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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6.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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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세계 각 나라의 수도의 어원과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을 작성해보겠습니다.

 

수도에는 행정 구역명 (예. (특별)시, 수도 구역, 연방 구역...)이 붙는 경우도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행정 구역명 없이 '이름'만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각 대륙 별로 권역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2) 유럽: 서유럽, 중부유럽, 북유럽, 남유럽, 동유럽
(3)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4)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남아메리카
(5) 오세아니아: 오스트랄라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번외: 미승인국가

 

이번 글에서는 동남아시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입니다.

 

동남아시아2.png

 

1) 베트남 - 하노이 / Hà Nội (베트남어) / 하노이

 

하노이.png

하노이 문장. 깃발은 따로 없습니다.

 

--> '하노이'는 응우옌 왕조의 제2대 황제 민망 황제 (Minh Mạng/明命帝 (명명제), 1791-1841)가 1831년 붙인 이름으로 한자어 '河內 (하내, "강 안")'을 베트남어로 읽은 것에서 유래합니다.

 

하노이는 역사적으로 여러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체로 도시 주변을 둘러싼 홍강 (Sông Hồng)이 용처럼 굽이쳐 흐르거나 그물처럼 감싸는 것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 많았습니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여겨지는 반랑 (Văn Lang/文郎 (문랑)) 시기 이 도시의 이름은 '용의 배 (dragon belly)'라는 뜻의 '롱도 (Long Đỗ/龍肚 (용두))'라고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베트남 북부가 중국의 지배 하에 들어간 시기 (기원전 111년 - 서기 938년) 중 중국 남조의 송나라가 이 도시에  '통빈 (Tống Bình/宋平 (송평)))' 이라는 명칭이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866년 당나라의 장군인 고변 (高駢, 821?-887; 베트남식으로는 '까오 비엔 (Cao Biền)'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은 이 지역에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면서 '큰 그물' 이라는 뜻의 '다이라 (Đại La/大羅 (대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안남 응오 왕조를 거쳐 다이비엣 (Đại Việt/大越 (대월)) 리 왕조의 초대 황제 리 꽁 우언 (Lý Công Uẩn/李公蘊 (이공온), 974-1028; '리 타이 또 (Lý Thái Tổ/李太祖 (이태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은 1010년에 이 도시를 도읍으로 하면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 (Thăng Long/昇龍 (승룡))'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이비엣 호 왕조 시기에는 '동도 (Đông Đô/東都 (동도))', 명나라 지배 시기 (1407-1428)에는 '동콴 (Đông Quan/東關 (동관))', 그리고 다이비엣 레 왕조 시기에는 '동킨 (Đông Kinh/東京 (동경))' 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동쪽의 수도 (동도, 동킨)' 내지는 '동쪽의 관문 (동콴)'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이비엣 떠이선 왕조 시기에는 '북쪽의 성'이라는 뜻인 '박탄 (Bắc Thành/北城 (북성))' 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가, 응우옌 왕조 시기 '융성하게 일어나다'라는 뜻의 '탕롱 (Thăng Long/昇隆 (승륭))' 이라는 이름을 거쳐 앞서 설명한 '하노이 (Hà Nội/河內 (하내))' 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한편 하노이는 다이비엣 리 왕조 시기인 1010년에 수도가 된 이래 1802년 응우옌 왕조가 후에 (Huế/化 (화))로 천도하기 전까지 베트남 역대 왕조들의 수도였습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들어간 뒤 하노이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인 통킹 보호령의 중심 도시가 되었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 (북베트남)의 수도를 거쳐 오늘날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2) 라오스 - 비엔티안 / ວຽງຈັນ (Wiang-Chan) (라오어) / 위앙짠

 

비엔티안.png

비엔티안 문장. 깃발은 따로 없습니다.

 

--> '비엔티안'은 라오어 명칭 'ວຽງຈັນ (Viangchan)'을 프랑스어로 적은 Vientiane이라는 명칭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라오어 명칭 'ວຽງຈັນ'에서 'ວຽງ (viang)'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의미하며, 'ຈັນ (chan)'은 산스크리트어로 '백단향 (白檀香, Sandalwood; Santalum album)'을 의미하는 '찬다나 (चन्दन, candana)'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지역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난립하다가 파응움 (ຟ້າງູ່ມ (Fa Ngum), 1316-1393)이라는 인물이 란상 왕국을 세우면서 통일 왕조가 세워집니다.

