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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10.09 04:14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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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856014

 

 

 


 

 

 

 

Me and Bobby McGee

 

 

 


 

 

 

 

 

Me and Bobby Ridge McGee - Kris Kristofferson

 

 

Busted flat in Baton Rouge, headin' for the train,

Feelin' nearly faded as my jeans.

Bobby thumbed a diesel down, just before it rained;

Took us all the way to New Orleans.

I took my harpoon out of my dirty red bandanna,

And was blowing sad while Bobby sang the blues.

With them windshield wipers slappin' time,

And Bobby clappin' hands,

We finally sang up every song that driver knew.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Nothin' ain't worth nothin' but it's free.

Feeling good was easy, Lord, when Bobby sang the blues.

Feeling good was good enough for me;

Good enough for me and Bobby McGee.

 

 

From the coal mines of Kentucky to the California sun,

Bobby shared the secrets of my soul.

Standin' right beside me, Lord, through everything I've done,

Every night she kept me from the cold.

Then somewhere near Salinas, Lord, I let her slip away,

Lookin' for the home I hope she'll find.

And I'd trade all my tomorrows for a single yesterday,

Holdin' Bobby's body next to mine.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Nothin' left is all she left for me.

Feeling good was easy, Lord, when Bobby sang the blues.

Buddy, that was good enough for me;

Good enough for me and Bobby McGee.

 

 

La da da la la na na na

La da da na na.

La la l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da da da

La la la da da.

La la l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na na na

La la la da da.

La da d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da da da

 

 

 

 

 

 

배턴 루지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어.

낡은 내 청바지처럼 기분이 참 스산했었지.

비가 퍼붓기 직전에  바비가 엄지손가락으로 트럭을 세웠어

덕분에 우린 뉴올리언스까지 갈 수 있었지

나는 낡은 붉은색 스카프에 쌓인 하모니카를 꺼내

슬픔을 담은 연주를 했어. 바비는 블루스를 흥얼거렸고

우리의 음악에 맞춰 앞 유리 와이퍼가 왔다 갔다 

바비는 손뼉으로 장단을 맞췄지.

우린 결국 운전사가 아는 노래를 죄다 불렀어.

 

 


자유란 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걸 뜻하는 또 다른 말이야.

나에게 자유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어

그가 내게 노래를 들려줄 때 정말.. 너무 행복했어. 

그 건 내 삶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 중 하나였어.

나와 바비 맥기, 그래 우린 그것만으로 행복했어. 

 

 

 

켄터키 탄광에서 태양빛 찬란한 캘리포니아까지

바비와 나, 우린 내 영혼의 저 깊은 부분까지 함께 나누었어.

그는 내가 무얼 하든 늘 바로 내 곁에서 날 지켜 주었어.

그는 밤이면 찾아오는 추위로부터도 나를...

그러나 난 살리나스 부근 어디선가에서 그녀를 보내야 했어. 

현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난 정말 그녀가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길 바래.

 

그래도 난 그녀와 함께한 단 하루의 어제를 되돌릴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미래의 모든 날을 포기할 수 있어.

그녀를 가까이 꼭 안을 수만 있다면

 

 

 

 


자유란 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걸 뜻하는 또 다른 말이야.

나에게 자유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어

그가 내게 노래를 들려줄 때 정말.. 너무 행복했어. 

그 건 내 삶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 중 하나였어.

나와 바비 맥기, 그래 우린 그것만으로 행복했어. 

 

 

 

 나와 바비 맥기

 나와 바비 맥기

 나의 바비 맥기

 

 

 

나와 바비 맥기

 

 

 

 

 

 

Busted flat in Baton Rouge, headin' for the train,

Feelin' nearly faded as my jeans.

Bobby thumbed a diesel down, just before it rained;

Took us all the way to New Orleans.

I took my harpoon out of my dirty red bandanna,

And was blowing sad while Bobby sang the blues.

With them windshield wipers slappin' time,

And Bobby clappin' hands,

We finally sang up every song that driver knew.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Nothin' ain't worth nothin' but it's free.

Feeling good was easy, Lord, when Bobby sang the blues.

Feeling good was good enough for me;

Good enough for me and Bobby McGee.

 

 

 

 

From the coal mines of Kentucky to the California sun,

Bobby shared the secrets of my soul.

