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1997)'를 다시 봤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주인공의 대사에서 유추하자면), 주인공은 흙구덩이에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자신이 죽은 후에 흙을 덮어줄 누군가를 찾는 여정에서 주인공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사에서 이 영화의 주제들은 드러난다.

그 중에서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신학생(전쟁으로 이란으로 유학한 학생)과의 대화 중에 주인공은 신학생에게 이렇게 토로한다..."물론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중의 하나겠죠. 하지만 불행하게 사는 것도 큰 죄일 거에요. 사람이 불행해지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그것도 죄가 아닐까요? 친구를 괴롭히고, 가족을 괴롭히고, 자기를 괴롭히니 말입니다. 날 괴롭히는 내 목숨을 스스로 끊으면 죄일까요?"

마음을 변화시켜 살아 있는 존재자체에서 삶의 기쁨을 느낀다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일까? 셰익스피어는 말했다..."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 간다면, 그것은 죄일까?"...자살이든, 타살이든, 늙어서 죽든, 병들어 죽든, 사고로 죽든, 누구에게나 죽음은 낯설다. 불현듯 죽음은 찾아오며 도처에 널브러져 있기에 죽음은 딱한 법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자살'이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까뮈는 '자살'이야 말로 삶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자들이 선택한 일종의 대책이기 때문에, '자살'은 삶으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삶에 대해 반항하라고 까뮈는 말하는 것이다. 자살해도 소용없는 삶을 견뎌내는 것이다. 대뇌피질에 난 생채기가 말초신경을 깡그리 훑을지라도, 삶(살아있음)의 지우개로 지우는데 익숙해지면 된다.

'존재는 유한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악'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신학자 틸리히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받들어 '한없는 욕망'으로 썰을 풀었다. 하이데거는 '불안'을 無(무)의 경험으로 보았다. 죽음의 공포 또한 무엇에 기인하듯 마찬가지로 무의 경험이다. 만일 죽음이 무라면 죽을 수 없다는 의지 자체가 불안이며, 삶의 불안과 위태로운 요소들이 결합하여 죽음의 공포를 자아내는 것일 거다. 

그래서 불안과 공포는 역설적으로 살고자 하는 본능이 강할수록 자연스레 나타나는 반항 심리이다. 반면 우울과 체념이 극단에 이르면 살고자 하는 본능이 약화되어 죽음의 공포는 쇠잔해진다. 자살(죽음)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하기까지 불안과 공포가 극도의 긴장상태로 팽창하다가 서서히 불안과 공포가 쇠잔해지면 우울과 체념으로 전이되면 돌일킬 수 없는 죽음(자살)에 순응한다.

덧붙여 니체가 바라보는 존재자체는 다음과 같다..."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그것에 관한 표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떻게 무엇인가 <죽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쩜 우린 살 값어치가 있다는 감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감정에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4iV4NwSbsc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