 

란상 왕국의 초기 수도는 루앙파방 (ຫຼວງພະບາງ (Louangphabang), '루앙프라방 (Luang Prabang)'으로 잘 알려져 있는 라오스 제 2의 도시)이었지만, 미얀마의 따웅우 왕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세타티랏 왕 (ເສດຖາທິຣາຊ (Setthathirath), 1534-1571)의 주도로 1563년 비엔티안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미얀마의 따웅우 왕조가 1570년에 쳐들어오자 비엔티안까지 탈탈 털리고 게릴라 전술로 겨우 막아냈습니다.

 

란상 왕국이 분열된 뒤 이 도시에는 비엔티안 왕국이 세워졌고, 1779년에는 오늘날 태국인 시암 왕국의 속국이 됩니다.

 

비엔티안 왕국은 시암 왕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봉기했으나 실패했고, 1827년에는 시암 왕국의 군대가 비엔티안을 약탈하고 불태우면서 버려지게 됩니다.

 

프랑스는 1893년을 기점으로 라오스를 지배 하에 넣었고, 1899년에는 비엔티안을 라오스 보호령의 중심지로 삼아 재건하였습니다.

 

라오스가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비엔티안은 라오스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라오스 내전 이후 파테트 라오 (ປະເທດລາວ (Pa thēt Lāo))가 집권하여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세운 후에도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엔티안'이라는 명칭도 좋지만 라오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위앙짠'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입니다.

 

 


3) 캄보디아 - 프놈펜 / ភ្នំពេញ (Phnum Pénh) (크메르어) / 프놈펜

 

프놈펜.png

프놈펜 문장. 깃발은 따로 없습니다.

 

--> '프놈펜'은 크메르어로 '펜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펜 (ពេញ (Pénh))이라는 이름의 부유한 과부가 1372년에 톤레 삽 (ទន្លេសាប (Tônlé Sab)) 호수를 떠다니는 쿠쿠이나무 (Koki tree, candlenut tree; Aleurites moluccanus)를 발견한 전설과 관련 있습니다. 

 

쿠쿠이나무 안에는 구리로 된 불상 4개와 돌로 된 비슈누 상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펜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자기 집 북동쪽에 있는 언덕의 높이를 높이고, 쿠쿠이나무를 이용해 언덕 위에 불상 4개를 모실 사원을 짓고 약간 아래에 비슈누 상을 모시는 사당을 지었습니다.

 

펜이 지은 사원은 현재 '왓 프놈 (វត្តភ្នំ (Wat Phnom))'으로 약 27 m 높이의 인공 언덕 위에 위치합니다.

 

'프놈펜'이라는 이름 이전에 쓰였던 공식 명칭은 '크롱 차크토무크 세레이 몽쿨 (ក្រុងចតុមុខសិរីមង្គល (Krong Chaktomuk Serei Mongkol), '브라흐마의 네 얼굴의 도시')', 줄여서 '크롱 차크토무크 (ក្រុងចតុមុខ (Krong Chaktomuk), '네 얼굴의 도시')' 이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크메르 제국은 태국계 아유타야 왕국의 침략에 시달린 끝에 수도 앙코르 톰 (អង្គរធំ (Angkor Thom))를 버리고 1431년 프놈펜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크메르 제국은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여겨지며, 캄보디아 역사에서 1431년부터 1863년까지는 암흑기로 여겨집니다.

 

이 시기에는 캄보디아가 베트남과 태국에 시달리며 분할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며, 수도도 여러 차례 옮겨집니다.

 

그러다가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태국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하여 자진하여 프랑스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며, 1863년부터는 프랑스 치하의 캄보디아 왕국이 됩니다. 

 

프랑스 치하의 캄보디아 왕국에서 프놈펜은 1866년부터 다시 수도가 되었고,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캄보디아의 수도로 남아 있습니다.

