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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8.06 04:26  (수정 08.06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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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싸에서 유난했던 김젓또와 카루소는 뭣땜시 강퇴당한 걸까예?

 

제 게시글이 난해하여 난독증에 시달렸다니! 최근에 강퇴당한 카루소는 내 글을 이해하면 '우화등선'의 경지라는 문자까지 동원했죠 😂 

 

우화등선의 경지의 어원은 송대의 소동파 시인(이며 정치가)에서 비롯되었죠.

 

출전은 소동파의 《전적벽부

飄飄乎如遺世獨立 (표표호여유세독립) 세상을 떠나 온 듯이 홀로 훨훨
羽化而登仙 (우화이등선) 날개를 달고 날아 올라 신선이 되어.

 

제 젊은(중2병) 시절 단상(아포리즘)들 중에 이런 게 있었습죠...나의 현실 생활에서 날 슬프게 하는 것은 나의 지식과 통찰을 감당해낼 만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련된 문장만큼이나, 그 사람의 정신이 세련된 경우는 드물다. 

 

*강한 파토스를 느낄 때, 그것은 우리가 삶의 비애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비애'라는 감정 속에 숨겨진 인간 숙명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강한 존재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법. 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감춘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훈련된 인식이란 절대절명의 순간에 그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을 가장 하는 것, 인간 희극의 원점. 

 

*나는 내가 이해한 영혼들을 닮으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현재의 내 자신에 만족하기보다는 나를 극복하고, 나를 회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현실을 참아낼 수 없었다. 

 

*난 잡다한 것들로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도 아무 것도 말할 수 가 없었고,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어느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나의 조잡함에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어떠한 것에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나의 심리적인 기질, 심리적인 활동력은 강하나, 일상생활에 대한 깊은 염증, 번잡한 생활, 번거로운 일들의 어수선함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나의 솟구치는 분노 탓이리라. 

 

*때때로, 아니 일상생활 전부는 심리적인 자의에 맡겨져 있다는 기분이 든다.오직, 심리적인 활동력만이 활발히 숨쉬며움직일 따름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삶과 예술 사이의 간극과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길은 니체가 말한대로 자기가 구상한대로 삶을 살아가며 자기가 생각한 예술의 본질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언어의 경험을 노래한 랭보, 말라르메, 로트레아몽, 고트프리트 벤은 현실에서 공허를 느꼈기 때문에 현실을 경멸하였다. 극단적인 언어의 경험이 갖는 그 가능성 이라는 자체가 이미 공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리스 블랑쇼는 말하지 않았던가? '예술가는 종종 자신의 작품의 폐쇠된 공간 안에서 소심하게 웅크리고 앉아 세상에 대해 복수를 꾀하는 자'라고.

 

*온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일 순간의 깨달음으로써, 나에게 다가왔다면 내가 이렇게 지랄발광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다 깨달아볼려는 태도의 견지가 어쩜 인간을 그렇게 몰고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도를 닦고 있는 고승들도 도저한 허무의식에 빠진 분들이라고 언제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사(세속)를 떠나 혼자 산 속에서 도에 정진하며 우리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선문장을 들려주시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어떤 직관적 회의가 많이 작용하는 인식적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아주 농후할 정도로 그런 것에 많은 친화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에 나의 혼백을 우울과 권태로 몰아 넣는다. 

 

*순수한 삶이 우리에게 제안한 것, 모든 것에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에 의해 행복에 도달하기를 기원해야 한다. 또, 그것에 의한 죽음도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는 태도라야지 우리는 진정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아닌 너, 너가 될 수 없는 나. 우린 각자의 충실을 어느 정도 따르고 있다. '죽음'이라는 직관. 나비들이 천상에서 자유로이 날고 있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할 뿐이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필연적이고,우연적인 모든 것이 자기 자신 안에서만 충일 될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 자체가 어쩌면 작가에게서나 일반 비평가에게서 지나친 멋부림으로 비치지 않는다면, 글쓰는 의의가 반쯤 상실되고 말 것이다. 

 

*사바(속세) 세계는, 일체개고의 아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니체가 설파했듯..."예수는 <바리새인>을 똑바로 보았으면서도 착하고 바른 사람의 어리석음이 그 자신의 현명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예수는 인간들이 죽은 후의 삶을 예약판매하여 현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울 것을 12제자 사도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교회적인 모든 의미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모든 것이야말로 예수가 부정한 반기독교적인 모든 행태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무하마트 간디의 사티아그라[진리]와 아힘사[비폭력]개념은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즉,"신이 진리가 아니라,진리가 신이다."라는 생각은 인간이 진리에 매진할 때만이 신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은 폭압적인 현실에 대해 초월(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 의지를 극대화 시켜야 합니다. 니체가 설파하였듯이 인간은 "초극되어져야 하는 존재"인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설파한, "진리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아주 큰 통찰의 말씀입니다. 

