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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8.20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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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났다. 그리고 이 전당대회에서 마지막 한 주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마한 정봉주였다.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후보 중 1위로 치고나갔던 정봉주는 이날 결국 6위로 내려앉으며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나는 내가 정봉주에 대해 이런 글을 쓰게 될 것이라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이 칼럼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칼럼에서 정봉주 개인의 문제를 거론하겠지만 그게 주된 목적은 아니다. 이 칼럼을 결심한 이유는 그가 우리 진보운동에 남긴 교훈과 메시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정봉주를 응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먼저 나는 정봉주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택한 전략에 대해 별 할 말이 없다. 그런 고도의 정치적 선택을 평가할 만한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대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건 그가 선택한 길이고, 그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나는 2012년 그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한 번도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한 적이 없다. 2018년쯤인가?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걸 거절하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와 같은 공간에서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그를 개인적으로 좀 안다는 이야기다. 나는 공저자로 그와 책을 한 권 함께 쓰기도 했고, 그가 쓴 다른 책 두 권 편집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 내가 출판사에서 출판 노동자로 일할 때의 일이었다.

 

공저자로 책을 쓰는 과정에서 감옥에 있던 그를 면회를 통해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가 출소한 이후 3개월 가까이 다른 책 작업을 위해 그와 상당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그가 나꼼수(나는 꼼수다)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유쾌함을 무척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진보운동이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키워갈 무렵 정봉주와 나꼼수는 나에게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짚을 것은 다 짚는, 유식한 척 하지 않으면서도 민중의 언어로 사람을 설득하는 정봉주의 유쾌함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동경은 그를 만나고 함께  작업을 하면서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나를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반말로 이거 해와라 저거 해와라 비서 부리듯 하는 태도(비서도 당연히 이렇게 부리면 안 된다)에서 처음 놀랐고, 나뿐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깔아보는 그 거만한 태도에 두 번 놀랐다.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 진화론’이라는 책을 쓸 때 작가와 인터뷰를 서울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 방을 잡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당연히 그 돈은 출판사에서 냈다.

 

그리고 야밤에 정봉주가 “와인이 마시고 싶다”고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를 했단다. 출판사 노동자가 늦은 밤에 허겁지겁 와인을 구매하러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미안해하기는커녕 마치 당연한 대접 받는다는 듯이 와인을 받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정봉주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진보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묵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걸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묵으면서 “니네들이 돈 내라”고 당당히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진보는 값비싼 와인을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걸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마시면서, 야밤에 남의 회사 노동자에게 “와인 사서 내 방에 가져와”라고 명령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돈으로 그 짓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진보가 어쩌고 민중이 어쩌고 떠들어서는 곤란하다. 야밤에 와인을 구해 허겁지겁 호텔 방에 가져다줘야 했던 그 출판사 노동자가 정봉주를 보고 진보를 뭐라고 생각했겠나? 그 노동자가 나에게 “선배, 저러고도 진보 어쩌고 하는 게 진짜 웃겨요”라고 토로했을 때, 내가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랄하지만 겸손한 투쟁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진보가 너무 진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나꼼수 시절 정봉주의 유쾌함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그 유쾌함의 내면에 ‘내가 민중들의 위에 있다’는 거만함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민중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어찌 진보가 가능한가?

 

나는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 청년기를 보낸 탓에 진보운동을 좀 숨 막히게 한 편이다. 시절이 하도 험악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농활을 갔을 때 담배를 청자만 피도록 강요하거나, 하루에 잠을 네 시간도 안 재웠던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자는 취지였던 것 같은데, 그 시절 농민들도 다 팔팔 라이트 피웠고 밤에는 푹 잤다.

 

집회에 참가했을 때 제일 힘들었던 대목이 발언자들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발언도 좀 재미있게 하면 안 되나? 물론 발언 하시는 분이야 절절한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셨겠지만, 듣는 사람은 발언 시간에 이미 진이 다 빠진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가 앞세운 자아고갈 이론이라는 게 있다. 이 이론의 기본 개념은 인간의 인내력은 한정된 연료와 같다는 거다. 자동차 연료통에 들어가는 연료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낸다.

 

인간의 인내심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이걸 폭발적으로 쓰라고 강요하면 다음에 쓸 인내심이 남아나질 않는다. 농활 때 잠도 못 자게 해, 담배도 청자만 피게 해, 이러면 정신력이 강해져서 더 투쟁을 잘 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되레 연료가 소진돼 정작 낮에 일을 엉망진창으로 한다. 우리의 투쟁이 더 발랄하고 재미져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재밌게 하는 사람이 건방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봉주처럼 야밤에 남의 회사 노동자에게 와인 갖고 와라 어쩌고 이래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때부터 진보는 운동이 아니라 쇼가 된다. 우리의 진보 운동은 우리와 함께 하는 민중들에 대한 뜨거운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봉주는 대중에게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는 불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발랄함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와 같은 공간에서 진보를 함께 논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유쾌하되 거만하지 않은, 민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되 민중들을 존중하는, 너무 심각하지 않지만 가슴은 뜨거운 그런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게 내가 정봉주를 지켜보며 나 스스로에게 남기는 숙제 같은 교훈이다.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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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2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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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같으면 같이 반말쓰거나 왜 반말이냐고 받아친다. 와인도 안주고 호텔방도 니가 해 한다.진작 말하지. 이제 끝난거 같으니 부관참시? ㅋㅋㅋ