 

 


4) 태국 - 방콕 / กรุงเทพ (Krung Thep),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Krung Thep Maha Nakhon) (태국어) / 끄룽 텝, 끄룽 텝 마하나콘

 

방콕.png

방콕 깃발/문장

 

--> '방콕 (บางกอก (Bangkok))' 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a) บางเกาะ (Bangko): บาง (bang, '강 위의 마을') + เกาะ (ko, '섬')
b) บางมะกอก (Bang Makok): บาง (bang, '강 위의 마을') + มะกอก (makok, 식물 Elaeocarpus hygrophilus의 태국어 이름)

 

태국의 문화적 근간이 되는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 아유타야가 1767년에 미얀마/버마의 꼰바웅 왕조의 침입으로 함락 위기에 처하자, 아유타야 왕국의 귀족이었던 딱신 대왕 (สมเด็จพระเจ้าตากสินมหาราช (Somdet Phrachao Taksin Maharaj), 1734-1782)은 아유타야를 탈출한 뒤 세력을 규합하여 꼰바웅 왕조의 군대를 몰아냅니다.

 

그 당시 아유타야는 꼰바웅 왕조의 군대가 초토화하였기 때문에, 딱신 대왕은 짜오프라야 강 (แม่น้ำเจ้าพระยา (Maenam Chao Phraya)) 서안의 '톤부리 시 마하사무트 (กรุงธนบุรีศรีมหาสมุทร (Thon Buri Si Mahasamut), '바다를 우아하게 만드는 보물의 도시'; 줄여서 톤부리 (ธนบุรี (Thonburi))'를 새 수도로 하여 톤부리 왕조 (อาณาจักรธนบุรี (Anachak Thonburi))를 개창하였습니다.

 

톤부리에는 '방콕 야이 (บางกอกใหญ่ (Bangkok Yai))', '방콕 노이 (บางกอกน้อย (Bangkok Noi))'라는 지역이 있었고, 딱신 대왕 시기 서양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태국의 수도가 '방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집니다.

 

딱신 대왕은 1782년 반란으로 유폐되었고, 톤부리 왕조의 장군이었던 통두엉 (ทองด้วง (Thongduang))이 반란을 진압하고 라마 1세 풋타엿파쭐락록 대왕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พุทธยอดฟ้าจุฬาโลกมหาราช (Phra Bat Somdet Phra Phutthayotfa Chulalok Maharat), Rama I)으로 즉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짜끄리 왕조 (ราชวงศ์จักรี (Ratchawong Chakkri))를 개창합니다.

 

라마 1세는 수도를 짜오프라야 강 동안의 라따나꼬신 (รัตนโกสินทร์ (Rattanakosin)) 지역으로 옮기고, '끄룽 라따나꼬신 인 아요타야 (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อินท์อโยธยา (Krung Rattanakosin In Ayothaya)'로 명명하였는데, 강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방콕'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라마 4세 몽꿋 (มงกุฎ (Mongkut), Rama IV) 시기에 '끄룽 텝 마하나콘 아몬 라따나꼬신 마힌타라 유타야 마하딜록 폽 노파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웻 마하사탄 아몬 피만 아와딴 사팃 사카타띠야 윗사누깜 쁘라싯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อมร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มหินทรายุธยา มหาดิลกภพ นพรัตนราชธานีบูรีรมย์ อุดมราชนิเวศน์มหาสถาน อมรพิมานอวตารสถิต สักกะทัตติยวิษณุกรรมประสิทธิ์ (Krungthepmahanakhon Amonrattanakosin Mahintharayutthaya Mahadilokphop Noppharatratchathaniburirom Udomratchaniwetmahasathan Amonphimanawatansathit Sakkathattiyawitsanukamprasit))' 이라는 매우 긴 공식 명칭이 붙었는데,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영원한 보석의 도시, 인드라 신의 난공불락의 도시,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을 지닌 장대한 세계의 수도, 환생한 신이 다스리는 하늘 위의 땅의 집을 닮은 왕궁으로 가득한 기쁨의 도시, 인드라가 내리고 비슈바카르만이 세운 도시'라는 뜻입니다.

 

라마 4세가 정한 공식 명칭이 너무 길기 때문에 태국 정부는 법적 공식 명칭을 '끄룽 텝 마하나콘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Krung Thep Maha Nakhon))'으로 정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원래 '방콕'이었던 톤부리 (짜오프라야 강 서안)은 1972년에 새로운 '방콕'인 끄룽 텝 마하나콘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마침내 '방콕'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방콕'이라는 명칭도 좋지만 태국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인 '끄룽 텝' 내지는 '끄룽 텝 마하나콘' 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입니다.