 

*강렬한 이미지에 정직함이 더해진다면, 그것은 진정 영원성의 한 표상이 될 것이다. 

 

*현실에 대한 절망이 커질수록 별(유토피아)에 대한 몽상은 깊어진다. 루이 아라공과 루쉰이 느낀 것처럼,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처럼. 절망 속에서 피는 혁명(개혁)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향수!, 혁명이 필연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유토피아 정신 그 자체. 점점 새로운 세계나 미지의 세계로의 동경과 호기심을 유발시켜 일종의 발작상태로 진전된다. 유토피아를 꿈꾸기를 희망했던 모든 이들은 뒤집어 엎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질서(유토피아, 無, 죽음)에 대한 절망적인 향수를 그리워 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상 우리들에게 놀라운 삶의 통찰을 보여주었던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동시대의 삶과 기억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아픈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본질(의미)에 현실(일상적인 삶)이 귀속되어 진다면, 유토피아는 도래할 것이다. 

 

*편집증 환자로서의 주석가는 동일성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허무주의자다. 

 

*나는 지금 맹목적인 난잡성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단지,그것이 습관화되어 있거나, 무엇으로도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맹목적인 난잡성에 주의를 귀울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태도를 환기시키려 해도 자꾸 맹목적, 아니 광신적으로 빠져들어버린 나머지 내 자신의 '이성'마저도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직관'의 최고점에 이르기 위해, 나는 당분간 광분할 것이다. 시간의 유한성을 초월하고 내 자신이 다시 창조되는 그 시간점을 찾을 것이다. 아니 찾기보다는 광기 형태로 맞설 것이다. 

 

*공격적인 욕망이 자신과 우리를 멍들게 하듯, 소극적인 욕망도 그 자체로 썩은 사과를 맛보는 거와 같다. 

 

*내 자신은 시대와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지배 권력에 순응하지만, 내 자신의 세속화를 인정할 수 없다. 

 

*사물의 혼미를 그대들은 내 이마위에서 떼어 갔다. 차라리 그것들에 위안을 느끼지 못할 바에 철저히 외면하리라. 나는 볼 수 없다. 어떤 진리의 빛도, 그 진리의 빛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발광을 부렸지만 나에게 되돌아 오는 것은 돌일킬 수 없는 나의 절망, 허무, 고독, 우울이라는 단어들 뿐이다.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자기 그림자와 싸우는 이 사나이는 그것을 잡기 위해,밤낮으로 환상에 사로 잡힌 채, 그 거만한 교태로운 심장을 끄집어 내,통채로 삼켜버리려 했습니다. 머리가 또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고역을 치러가며 발정하는 암캐모양, 차갑게 식어가던 가슴을 자기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면으로 이 사회에 반항심이 많이 내재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는 소심한 편이다. 반항과 소심함의 갈등. 반항과 자비심이 연립할 수 없는 한계. 그는 항상 번민한다. 제도권에는 반항했고, 그 곳에서 산출되는 부조리(부정)에는 자비심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권태를 느끼거나 삶의 분노가 우울과 함께 그를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욕망, 사랑, 생명, 무위는 그냥 외롭습니다. 우리는 갈 수 없어 지키고 있는 뿌리가 되고자 합니다. 전, 깊은 회의와 절멸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차가운 모럴리스트적인 지혜(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며)는 다만, 사물을 꿰뚫는 습관, 선악의 대립과 도덕 감정을 초월하여 진실로 모든 것에 견딜 수 있는 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모럴리스트로 만들어선 안 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절망적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격리되어 있었으나, 그에게는 생활이 밀폐되어 있는 듯 느껴져, 자책과 우울감으로 자기 자신을 학대 하였습니다. 그래 맞습니다. 자기 자신을 모럴리스트로 만들어선 안 됩니다. 만약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 해도 당신은 타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나의 현실 생활에서 날 슬프게 하는 것은, 나의 지식과 통찰을 감당해낼 만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내가 처한 조건이나 이치에 잘 맞도록 꿰어 맞추는 일이다.

굥거니 탄핵은 12월에...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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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6 04:43
    베스트

    카루소 결국? 에휴 너무 죽친다 했더니 

  • 2024.08.06 07:07
    베스트

    ㅋㅋ

  • 2024.08.06 09:27
    베스트

    지난일 말해 뭐하겠음,,,

  • 2024.08.06 10:45
    베스트

    모든분들 어디 계시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2024.08.06 20:47
    베스트

    카루소님도....우야든동~ 잘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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