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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09.0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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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60718

미디어(미디어의 본질은 유명 인사의 죽음과 민중의 안타까운 자살 비보가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계급 차별을 심화시키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광고)적 속성에 의해 계급 의식을 무화시키는 효율적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되는 모든 미디어(매체)의 메커니즘은 알게 모르게 계급 차별을 부추기며, 못 가진자나 힘 없는 자들에겐 일회성 립 서비스(가십성 차원, 그 근원적 실마리를 찾아보기는커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이 미디어(언론*방송)에 대해 올바르게 판별할 수 있는 판단은 이미 던져진 주사위 마냥 늘 그러하듯 맹목적 수용과 선택만이 우리를 강제시킨다.

자본주의에서의 미디어는 계급(물론 미디어는 자본의 흐름에 민감하고 그것에 좌지우지 되는)의 성격적 유무에 따라 차별적 소외를 발생시킨다. 또한 다양한 차별(미디어는 그것-계급-을 부각시키는 매개체이며 촉매제)에 의해 못 가진자나 힘 없는 자는 이중적 소외를 헌사당한다.


"오늘날 역시 교육적 연구를 하는 者나 학자도 그렇지만 저널리즘이라는 저 점착력 있는 매개체에 의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매개체는 모든 생활형태 모든 계층, 모든 학문 사이에 접착제를 발라버리는데, 그것이 매우 견고하다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현대 교육의 본래의 의도는 신문, 잡지, (방송) - 니체가 살던 당시에는 방송이란 매체가 없었기에 덧붙여 본다. - 에다 그 정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순간의 종복인 저널리스트가 순간의 위대한 천재에, 고금을 통한 지도자에,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유명 인사(기업가나 정치가, 유명 연예인...등등)에게, 순간으로부터의 구제자를 대신하여 그 지위에 오른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 니체 - 


드보르가 『스펙타클 사회에 대한 논평들』에서 썼듯이 매체를, 가끔 과도하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때문에 어떤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 - 혹은 최소한 중립적인 - 공공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드보르에게 있어 매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전자메일과 인터넷을 예견하면서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드보르는 "이 사회의 모든 행정업무와 인간들간의 모든 접촉이 이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힘을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면, 이는 이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국가로부터 우리 모두에게로의 일방적인 의사소통이다. 드보르에 따르면, 스펙타클은 대화를 허용치 않을 뿐더러, 바로 대화의 대립물이다. 그것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대한 담화이다.

 

"현대 산업에 의존해 있는 사회는 결코 우연히 혹은 피상적으로만 스펙타클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스펙타클주의적이다. 스펙타클은 지배경제의 이미지이며, 이런 스펙타클 속에서는 목표는 아무 것도 아니고 발전만이 전부이다. 스펙타클은 그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 G.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 중에서.

 

https://youtu.be/CdcZ4NpKK2A

 

 

"그렇게 놔두진 않겠어요.

분노해야 한다구요.

폭동이나 저항운동을 선동하는 건 아닙니다.

정부에 편지를 쓰라는 것도 아닙니다.

전 불황과 경기침체,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건 먼저 여러분이 화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젠장, 난 인간이야!, 내 인생은 가치가 있다구!'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제 일어셔야 합니다.

모두 의자에서 일어서세요.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외쳐요.

'너무 화가 나서 더이상 참을 수 없어!'라고.

 

 

# 위의 대사는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 1976]란 영화에서

방송이 대중을 호도(진실을 외면)하는 모순에 맞서

피터 핀치(하워드 역)가 TV를 끄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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