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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6.2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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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4863310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세계 각 나라의 수도의 어원과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을 작성해보겠습니다.

 

각 대륙 별로 권역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2) 유럽: 서유럽, 중부유럽, 북유럽, 남유럽, 동유럽
(3)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4)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남아메리카
(5) 오세아니아: 오스트랄라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번외: 미승인국가

 

이번 글에서는 서아시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입니다.

 

서아시아.png

 

서아시아에는 국가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음과 같은 권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아라비아 반도 - 거대한 장화 모양의 반도. 이슬람의 발상지.

(2) 레반트 및 키프로스 - 레반트는 고대의 가나안 지역과 시리아 인근을 가리키는 지리 용어입니다. 라틴어로 '떠오르다'를 뜻하는 'levare'에서 유래하여 '동쪽에 있는 나라'를 뜻합니다. 키프로스 섬은 레반트 지역에 인접해 있습니다.

(3) 이란 - 이란은 아랍과 민족, 문화가 매우 다르며, 종교는 이슬람으로 같지만 아랍 대다수 국가가 수니파 중심인 반면 이란은 시아파 중심 국가입니다. 이란과 아랍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앙숙 관계로 서로를 혼동하면 둘 다 화냅니다. (우리에 맞게 비유하자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게 그거 아님? 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4) 튀르키예 - 튀르키예도 아랍과 민족, 문화가 매우 다릅니다. 다만 종교는 둘 다 이슬람 중에서도 수니파 위주입니다.

(5) 캅카스 - 아시아 서북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산악지역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서아시아 국가 중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국가들의 수도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1) 사우디아라비아 - 리야드 / الرياض ('ar-Riyāḍ) (아랍어) / 리야드

 

리야드.png

리야드의 문장. 리야드의 깃발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리야드'는 아랍어로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에는 원래 '하즈르 (حَجْر (Ḥajr))'라는 도시가 있었고,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 시기 중동부 아라비아를 관할하는 알-야마마 (اليَمامَة (al-Yamāma)) 지방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866년에 현지의 우카이디르 왕조가 압바스 왕조로부터 독립하고 수도를 인근의 알-카즈 (الخرج (Al Kharj))로 옮기자 오랜 기간 쇠퇴하게 됩니다.

 

'리야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연대기가 처음이며, 1737년에 리야드 인근의 만푸하 (منفوحة (Manfuhah))에서 온 난민인 데함 빈 다우와스 (دهام بن دواس (Deham bin Dawwas))가 이 지역을 장악한 뒤 이 지역의 여러 오아시스 마을 감싸는 성벽을 건설하여 도시를 만들었는데, '정원'을 뜻하는 '리야드'는 여러 오아시스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슬람 학자이자 와하비즘의 기초를 닦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알 와하브 (‎مُحَمَّد بْن عَبْد ٱلْوَهَّاب بْن سُلَيْمَان ٱلتَّمِيمِيّ (Muḥammad ibn ʿAbd al-Wahhāb), 1703-1792)와, 리야드 인근의 디리야 (الدِرْعِيّة (ad-Dir‘īyah))의 아미르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 알 무크린 (محمد بن سعود آل مقرن (Muḥammad bin Suʿūd Āl Muqrin), 1687–1765)은 동맹을 맺고 주변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1774년에는 이들의 손에 리야드가 함락된 뒤 디리야를 수도로 한 디리야 아미르국 (إمارة الدرعية الكبرى (‘Imāra ad-Dir‘iyya), '1차 사우디 국가'라고도 합니다.)이 선포됩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파견한 오스만-이집트 군대를 이끈 무함마드 알리 (محمد علي باشا (Muḥammad ‘Alī Bāshā), 1769-1849)가 1818년에 디리야 아미르국을 멸망시키고 디리야는 파괴됩니다.