 

 

 

5) 미얀마/버마 - 네피도 / နေပြည်တော် (Naypyitaw) (미얀마/버마어) / 네피도

 

네피도.png

네피도 깃발/문장

 

--> '네피도'는 미얀마/버마어로 '왕의 거처'라는 뜻으로, '왕실 수도', '왕좌', '왕궁'으로도 번역됩니다.

 

원래 미얀마/버마의 수도는 양곤 (ရန်ကုန် (Yangon), '랑군 (Rangoon)'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이었고, 이 도시는 '핀마나 (ပျဉ်းမနားမြို (Pyinmana))'라는 내륙의 작은 도시였는데 미얀마/버마 군사 정권이 2005년에 이 도시로 천도한 뒤 2006년 '네피도'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얀마/버마 군사 정권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토 중앙으로 천도하였다고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a) 식민 잔재 청산: 양곤은 영국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식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천도
b) 군사적 목적: 항구도시인 양곤에 비해 국토 중점에 가까우며 내륙에 있기 때문에, 외세의 침입에 대한 방어에 유리하며, 대중 봉기 및 소수민족 반란 억제에 용이
c) 주술적 목적: 독재자 탄 쉐 (သန်းရွှေ (Than Shwe), 1933-)가 총애하는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점성술사가 정해준 곳으로 천도

 

 


6) 말레이시아 -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 / Kuala Lumpur; Putrajaya (마인어, 영어) /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

 

쿠알라룸푸르_푸트라자야.png

쿠알라룸푸르 깃발/문장 (위); 푸트라자야 깃발/문장 (아래)

 

--> '쿠알라룸푸르'는 마인어 Kuala (합류)와 Lumpur (흙탕물)이 합쳐진 말로 '흙탕물이 합류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쿠알라룸푸르는 원래 곰박 강 (Sungai Gombak)과 클랑 강 (Sungai Klang)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1857년에 영국의 해협 식민지 (Straits Settlements) 산하의 슬랑오르 (Selangor)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동원하여 주석 광산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됩니다.

 

쿠알라룸푸르가 주석 광산을 중심으로 커지기 시작하자 영국인들은 중국인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임할 필요성을 느꼈고, 초기 중국인 상인인 휴 슈 (Hiu Siew)에게 '카피탄 치나 (Kapitan Cina (중국 수장); Captain China)'라는 칭호를 내렸고, 1868년에는 얍 아 로이 (Yap Ah Loy, 1837-1885)가 3번째 카피탄 치나로 임명됩니다.

 

쿠알라룸푸르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두 인물이 얍 아 로이, 그리고 슬랑오르 상주 담당관 (Resident Minister)가 된 프랭크 스웨트넘 (Frank Swettenham, 1850-1946)인데, 이들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쿠알라룸푸르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쿠알라룸푸르는 1880년에는 슬랑오르의 중심 도시가 되고, 1896년에는 새롭게 결성된 말레이 연합주 (Federated Malay States)의 수도가 되고, 이후 말라야 연합 (Malayan Union), 말라야 연방 (Federation of Malaya)의 수도가 됩니다.

 

말라야 연방이 1957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1963년 말레이시아가 결성된 뒤에도 오늘날까지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의 수도입니다.

 

한편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이자 독립 운동가인 툰쿠 압둘 라만 '푸트라' 알 하지 이브니 알마르훔 술탄 압둘 하미드 할림 샤흐 (Tunku Abdul Rahman Putra Al-Haj ibni Almarhum Sultan Abdul Hamid Halim Shah, 1903-1990)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산스크리트어 पुत्र (putra, '아들')와 जया (jaya, '승리')를 붙여 '승리한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푸트라자야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영국 참전용사들이 1921년에 고무 농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되는데, 이 당시에는 프랑브사르 (Prang Besar (마인어로 '대전쟁 (1차 세계대전의 별칭)'))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쿠알라룸푸르가 1980년대 후반 포화 상태에 이르자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맛 (Mahathir bin Mohamad, 1925-)는 새로운 행정 수도를 건설하기로 하였고, 푸트라자야는 1995년 건설되기 시작하여 2001년에 연방 직할구로 승격하여 오늘날에 이릅니다.