  • 2024.08.20 06:15
    베스트
    @테트라고날

    노노 확인사살. 그리고 처자식 먹여살리는 일을 하는 와중에 갑의 위치에 선 인간이 갑질하는데 받아칠 수 있는 인간은 보통 그 인간 아버지가 존나 잘 나가거나 똘아이임. 보통의 경우는 그냥 참고 넘김. 님은 어느쪽?ㅋ

  • 2024.08.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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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트라고날

    거짓말 못할꺼면서 ㅋㅋㅋ 웃기고 있네

  • 2024.08.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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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승리

    삭제한 댓글입니다.

  • 2024.08.2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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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트라고날

    사장도 아니고, 사장이어도 자신 지분이 100%가 아니면 그리 못할텐데.. 참.. 세상 모르네 ㅋㅋㅋㅋㅋ

  • 2024.08.20 03:35  (수정 08.20 03:37)
    베스트

    실체 다 드러나네

  • 2024.08.20 05:40  (수정 08.20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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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같이 일했던 분들은

    거의  다 비슷한 얘기를 하시네요.

  • 2024.08.2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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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태도가 모든것을 나타낸다

  • 2024.08.2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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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젠 책장에서 봉씨책 빼야겠어요

  • 2024.08.2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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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정봉주 직원 갑질 사건도 아직 제대로 된 해명 안했죠

     

    직원을 거의 뭐 종 부리듯 했으니

  • 2024.08.20 06:23
    베스트

    '우리는 이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유쾌하되 거만하지 않은, 민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되 민중들을 존중하는, 너무 심각하지 않지만 가슴은 뜨거운 그런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게 내가 정봉주를 지켜보며 나 스스로에게 남기는 숙제 같은 교훈이다'

     

    정봉주 까는게 글의 중심 내용도 글쓴이의 의도와 목적이 아님에도..  댓글 보면...

    글쓴이의 교훈은 앞으로도 해결되기 힘든 교훈으로 남을것 같다. 

  • 2024.08.20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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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질이 몸에 밴듯

  • 2024.08.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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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같이 말주변 없고 내성적인 사람은  저런 유형한테 걸리면 기가 쪽쪽 빨리져. 현실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은 타입이네여. 

  • 2024.08.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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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사람보는눈이 없다 생각했는데

    정봉주는 첨부터 아니라고 느꼈고 그촉은 맞았다

    가벼운척하는게 아니라 진짜 가볍고 천한 인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것은 오롯이 나꼼수 덕이다

    이번에 바닥을 보여줘서 다행이다

    그냥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그만 보고싶다

  • 2024.08.2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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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권스때부터 오프모임에 자주 나왔었는데 그때마다 회원들한테 무조건 반말이었어요

  • 2024.08.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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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에 참가했을 때 제일 힘들었던 대목이 발언자들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발언도 좀 재미있게 하면 안 되나? 물론 발언 하시는 분이야 절절한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셨겠지만, 듣는 사람은 발언 시간에 이미 진이 다 빠진다."

     

    이부분 100%  동감. 

  • 2024.08.2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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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배 기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자임 그의 증언은 충분히 신뢰할만 하다고 확신합니다 정봉주가 민주당에서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사실은 그의 성품과 깜냥 때문이었다는게 어쩌면 이제야 드러났다고 봐야할 듯

  • 2024.08.2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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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혁의원께도

    반말

    나가있어

    이걸로 그의실체가 다 들어남

  • 2024.08.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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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김엄마의 평화나무 취재에서 봉도사의 갑질 관련이 있었는데 봉도사의 본성이 그런거 였군요. 김엄마나 이완배 기자는 절대적으로 믿는 존재이기에 그런 실상이었다는걸 확실히 알수 있네.

  • 2024.08.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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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배는 일단 윤영찬에 대한 어떠한 논평 적기전에는 뭔소리를 해도 *소리 아닌가?

    이딴소리 선거전에 적던가 윤영찬 칭찬을 졸라 적어제끼더니 ㅎㅎ

     

  • 2024.08.2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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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요

    저도 들은 기억이 나네요. 같은 동아 출인이라 엄청 빨아주던

  • 2024.08.2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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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주는 예전부터 인성이 좋지 않았구만. 

  • 2024.08.20 08:15
    베스트

    관뚜껑에 못질 야무지게 하네

  • 2024.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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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라도 까발려져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 2024.08.20 11:08
    베스트

    정봉주에게 진 마음의 빚은 이제 없어지네요... ㅠㅜ 씁쓸합니다... ㅠㅜ 

    나까지 욕할 필요는 없겠죠... 잘가라... 봉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