 

한편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 (ترکي بن عبدالله بن محمد (Turkī bin Abd Allāh bin Muḥammad Āl Saʿūd), 1755-1834)는 디리야 아미르국의 잔당을 이끌고 명목상으로는 무함마드 알리에게 복종하면서 1819년에 나지드 아미르국 (إمارة نجد (‘Imārat Najd), '2차 사우디 국가'라고도 합니다.)를 재건하였고, 1823년에는 파괴된 디리야 대신 리야드를 수도로 정합니다.

 

하지만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의 손자들 사이에 벌어진 내분으로 나지드 아미르국은 1891년에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은 자발 샴마르 아미르국 (إمارة جبل شمر‎ (‘Imārat Jabal Shammar))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 알 라시드 (محمد بن عبد الله بن علي الرشيد (Muḥammad bin ʿAbdullah Al Rashid), ?-1897)에게 멸망하고 사우드 가문은 쿠웨이트로 망명합니다.

 

이후 압둘 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알 사우드 (عبد العزيز بن عبد الرحمن آل سعود (ʿAbd al ʿAzīz bin ʿAbd ar Raḥman Āl Suʿūd), 1875-1953; '이븐 사우드'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는 1902년에 자발 샴마르 아미르국으로부터 리야드를 탈환하고, 리야드를 수도로 하여 리야드 아미르국 (إمارة الرياض (‘Imāra ar-Riyāḍ‘), '3차 사우드 국가'라고도 합니다.)을 세웁니다.

 

리야드 아미르국은 오스만 제국이 약화된 틈을 타서 영토를 확장하였고, 여러 차례 나라 이름을 바꾸다가 192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되었는데, 리야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2) 아랍에미리트 - 아부다비 / أَبُو ظَبِي (ʾAbū Ẓabī) (아랍어)  / 아부다비 시

 

아부다비.png

아부다비의 깃발/문장

 

--> '아부다비'는 아랍어로 '가젤 (gazelle, Gazella; ظَبِي (Ẓabī))의 아버지 (أَبُو (ʾAbū))' 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은 이 지역에 가젤이 많고, 바니 야스 부족 연합 (بَنُو ياس (Bani Yas)) 지도자 디야브 이븐 이사 알 나얀 (ذياب بن عيسى آل نهياننهيان آل نهيان (Dhiyab bin Isa Al Nahyan))이 1761년에 아들 샤흐부트 빈 디야브 알 나얀 (شخبوط بن ذياب بن عيسى آل نهيان (Shakhbut bin Dhiyab Al Nahyan))이 이끄는 사냥대를 파견하여 가젤을 쫓다 오늘날 아부다비 시가 있는 섬에서 기수 (汽水, brackish water - 담수와 해수가 혼합된 곳의 물)로 된 샘을 발견하여 붙게 되었습니다.

 

디야브 이븐 이사 알 나얀은 1793년에 아들 샤흐부트 빈 디야브 알 나얀에게 아부다비 섬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했고, 샤흐부트 빈 디야브 알 나얀은 그곳에 요새와 마을을 지으면서 알 나얀 가문의 아부다비 아미르국 (إِمَارَة أَبُوظَبِي (Imārat Abū Ẓabī))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에 이 지역의 주력 산업은 진주 채취였는데, 1930년대에 들어 진주 무역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활로가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1939년부터 유전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1958년에 이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1962년부터는 생산/수출이 가능해집니다.

 

당시의 아미르 샤흐부트 빈 술탄 알 나얀 (شخبوط بن سلطان آل نهيان (Shakhbut bin Sulṭān Āl Nahyān), 1905-1989)은 석유 수익을 이용한 개발에 소극적이었지만, 이에 불만을 가진 알 나얀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이 영국의 도움을 받아 1966년에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동생 자이드 빈 술탄 알 나얀 (زايد بن سلطان آل نهيان (Zāyed bin Sulṭān Āl Nahyān), 1918-2004)을 새로운 아미르로 세웁니다.