 

 

 

7) 싱가포르 - 싱가포르 / Singapura (마인어); Singapore (영어); 新加坡 중국어); சிங்கப்பூர் (Singapur) (타밀어) / 싱가포르

 

싱가포르_깃발문장.png

싱가포르 깃발/문장: 도시 국가로서 국가와 도시가 따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 싱가포르도시 국가로서 국가명과 수도 이름이 동일합니다.

 

'싱가포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를 뜻하는 'सिंहपुर (Siṃhapura)'에서 유래합니다.

 

싱가포르 전설에 의하면 현재의 인도네시아에 있던 스리위자야 왕국 (Sriwijaya; 흔히 영어 명칭인 '스리비자야 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의 왕자가 이곳으로 표류했을 때 해변의 사자를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싱가포르에는 공용어가 4개나 있는데, 말레이인의 말레이어, 중국계의 표준 중국어, 그리고 인도계의 타밀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간 소통의 장벽을 줄이기 위해 영어도 공용어로 지정하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 명칭이 마인어로는 'Singapura'로 변한 것이고, 말레이어 명칭을 다시 영어로 옮겼을 때 'Singapore'이 된 것입니다. 표준 중국어 명칭인 '新加坡'은 영어 Singapore을 음차한 것인데, 표준 중국어 발음 Xīnjiāpō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민남어 발음 Sin-ka-pho는 꽤 가깝습니다. 

 

민족간 소통의 장벽을 줄이기 위한 공용어인 영어 발음에 가까운 '싱가포르'로 부르는 게 그나마 가장 나은 방안으로 보입니다.

 

 


8) 인도네시아 - 자카르타 / Jakarta (마인어) / 자카르타 -> 누산타라 / Nusantara (마인어) / 누산타라

 

자카르타_누산타라.png

자카르타 깃발/문장 (위); 누산타라 문장 (아래) - 누산타라 깃발은 따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 '자카르타'는 산스크리트어 जय (jaya, '승리')와 कृत (krta, '성취')의 합성어인 जयकर्त (jayakarta, '성취된 승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자야카르타 (Jayakarta)'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527년에 데막 술탄국 (Kesultanan Demak)의 사령관 파타힐라 (Fatahillah)가 이 도시에서 포르투갈 군대를 성공적으로 축출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자야카르타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는 '순다 클라파 (Sunda Kelapa)' 라는 명칭이 쓰였는데 이는 순다어로 '순다의 코코넛'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현재 자카르타의 오래된 항구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1619년에 이 도시를 점령한 뒤에는 '바타비아 (Batavia)'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이는 네덜란드의 시조 중 하나로 인정받는 게르만족 일파 바타비족 (Batavi)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뒤에는 '자카르타 (Djakarta)'라는 이름으로 복구되었고, 1972년에 인도네시아어 (마인어 일파)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Jakarta'가 되었습니다.

 

한편 자카르타는 인구 집중이 심해 교통, 주택, 지반 침하 문제가 있어서 조코 위도도 (Joko Widodo, 1961-)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9년에 수도를 보르네오 섬 동부로 옮기기로 발표하였는데, 이 지역은 인구는 적으나 자원 수급에 있어 중요한 지역으로, '누산타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누산타라'는 고대 자바어 nūsa ('섬들')와 antara ('바깥')의 합성어로 '바깥 섬'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일대의 섬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사용됩니다.

 

마자파힛 제국 (Kemaharajaan Majapahit)의 재상이었던 가자 마다 (Gajah Mada, 1290-1364)가 1336년에 전달한 숨파 팔라파 (Sumpah Palapa)라는 맹세를 통해 '마자파히트의 영광 아래 '누산타라' 전체를 정복할 때까지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언급에서 '누산타라'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마자파힛 제국은 재상 가자 마다의 지휘 하에 대규모 해상 원정을 벌여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영역이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9) 브루나이 - 반다르스리브가완 / بندر سري بڬاوان‎ (bandar seri begawan), Bandar Seri Begawan (마인어) / 반다르스리브가완

 

반다르스리브가완.png

반다르스리브가완의 로고. 깃발/문장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 '반다르스리브가완'은 말레이어 Bandar ('마을', '도시') + Seri ('위대한') + Begawan ('영도자')가 합쳐진 말로 '위대한 영도자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Bandar는 페르시아어 بندر (Bandar, '항구')에서 유래했으며, Seri는 산스크리트어 경칭 श्री (Śrī)에서, Begawan은 산스크리트어 भगवान (bhagavān, '신')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브루나이 술탄국 (Kesultanan Brunei)은 1368년 마자파힛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처음에는 코타 바투 (Kota Batu, '돌 요새')를 수도로, 그 다음에는 캄퐁 에이어 (Kampong Ayer, '물 마을')를 수도로 했다가 최종적으로는 이 도시를 수도로 하였습니다.

