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차이나 쇼크는 중국이 개방 물결을 타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생긴 무역 시장의 변화를 뜻한다. 중국 공산품이 저가로 쏟아지면서 세계 물가가 내려가고 각국에서는 중산층의 구매력이 커지는 효과를 누렸다. 대신 중국산에 밀려 경공업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해당 기간 선진국은 산업 구조 재편을 통해 정보기술(IT)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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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차 차이나 쇼크는 양상이 다르다. 1차 때는 중국이 호황이라 각종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황이라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 각국이 만든 상품을 중국에 수출할 여지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작년 대중 수출이 급감하면서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 무역적자를 냈다.
중국의 산업구조도 바뀌었다. 전기차, 배터리, 석유화학 등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요 산업에서 저가의 중국 제품이 쏟아지고, ‘대륙의 실력’을 보여주는 상품도 등장해 세계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자증권 연구원은 “대륙의 실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경쟁하는 세계 주요 첨단기업들이 1차와 다른 차이나 쇼크에 직면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일정 부분 용인하면서 자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위기감이 감돈다. 독일의 중국 연구기관인 메릭스는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는 보고서를 통해 제조업 의존도가 높고 첨단산업 비중이 높은 한국과 독일 등이 중국 전략에 가장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 브랜드 로보락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는 국내 가전 시장에 진출해 로봇청소기 부문에서 2년째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150만원을 웃도는 최상위급 로보락은 먼지 흡입 후 걸레로 닦고, 걸레를 빨아 말리는 ‘올인원 기술’이 특징이다.
국내 전기버스 2대 중 1대는 이미 중국산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는 지난해 말 기준 테슬라를 제치고 판매량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커머스 분야의 침투 또한 만만치 않다. 알리의 모회사인 알리바바그룹은 물류센터 건립을 위해 한국에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유통업계에서는 해외 시장으로 접근성이 좋은 한국을 ‘디플레이션 수출’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국 고부가가치 산업도 미국 추월
중국은 첨단기술 부문에서도 한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올해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요 5개국의 국가 핵심기술 수준을 분석한 ‘2022년도 기술 수준 평가’ 에 따르면, 1위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중국은 82.6%로 한국(81.5%)을 앞섰다. 중국이 한국을 앞선 건 2012년 조사 이래 처음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서방 국가가 견제에 나선 것도 1차 때와 다른 모습이다.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판매는 중국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분야다. 이미 유럽을 평정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미국 시장 접수를 앞두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 제품의 가격이 저렴한 데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저렴한 공장 용지를 제공하고, 각종 정책 보조금과 특혜 융자를 쏟아부은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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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의 모델 ‘탕(Tang)’ / 연합뉴스주요 국가들은 자국 산업과 일자리 붕괴를 우려하며 규제에 나섰다. 단기적으로는 저가 제품이 소비자 입장에선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과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EU는 오는 7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한다. 아울러 태양광 패널 등 광범위한 제품에 수입 제한과 고율의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인도는 지난해 9월부터 중국산 철강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친중 국가인 브라질도 철강, 화학제품 등 최소 6개 분야에서 반덤핑 조사를 하고 있다. 각국이 준비하는 규제 중에는 한국 산업에 영향을 미칠 방안도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EU는 2026년부터 수입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수치화해서 배출량이 많을수록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전력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높은 편에 속하고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에 기반한 전력 생산 비중이 세계 평균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며 “전력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두고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미·중 패권 경쟁 격화 속 한국 대비 필요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EU 등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국 기업을 지키려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구실로 삼고 있다”며 “중국의 수출 확대는 다른 나라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물가 인하로 세계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데도 중국을 깎아내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쟁점으로 부상해 바이든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통상 정책을 놓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향후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중국과 미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될 공산이 커 한국으로선 선제 대비가 필요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공급망을 쥐고 있는 중국이 미국 등의 반덤핑 공세에 보복 조치를 예고해 기업들에도 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이 잘하는 산업 품목과 (국내 기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차별화된 초격차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분쟁이 단순한 무역·통상 분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패권 경쟁이 될 것으로 보고 양자택일식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규제할수록 장기적으로 미국에도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상인의 정신과 외교적 기술로 전략적 중립을 유지하며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기술의 굴기로 낙후되는 산업들을 경쟁력이 있는 쪽으로 옮겨주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산업별 구조개편은 교육 등의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부가 첨단 산업 육성에 대한 큰 로드맵을 갖고 산업별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대체 시장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저자 한청훤 작가는 “내수 경기 불황 등에 따른 중국 경제 문제는 앞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커 그에 따른 부작용을 대비해야 한다”며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인도와 동남아 등 기업이 중국을 대체할 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외교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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