 

자이드 빈 술탄 알 나얀은 석유 수익을 이용하여 아부다비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국민들이 병원, 학교, 대학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으며,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통치를 하여 국민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아미르국의 이름이기도 하므로 이 도시를 지칭할 때는 '아부다비 시'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3) 쿠웨이트 - 쿠웨이트 / مدينة الكويت (Madinat Al-Kuwayt) (아랍어) / 쿠와이트 시

 

쿠웨이트시티.png

쿠웨이트 (도시)의 깃발/문장

 

--> '쿠웨이트'는 아랍어로 '물 근처에 세워진 요새'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은 1700년대 중반까지 작은 어촌이었고, 아랍 부족 연맹인 바니 우트브 (بَنِيّ عُتبَة (Benî Utbe))가 1752년에 이곳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쿠와이트 셰이크국 (مشيخة الكويت (Mashīkhat al-Kuwayt))을 세웠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중개 무역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잔드 왕조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기존 무역 중심지였던 바스라 (오늘날 이라크 동남부의 바스라)에서 상인들이 몰려오면서 더욱 발전하며 선박 건조업도 발전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1871년에 알-하사 원정을 통해 쿠와이트 셰이크국을 봉신국으로 편입하였는데, 1875년에는 바스라 빌라예트 (ولايت بصره (Vilâyet-i Basra))의 일부로 포함시킵니다.

 

이에 반발한 쿠와이트 셰이크국의 셰이크 무바라크 알 사바 (مبارك الصباح (Mubārak Āl Ṣabāḥ), 1837-1915)는 1899년 영국을 끌어들여 자발적으로 보호령이 됩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과 견제로 인해 쿠와이트 셰이크국은 빈곤해지다가, 1937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번영하게 됩니다.

 

쿠와이트 셰이크국이 196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쿠와이트국이 된 뒤에도 이 도시는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한편 이 도시는 1990년에 발발한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다국적군이 1991년에 이라크군을 몰아내면서 해방되었고,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전초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쿠웨이트'로 쓰는 것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에 가깝게 '쿠와이트', 그리고 국가명과 구분되게 '쿠와이트 시'로 쓰는 게 좋을 것입니다.

 

 


4) 카타르 - 도하 / الدوحة (ad-Dawḥa) (아랍어) / 다우하

 

도하.png

도하의 랜드마크 도하 타워. 도하의 깃발/문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도하'는 아랍어로 '둥근 (roundness)'을 의미하며, 이 지역의 해안선을 둘러싸고 있는 둥근 만을 의미합니다.

 

도하는 1825년에 알 비다 (البدع (Al Bidda))라는 정착지를 통치하던 알 부아이닌 부족 (آل بو عينين (Al Bu'Ainain))에 의해 알 비다로부터 분리되어 건설되었습니다. 

 

그런데 1828년에 알 부아이닌 부족의 지도자가 바레인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여, 바레인의 알 칼리파 셰이크가 그 지도자를 투옥합니다.

 

알 부아이닌 부족은 이에 반발하여 봉기하지만, 알 칼리파 셰이크에게 진압당하고 추방당했고, 도하에는 실질적인 통치자가 사라지게 되어 해적과 무법자들이 판치게 됩니다.

 

이후 무함마드 빈 타니 (محمد بن ثاني (Mohammed bin Thani), 1788-1878)를 중심으로 한 알 타니 가문이 1847년에 도하를 장악하였고, 알 타니 가문은 상황에 따라 바레인의 알 칼리파 또는 네지드의 사우드 가문에 번갈아가며 복속합니다.

 

알 타니 가문의 이랬다 저랬다 하는 태도에 빡친 바레인은 1867년에 아부다비와 연합하여 도하를 침공하여 가옥을 부수고 주민들을 추방하여 도하는 일시적으로 소멸하게 됩니다.

 

다만 카타르가 이듬해 바레인에게 반격을 가하자, 영국의 중재로 카타르는 바레인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871년에 알-하사 원정을 통해 도하를 장악하였는데, 공물과 내정 간섭에 대한 의견 차이로 1893년에 카타르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전쟁에서 카타르가 승리하여 카타르는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얻어내고, 진주 무역으로 번영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1915년에 카타르에서 철수했고, 이때부터 카타르는 도하를 수도로 하는 영국의 보호령이 됩니다.