 

브루나이 술탄국은 1888년부터 1984년 사이에는 영국의 보호국인 '평화의 거처 브루나이국'가 되었고, 이 당시에도 이 도시가 수도였지만 명칭은 '브루나이 타운 (Brunei Town)' 내지는 동일한 의미인 '반다르브루나이 (Bandar Brunei)'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에 이 도시의 이름은 브루나이의 28대 술탄이자 현임 술탄 하사날 볼키아 (Hassanal Bolkiah, 1946-, 재위 1967-)의 아버지이며 브루나이의 국부로 불리우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 (Omar Ali Saifuddien III, 1914-1986, 재위 1950-1967)의 칭호인 'Seri Begawan'을 따서 '반다르스리브가완'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라틴문자 표기에 이끌려 '반다르세리베가완'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원어 발음을 존중하여 '반다르스리브가완'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10) 필리핀 - 마닐라 / Maynila (필리핀어/타갈로그어), Manila (영어) / 마이닐라, 마이닐라시

 

마닐라.png

마닐라 깃발/문장

 

--> '마닐라'는 "인디고 (indigo)가 발견되는 곳"을 의미하는 필리핀어/타갈로그어 may-nila가 에스파냐어로 받아들여져 Manila가 되고, 영어로도 Manila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 섬 (Luzon)에는 에스파냐인들이 도래하기 전 톤도 (Tondo), 나마얀 (Namayan), 마이닐라 (Maynila) 등의 국가가 있었고, 이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을 잇는 무역 중심지였습니다.

 

이후 에스파냐가 1565년부터 오늘날의 필리핀을 점령하기 시작하여 필리핀 도독령을 세웠고, 1572년에는 마닐라를 점령하여 필리핀 도독령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미국-에스파냐 전쟁 이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할 때 (필리핀 군도 미군정청 -> 필리핀 군도 도민정청 -> 필리핀 자치령)도 마닐라는 필리핀의 중심지였습니다.

 

일본제국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을 점령했다가 쫓겨났는데, 이 과정에서 마닐라 대학살 (Masaker sa Maynila/Manila massacare)이 벌어져서 민간인 약 125,000명이 죽고 마닐라 시가지 30%가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한 부영공차 장군

 

필리핀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에 독립하였고, 폐허가 된 마닐라를 대신하여 1948년에 케손 시티 (Lungsod Quezon/Quezon City)가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후 1975년에는 마닐라시와 케손 시티를 포함하는 광역 행정 단위인 메트로 마닐라 (Kalakhang Maynila/Metropolitan Manila)가 신설되었고, 1976년에는 마닐라시가 다시 필리핀의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필리핀어/타갈로그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는 '마이닐라' 이기 때문에 '마이닐라'로 부르는 게 어떨까 합니다.

 

 


11) 동티모르 - 딜리 / Díli (테툼어, 포르투갈어) / 딜리

 

딜리.png

딜리 깃발. 독립국 동티모르의 수도로서의 딜리의 문장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 '딜리'는 파푸아 계통 언어인 부낙어 (Bunak language) zili ('절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이 도시에 접한 절벽과 관련 있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는 1520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이 도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데, 동티모르가 정식으로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것은 1702년이었습니다 (포르투갈령 티모르).

 

포르투갈령 티모르의 원래 중심지는 리파우 (Lifau, 오늘날 동티모르 오에쿠시 암베누 특별행정지방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Oé-Cusse Ambeno - 인도네시아령 서티모르 북부에 위치)에 위치)였지만, 네덜란드의 공격으로 포르투갈 세력이 밀려나자 1769년에 포르투갈령 티모르의 중심지가 딜리로 이동합니다.

 

포르투갈에서 1974년에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자 동티모르는 1975년에 독립하지만, 곧이어 인도네시아가 침공하여 티모르티무르 주 (Timor Timur)로 합병됩니다.

