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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5.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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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4029430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용산 넘버 1(2?)과 닮은 구석이 많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며 5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했다. 유복하지 않은 집안이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어 그 정도 공부는 할 수 있었다. 나도 혹 4년 더 공부했다면 붙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럼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그건 아니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바짝 하는 듯했지만 새벽까지 공부하고 그런 인간이 못된다. 대충 알고 있으니 디테일한 부분은 집중만 하면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나는 시험 중간에 나온 적은 없었다. 

 

나와 용산 그 사내의 근본은 닮았다. '대충 맛 봤어. 다 안다고. 내가 깊게는 몰라도 두루 아니까 어디가서 쫄리진 않아' 그런 마음가짐.

 

늦깍이 신입사원으로 회사를 들어갔다. 프로젝트 기획 일을 맡았다. 물론 기획안을 작성하고 발표를 준비해야 한다. 그때도 나의 그 심성이 걸림돌이 됐다. 대충 꾸며서 그럴싸하게 입으로 퉁친다는 심보. 그래서 번번이 실패였다. 그럼에도 매번 회사 욕만 했다. 매일 야근 시키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나 같은 고급 인재를 몰라본다고. 승진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 업무 포지션 자체가 승진과 어울리지 않는, 회사 자체가 승진이 큰 의미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승진시키고 직급을 준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회사에서는 중히 여긴다는 의미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기획 준비도 발표도 엉망이었다.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매번 빠졌다. 그때그때 주워 들은 것들을 모아 그럴싸하게 붙여 놓는 게 전부였다. 그런 눈속임이 간혹 먹힐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빠꼼이 심사위원들에게 털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번은 젊은 여자 심사위원이 대노해 지적질을 하는데, 아무 말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그때도 머릿속으로는 '회사에서 자원을 주지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라며 그저 이 질타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나오면서 똥씹은 듯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좋은 사람이었다. 유쾌하고 노래 잘 하고, 술 잘 마시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무례하지 않은. 직원 중에 나를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호의적 인간관계가 어쩌면 나를 더 무능한 인간으로 몰아세우진 않았나 싶다가도, 그건 그냥 천성이다. 내가 모질지 못해서 아니, 박절하지 못해 그런 것이다 라고 위안했다.

 

일이 맞지 않아서인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는 삶의 계획을 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늦은 나이임에도 연애도 결혼도 못하고 살아간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게는 그런 에너지도 어쩌면 자격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자연히 돈 좀 있는 자비심 많은 여인 어디 없나 생각도 해보지만, 내겐 좋은 타이틀이 없다. 명예와 돈이 있는 아버지도 없고, 잘가는 점집도 없다. 아, 잘가는 동네 치킨집은 하나 있다.

 

먹는 것도 참 좋아한다. 집안 구석구석 먹거리 위치는 잘 파악한다. 동네 마트에서 먹거리 사는 걸 좋아한다. 옷이나 다른 물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구매할 돈이 여의치 않아 사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검소한 편이기도, 혹은 미적 감각이나 센스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먹는 것에는 상당히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있어, 형편이 닿는대로 먹는 경험을 게을리 하진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세에 마트에서 대파 1단을 돈 1000원도 안되는 값에 팔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1단에 1500~3000원 선을 yuji(유지)하고 있다.

 

결국 몇년 전, 나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야 했다. 좀 더 일찍 용기를 내야 했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다행이도 지금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 일을 선택했다. 더 이상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듣는다. 물론 과거에 했던 그 일, 지금도 하라면 할 수는 있다.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된다면 심기일전해서 다시 그 일을 해볼 생각도 해보지만, 이젠 나이도 들어가고 열정이나 기세(혹은 운빨?) 같은 것에 기대어 미친듯이 그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제라도 그 일을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내가 그 일을 하는데 있어 최소한 국민의 허락을 다시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용산 그 사내에게 지금 그 자리, 혹은 그 근저리 자리를 다시 허락할 생각이 없다. 내겐 그런 권리가 있으니까.

 

나와 닮아 더 슬프고 애잔하면서도 싫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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