 

카타르는 영국의 보호령이 된 뒤 1920년대에 대공황과 양식 진주 도입으로 인해 진주 무역이 붕괴하여 쇠퇴했습니다.

 

하지만 1939년에 석유가 채굴되기 시작해서 195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익을 얻어서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카타르가 197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로도 도하는 카타르의 수도가 되었고,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릅니다.

 

'도하'로 쓰는 것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다우하'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5) 바레인 - 마나마 / الْمَنَامَة (el-Menâme) (아랍어) / 마나마

 

마나마.png

마나마의 랜드마크 바레인 국제 무역 센터. 마나마의 깃발/문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마나마'는 아랍어로 '휴식의 장소' 또는 '꿈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딜문 문명의 중심지였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 간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아시리아 제국, 신바빌로니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헬레니즘 제국,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서기 628년에 이르러 이슬람의 영향 하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나마'라는 이름은 1345년의 문헌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이 시기 이 지역은 호르무즈 왕국의 속국인 자르완 왕조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 제국은 1521년에 이 지역을 장악하였지만, 1602년에 사파비 왕조에 의해 쫓겨납니다.

 

사파비 왕조 시기 이 지역은 곡물, 대추야자, 진주 수출을 통해 번영했으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지역에 미치는 이란계 국가의 영향이 약화됩니다.

 

이 시기 아랍 부족 연맹인 바니 우트브 (بَنِيّ عُتبَة (Benî Utbe))가 이란계 총독을 몰아내고 이 지역을 차지하며, 알 칼리파 가문 (آل خليفة (Āl Khalīfah))이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이란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하지만 이란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바레인의 경제가 악화되고, 19세기 초반에는 오만, 와하비 등 외세의 침공과 내전까지 벌어져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영국이 이 지역에 침투하면서 1820년에는 일반 해상 조약, 1861년에는 '영구 평화와 우호 조약'이 체결되어 이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됩니다.

 

영국의 보호령이 되면서 무역이 회복되고 진주 수출도 증가하여 바레인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은 1914년에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 지역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의 작전을 수행하였고, 1919년에 공식적으로 이 지역을 대영제국의 해외 영토로서 편입하였습니다.

 

이 지역의 진주 산업은 1920년대 세계 대공황 및 양식 진주의 유입으로 인해 몰락하였지만, 1932년에 석유 채굴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은 다시 번영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56년에 발생한 수에즈 위기로 인해 아랍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이 지역에서도 반영시위가 이어지고, 마침내 1971년에 영국군이 철수합니다.

 

바레인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마나마를 수도로 삼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6) 예멘 - 사나 / صَنْعَاء, (Ṣanʿāʾ) (아랍어) / 사나 치!즈!김!빱! 사나 없이 사나 마나

 

사나.png

사나의 랜드마크 예멘 문. 사나의 깃발/문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나무위키의 사나(예멘) 문서에서 사나의 깃발, 한국어 위키피디아 사나 문서에서 사나의 휘장이라고 나오는 것은 사나의 깃발/문장이 아니고 예멘의 연방화가 제안되었을 때 '셰바 연방 구역'의 깃발로 제안된 깃발입니다. 

 

--> '사나'는 아랍어 이전 아라바이 반도 남부에서 통용되던 언어인 사바어 (Sabaic) 어근 ṣnʿ ('잘 요새화된')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지역은 고대에는 사바 왕국, 힘야르 왕국, 악숨 왕국,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무함마드 시기 이슬람 제국의 영역에 편입되었습니다.

 

무함마드는 사나 대모스크 (الجامع الكبير بصنعاء‎ (al-Jāmiʿ al-Kabīr bi-Ṣanʿāʾ))의 건축을 지시하였는데, 사나 대모스크는 이슬람의 성지 마카 (메카)와 마디나 (메디나) 이외의 지역에 처음으로 건설된 모스크였습니다.

