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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9.0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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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6307237

<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 >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 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 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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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10 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국내 굴지 기업에서 그를 후원하고 있다고 하며
그는 어머니와 형 모두를 미국으로 모셔
형과 같이 공부하면서 어머니께 극진한 효도를 한다고 한다.

이글은 반복해 읽을 수록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들은 진리가 어딘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변두리, 가장 멀리 떨어진 별 너머 아득한 저편... 영원에는 진실하고 숭고한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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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6 05:24
    베스트

    나는

    뭐하고

    살았던가!

  • 2024.09.06 07:58
    베스트

    ㅜㅜㅜㅜㅜㅜ

    대단하다 조물주가 불굴의의지에 몰빵해주셨구나 🥲🥲

    행복하시길 🙏🏻🙏🏻🙏🏻

  • 2024.09.06 09:36
    베스트

    😭😭😭

  • 2024.09.06 10:47
    베스트

    눈물이..찔끔..

  • 2024.09.06 10:58  (수정 09.06 10:59)
    베스트

    저 글의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알려주실 분 있으실까요..?

     

    저도 감동을 받고 싶은데

    저의 삶의 가치관과는 많이 달라서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는 지 잘 모르겠거든요.

     

     

    이런 저를 비난하기보다는

    좋은 말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동이족 작성자
    2024.09.06 11:09
    베스트
    @포휴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쟝애를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이 사회의 벽을 넘어서려고 고분분투 하는 부분 아닐가요?

  • 2024.09.06 11:21  (수정 09.06 11:22)
    베스트
    @동이족

    장애인이 고군분투하는 모습

    개인적으로는 안쓰러운 부분이네요.

     

    하지만

    글 자체만으로는

    "사회의 벽"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

     

    단지 서울대를 가고 성공을 해서

    고생하신 어머니와 형에게 보답 하겠다는 마음만 보이니

     

    제가 감동을 못 느끼나 봅니다.

     

    어린 나이에 쓴 글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겠지만

     

    저렇게 자신만의 성공과 영달을 꿈꾸는 이들의 글이

     

    감동으로 포장되어 널리 퍼지는 거에 대해서는

    불편한 마음도 있습니다..

     

    아마도 현재 서울대 출신 기득권자들의 지저분한 이기적인 행태와

    오버랩되어  더욱 그런가 봅니다.

     

    제가 많이 삐딱해 진거겠죠..

     

    .

     

     

  • 동이족 작성자
    2024.09.06 11:32  (수정 09.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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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휴

    글에서는 사회의벽이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는 알잖아요.

    시장 난전에서 생선파는 어머니와,  글쓴이의 장애와 형의 장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편한 편견과 시선이 있었을까요.

    그냥 20세가된 젊은이의 고분분투기 정도로만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다른 부분은 공감되는 말이네요. 서울대출신 기득권자들의 이기적인 행태

  • 2024.09.06 11:39  (수정 09.06 11:40)
    베스트
    @동이족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 성공' 만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에 대한 반감이 조금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는 대견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현실의 벽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24.09.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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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휴

    포휴님은 시니컬 하시네요

  • 2024.09.06 14:26
    베스트
    @포휴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눈물이 흐르는데요

    고생하는 엄마와 장애를 가진형과 본인의  앞날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가서 

    효도하고 잘살고 있다

    전 감동인데요

  • 2024.09.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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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울대는 저런분들 못다닙니다.

    합격할순있는데 더 서러울겁니다.

    교육 과정이 그래요.

    태어나면서 부터 돈으로 다져진 애들이 70%넘어요.외고 국제고 자사고 

    재수도 돈있어야하는겁니다.

    과잠아니고 출신고교잠바 입고다닙니다.

    그렇게 졸업한애들이 판검사나 유명 언론인 되는겁니다.

    중고때 못사는 애들 본적이 없어서 서민들 공감을 못합니다.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겠죠.

  • 동이족 작성자
    2024.09.06 13:33
    베스트
    @이잼몰빵굥거니꼬조

    대한민국이  점점 개인주의화 되니 나오는 결과겠죠. 욕나오네요 

  • 2024.09.06 13:42  (수정 09.06 13:43)
    베스트

    하... 눈물이...  

    엄마, 형! 다른 가족들과 영원히 행복하길...

    뱀발) 검,판새의 길을 안가서 참 다행이다.

     

  • 동이족 작성자
    2024.09.06 13:45
    베스트
    @이작가쵝오

    앗 갑자기 확 깨는데요 ..  우주항공쪽으로 가서 다행이네요

  • 2024.09.06 14:27
    베스트

    눈물 찔금 거리면서 읽었습니다

  • 2024.09.06 14:51
    베스트

    이런글 마저도 비추를 하는 인간들은 진짜 고자가 됐으면 좋겠다 도대체 이글 어디에 비추를 할만큼 문제가 보이는 것이냐

  • 동이족 작성자
    2024.09.06 14:53
    베스트
    @그리움이야

    서울대라면 이가 갈려서 그런듯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