 

이때에도 딜리는 중심 도시였고,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딜리는 수도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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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나라의 수도 (0) 개괄: https://itssa.co.kr/living/14553505
세계 각 나라의 수도 (1) 동북아시아: https://itssa.co.kr/living/1455354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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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1 19:19  (수정 06.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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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노이는 베트남에 있는 직할시 (Thành phố trực thuộc trung ương/城庯直屬中央 (성부직할중앙)) 5개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에는 하노이 외에 호찌민 (Hồ Chí Minh/胡志明 (호지명)), 하이퐁 (Hải Phòng/海防 (해방)), 껀터 (Cần Thơ/芹苴 (근저)), 다낭 (Đà Nẵng/沱灢 (타낭))이 직할시입니다.
    2. 비엔티안 (위앙짠)의 중심가에는 라오스의 상징 중 하나인 파 탓 루앙 (ພຣະທາດຫຼວງ (Pha That Luang))이 있습니다. 파 탓 루앙은 황금으로 덮인 거대한 스투파로서, 서기 3세기에 최초로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프놈펜은 프랑스 치하에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어 1920년대에는 '아시아의 진주'라고도 불리우고, 1960년대 초반까지는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 론 놀의 쿠데타 이후 크메르 루주 집권,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등으로 20년 가량 경제 발전이 지체되어 버렸습니다.
    4. 방콕 (크룽텝/크룽텝 마하나콘)은 하계 아시안 게임을 4번이나 개최한 도시 (1966년, 1970년, 1978년, 1998년)인데, 그 중 2번은 떠넘겨 받아서 개최하였습니다 (1970년: 서울 -> 방콕 / 1978년: 싱가포르 -> 이슬라마바드 -> 방콕). 
    5. 네피도에는 군부 독재에 저항한 아웅 산 수 찌 (အောင်ဆန်းစုကြည် (Aung San Suu Kyi), 1945-) 여사의 기운을 떨어트리기 위해 심은 Jatropha 속의 나무 (독성 있음)가 있고, 액운을 막기 위해 정부 관청을 전갈 모양으로 건축한 사례도 식별된다고 합니다.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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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쿠알라룸푸르에는 왕궁, 국회의사당이, 푸트라자야에는 중앙행정기관 대부분이 위치합니다. 한편 푸트라자야는 한국의 세종특별자치시가 건설될 당시 모델이 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7. 싱가포르는 총 5개의 사회발전이사회 (Community Development Council)로 구성되어 있고, 총 87개의 선거구 (단일, 집단 선거구 혼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 인도네시아는 2024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을 기점으로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누산타라는 한국의 세종특별자치시를 모델로 하여 건설되었습니다. 
    9. 반다르스리브가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주/행정 목적으로 사용되는 궁전인 이스타나 누룰 이만 (ايستان نور الإيمان (Istana Nurul Iman), '믿음의 빛의 궁전')이 있습니다.
    10. 마닐라시는 필리핀의 법적 수도인데, 실질적인 수도는 마닐라시를 포함하여 16개의 시 (Lungsod/City)와 1개의 자치시 (Bayan/Municipality)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러 관공서가 위치한 메트로 마닐라입니다. 특히 메트로 마닐라에 속한 케손 시티는 필리핀 최대 도시로 1948년부터 1975년까지 필리핀의 법적 수도였고, 현재도 여러 정부 기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1. 딜리는 동티모르 딜리 현 (Município Díli)의 현청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 2024.06.1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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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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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집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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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얘기에 관심이 가네요

    특히 킬링필드의 비극이 아직도 또렷한 캄보디아는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옵니다.

    옛날 국제 축구대회에서 크메르와 버마는 늘 우리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합니다.

    독재와 빈곤에서 고통받는 국민들도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을

    고대하며 잘 보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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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부는소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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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네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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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루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2024.06.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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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는 유독 최근에 수도를 천도하거나 천도 예정인 국가가 많네요.

    한편 동티모르 독립에는 故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고요.

  • 에스프리 작성자
    2024.06.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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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금메달🥇

    김대중 대통령은 동티모르에서 일어나는 학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부 수반들에게 동티모르의 상황을 인식시켰고, APEC과 유엔에 안건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육군 제522평화유지단 상록수부대가 파병된 바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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