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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작문/소설/대본] [읽싸]작별하지 않는다 12
2024.05.14 12:50  (수정 05.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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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3941093

소설의 근간에 서사가 있기는 하나,

모든 소설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신부님 시리즈나 오쿠다 히데오처럼

작은 사건의 연속에 깔깔깔 웃음이 묻어나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시인지, 수필인지, 소설인지

경계가 모호한. 이를테면 추상화 같은

그런 스타일의 소설도 있다. 

여백이 많은, 이를테면 황정은이나 한강 같은. 

.

.

.

소년이 왔을때 나는 몹시 괴로웠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했고

여전히 광주의 그 마지막 불빛에서

우리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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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띠지의 설명보다

먼저 알아버린 정보. 제주43이 소재래.

나는 무엇을 망설이며 이 책을 두고 두고

묵혀두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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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읽기의 괴로움보다 쓴 이의 고통을.

영혼이 녹아내릴 거 같은 괴로움을 견디면서도

결국에는 써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외롭고도 지난한 시간을 생각하자.

내 읽기의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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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슬한 머리의 갓난쟁이 여동생이 사랑스러워

옷 속에 넣어다니고 싶었던 오빠와

도시락 부러워하던 막내 동생의 투정이 밟혀서

돌아오는 도시락 빈함에 나뭇잎 깔아 새콤달콤

산열매 가득 담아 온 오빠의 사랑이

새처럼 그렇게 너무나 연약하게

짓뭉개졌을때

.

.

.

.

죄 없이, 죄 없이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아기를 살리겠다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어린 동생의 입에 넣던 아이는

긴 세월, 모진 시간의 파도 속에서 견디고 견디며

살아남아 지극한 사랑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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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소설에서

모호함을 들어 별로라고 하는 사람들을 본다.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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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나서서 살인귀가 되어 수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아기들을. 엄마들을. 아빠들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칼로 찌르고 총으로 난사했다는 그 사실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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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이기전에

인간 한강이,

제주43으로 인해 억울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혼을 글로써 풀어내고

그 혼에 묻은 더러운 칼과 총구의 흔적을

닦아내는 글로 풀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지노귀굿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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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면

이 세계말고 그 세계에서는 해방 후

이승만은 미국에서 조용히 입닥치고 살다죽었기를.

박정희는 조국, 일본을 그리워 하며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해 배를 타다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그렇게 휩쓸려 죽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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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야기는 정말로, 사랑이야기.

너무나도 거대하고 지극했던 사랑이야기.

IMG_6715.jpeg.jpg

 

 

댓글 12

댓글쓰기
  • 2024.05.14 13:05
    베스트

    여운이...

  • 2024.05.14 13:18
    베스트
    @Fennek

    문득 문득 갑자기 생각이 나예..ㅠㅠ

  • 2024.05.14 13:47
    베스트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주윤발밀감 작성자
    2024.05.15 07:12
    베스트
    @너와집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4.05.14 14:14  (수정 05.14 14:14)
    베스트

    오잉...어디선ㄱㅏ 봤다했더니🤦‍♂️🤦‍♀️🤦

    20240514_141228.jpg

    ㅋㅋㅋㅋ 새책 그대로. 미안해요~한강 님🥲🥲

  • 주윤발밀감 작성자
    2024.05.15 07:14
    베스트
    @젤리빈

    젤리빈님, 이거는 진짜 큰 맘 먹고 읽으세예! 

    후반으로 가면 완전 무너져예ㅜㅜ

  • 2024.05.15 09:37
    베스트
    @주윤발밀감

    아, 🥺🥺 이번주 읽어봐야겠네요

    때가 때이니 만큼. 

    마음 굳게 먹고 읽어나가겠습니다!😐😐

  • 주윤발밀감 작성자
    2024.05.15 15:24  (수정 05.15 15:24)
    베스트
    @젤리빈

    앞부분 뭉술하고 뿌연 안개 같은데 고부분만 읽어넘기세예!! 🙇🏻‍♀️

  • 2024.05.19 15:43
    베스트

    역시 밀감님이 글을 잘 쓰시는 건 책을 가까이 해서 인듯👏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주윤발밀감 작성자
    2024.05.19 20:39
    베스트
    @Febronia😁

    아이, 아니라예!!!!! 잇싸에서 저는 진짜 쥐콩만해예ㅠㅠ

    슬프지만 그 슬픔을 외면하기에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너무 커서 많이 읽으시고, 같이 많이 분노해주셨으면 좋겠더라고예🙇🏻‍♀️

  • 2024.05.19 20:42
    베스트
    @주윤발밀감

    글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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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윤발밀감 작성자
    2024.05.19 20:44
    베스트
    @Febronia😁

    아! 이거는 아니라예!! 오해시라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