Standin' right beside me, Lord, through everything I've done,

Every night he kept me from the cold.

Then somewhere near Salinas, Lord, I let him slip away,

Lookin' for the home I hope he'll find.

And I'd trade all my tomorrows for a single yesterday,

Holdin' Bobby's body next to mine.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Nothin' left is all he left for me.

Feeling good was easy, Lord, when Bobby sang the blues.

Buddy, that was good enough for me;

Good enough for me and Bobby McGee.

 

 

 

La da da la la na na na

La da da na na.

La la l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da da da

La la la da da.

La la l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na na na

La la la da da.

La da da da, Me and Bobby McGee.

La la la la la da da 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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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드 프랑스

한 잔 한 뒤 걸어가던 새벽길..

 

자유란 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걸 뜻하는 또 다른 말이야.

나에게 자유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어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https://www.youtube.com/watch?v=5x0b7XOUmH0&list=RDD8NsoN4S7IE&index=2

 

 

 

예컨대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그의 친조부와 외조부 둘 다 스웨덴 출신이며 두 집안 모두 스웨덴의 유서 깊은 가문, 그리고 장교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미국 공군에 입대해서 소장, 다시 말해 장군이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사내는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가문의 대를 이어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늘 들었다.

장군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는 문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그는 미술과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가 가진 운동 재능은 비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가 쓴 수필은

많은 영문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에 비견되는 

위대한 미국 출신 문학가의 반열에 들어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럭비, 미식축구, 육상의 여러 종목, 복싱에서 탁월한 기량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학업에서 탁월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한다.

 

 

17세가 되자 공부를 접고 간척공사 현장에서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적은 드물었다고 한다.

 

그 후 대학교 영문학과에 전면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고

대학에서 그는 영문학과 교수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는다.

 

그는 대학에서도 복싱으로 이름을 날리며 럭비와 미식축구, 육상 여러 종목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미국을 이끌 차세대 스포츠 스타로 소개되었고

그의 업적은 동판에 새겨져 기념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머튼 대가 선정한 로즈 장학생이 되어

미국을 떠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재학 당시 그가 남긴 많은 뛰어난 글은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럭비팀을 이끌며 우승을 따내고

복싱과 육상에서도 그가 가진 능력은 케임브리지 대 스포츠 역사에 남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부모의 바람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미군 장교가 된다.

그리고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어 서독에서 복무한다.

기왕 군인이 되었으니

가장 혹독한 특수 부대 훈련 - 레인저 과정, 공수훈련 등을 포함하는 -까지도 

수료한다.

 

대위가 된 그를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임명한다.

 

그는 영문학 교수를 사양하고 길고 먼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음악의 길로 떠난 것이다.

 

 

 

 

 

무명 가수의 수입은 끼니 해결도 쉽지 않았고

그때 태어난 아들이 식도에 질병이 생겨서

그는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상업용 헬리콥터를 조종하며 돈을 벌었고

작사, 작곡, 노래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컨트리 음악 역사에 남는 살아있는 전설이 된다.

그는 영화계에 데뷔한다.

뮤지컬을 만들고 주연을 했고 여러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을 하며

골든글로브 상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한다.

 

대학 시절 그를 지도한 영문학과 교수들의 추천에 의한 명예 예술학 박사 ..어쩌고..

그런데 그는 사실 대부분의 기회와 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해왔다.

 

 

 

 

그는 80세가 넘은 노인이고 은퇴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자신만큼 위대한 가수가 만든 가사 일부를 미리 지정해 놓았다.

 

"전선 위의 참새처럼

교회 성가대에 섞여 노래하는 술주정뱅이처럼

나는 그렇게

오직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다"

 

 

 

생각해 보자.

그가 작사한 글이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질 것인지...

어느 정도의 문학성이 있을지...

 

어떤 이들에게는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생을 살 수 있을까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

 

 

 

 

그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다.

 

'나와 맥기'를 작사 작곡하고 부른 가수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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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9 11:55
    베스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의 주연이었는데

    마이클 치미노(디어 헌터) 감독의 '천국의 문'이 쫄닥 망하는 바람에...ㅠㅠ

     

    그가 주연한 영화들 중에 '관계의 종말'을 재밌게 보았습죠.

    이 영화에는 밥 딜런도 출연하더라구요.

     

    https://youtu.be/mEOZpt2X4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