 

이슬람 영향 하에서 사나는 예멘 지역 통치의 중심지였고, 11세기에 이르러 술라이흐 왕조와 함단 왕조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둘 다 쉬아파 분파 이스마일파).

 

아이유브 왕조 (순니파)는 1175년에 사나를 장악하였고, 북부의 쉬아파 분파인 자이드파 이맘이 지배하는 영역 (자이드 이맘국)을 제외한 예멘 전 지역을 통일하였습니다. 

 

아이유브 왕조 이후 라술 왕조, 타히르 왕조가 사나를 지배했지만, 자이드 이맘국은 이들과 지속적으로 대립하여 사나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547년에 사나를 점령하였으나, 1602년에 자이드파 이맘 알 무아야드 무함마드 (المؤيد محمد بن القاسم (Al-Mu'ayyad Muhammad), 1582-1644)가 오스만 제국을 축출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872년에 사나를 다시 장악하고, 사나를 예멘 빌라예트 (ولايت یمن (Vilâyet-i Yemen))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자이드파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항쟁을 이어갔고, 오스만 제국과 지속적으로 대립하여 1911년에 사나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1913년에는 오스만 제국과의 협정을 통해 형식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 되는 대신 실질적으로 사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자이드파 이맘 야흐야 무함마드 하미드 앗딘 (يحيى محمد حميد الدين (Yahya Muhammad Hamid ed-Din), 1869-1948)은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것을 계기로 사나를 중심으로 예멘 무타와킬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예멘 무타와킬 왕국은 고립주의 정책으로 반발을 샀고, 1962년에는 공화파 쿠데타가 일어나 사나는 예멘 아랍 공화국 (북예멘)의 수도가 되고, 왕당파는 산지로 도주합니다.

 

북예멘의 공화파와 왕당파는 1970년까지 내전을 벌인 끝에 공화파가 승리하였고, 이 사이 아덴 (عَدَنْ (ʿAdan))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는 영국의 지배 끝에 1967년에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남예멘)이 수립됩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서로 대립하던 끝에 1990년에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뤘고, 1994년에 재분단되었으나 북예멘이 무력으로 재차 통일하였으며, 사나는 예멘 공화국 (통일 예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랍의 봄으로 예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2014년부터 예멘 내전이 벌어지면서 사나는 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지아드파가 중심이 된 후티 반군은 순니파가 중심이었던 기존 예멘 정부 (하디 정부)를 아덴으로 몰아내고 2014년 이래 사나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7) 오만 - 무스카트 / مَسْقَط (Masqaṭ) (아랍어) / 마스카트

 

무스카트.png

무스카트의 깃발. 무스카트의 문장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무스카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a) 고대 페르시아어로 '향이 강한'
b) 아랍어로 '닻을 내리는 장소'
c) 아랍어로 '부풀어 오른 가죽/피부'

 

무스카트에는 고대부터 항구가 형성되어 인더스 문명과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Cryptus Portus (숨겨진 항구)'로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서기 3세기에는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서기 7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도래하였습니다.

 

이 지역에는 순니파도 쉬아파도 아닌 이바디파가 중심이 되어 이바디 이맘국을 건설했고, 이후 압바스 왕조, 카라마트, 부와이흐 왕조, 셀주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무스카트를 비롯한 해안 도시들은 무역을 통해 번영하였고, 내륙 지역과는 괴리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바디파가 나브하니 왕조를 세워 셀주크 제국을 몰아냈다가, 1507년에는 포르투갈 식민 제국이 무스카트를 점령하여 오랜 기간 지배합니다.

 

이바디파의 야루바 왕조는 오만인들을 규합하여 1650년에 포르투갈을 축출하였고, 오만 식민 제국을 건설하여 동아프리카 연안에 잔지바르를 비롯한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오만 식민 제국은 내전과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약화되기도 했지만, 1749년에 오늘날까지 오만을 통치하는 알 부사이드 왕조가 개창되어 술탄을 칭하며 혼란을 수습하고 다시금 번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만 식민 제국은 19세기 중후반 계승 분쟁으로 인해 오만-무스카트 술탄국과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오만-무스카트 술탄국은 1891년에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 1913년에는 이에 반발하여 내륙의 이바디파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1920년에 영국의 중재로 내륙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오만 이맘국이 건설됩니다.

