅋㅋㅋ ㅋㅋㅋ 

  • 2023.05.22 23:58
    베스트

    아침 고기도 잘 넘어간다

    고기 밥상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