 

무스카트를 비롯한 해안을 통치하는 오만-무스카트 술탄국과, 내륙을 통치하는 오만 이맘국은 석유 시추를 놓고 갈등을 일으켜 전쟁을 벌였고, 1959년에 영국의 지원을 받은 오만-무스카트 술탄국이 승리하여 오만 이맘국이 멸망합니다.

 

이후 오만-무스카트 술탄국의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 (قابوس بن سعيد آل سعيد (Qābūs bin Sa’īd Āl Sa’īd), 1940-2020)는 정치적 통합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 1970년에 나라 이름을 '오만 술탄국'으로 바꾸면서 무스카트는 나라 이름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스카트'로 쓰는 것도 좋지만, 아랍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마스카트'로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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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나라의 수도 (0) 개괄: https://itssa.co.kr/living/14553505
세계 각 나라의 수도 (1) 동북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553544
세계 각 나라의 수도 (2) 동남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576021
세계 각 나라의 수도 (3) 남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602915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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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4 19:30
    베스트

    1. 리야드는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브 운동의 본거지로, 1983년까지는 외국 대사관 설치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제다 (جِدَّة‎ (Jidda); Jeddah)'에 각국 공관이 있었습니다.
    2.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토후국 중 가장 크지만, 아부다비 시가지는 페르시아 만의 섬에 위치합니다. 균형적인 지역 개발을 위해 시내 중심부를 2030년까지 내륙으로 옮기기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 쿠웨이트 시는 지구상에서 여름이 가장 더운 수도 중 하나인데, 6-8월 평균 최고 온도가 45 ℃를 상회합니다.
    4. 도하에 있는 도하 타워 (برج الدوحة (Burj Aldawha))는 모양이 엄하게도 남근을 닮았는데, 이 건물을 디자인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 1945-)은 이 건물의 모양이 '완벽한 정력'을 암시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5. 마나마에는 진주 회전 교차로 (دوار اللؤلؤ(ة) (Dawwār al-luʾluʾ(ah)))가 있었고, 회전 교차로 가운데에 광장과 진주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진주 기념비는 바레인이 1982년 개최한 걸프 협력 회의 정상 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에 이곳에서 바레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뒤, 바레인 정부는 진주 기념비와 회전 교차로를 철거하고 일반 교차로인 알파루크 교차로를 만들었습니다.
    6. 사나에 있는 사나 대모스크를 1972년에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나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쿠란 사본입니다. 
    7. 무스카트는 포도 품종 중 하나인 '머스캣 (Muscat)'의 어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다만 포도 품종 '머스캣'의 어원은 '사향 (musk)'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مشک (moshk), 그리스어 μόσχος (móscho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며, 그리스의 모스카토 (Μοσχάτο (Moskháto))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2024.06.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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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인들 중 술 마시는 사람들은 바레인 넘어가 몰래 마신다든디~~맞나예??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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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트라고날

    맞습니다. 아랍권 국가임에도 술과 돼지고기의 판매와 구입이 자유로워서 인접 국가들에서 바레인으로 찾아와 술과 돼지고기를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접 국가들로부터 '술이 자원인 국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합니다.

  • 2024.06.2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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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프리

    왘. 좋은긴디..

  • 2024.06.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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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추천입니다~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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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oo52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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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와 부국으로 인식되는 나라들이네요.

    우리도 대통령님을 잘 뽑아서 석유부국이 될 거라는 기대에

    또 다시 잠  못드는 아름다운 밤이 될 듯 합니다.

    자료수집과 정리에 감사 드리며

    더워지는 날씨지만 늘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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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부는소년

    우리 가카의 임기가 하루 빨리 끝나길 기원합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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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4.06.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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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스크랩...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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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2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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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글 감사합니다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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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집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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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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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윤발밀감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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