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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시학]으로 유명한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렇게 말했다..."너무나 명석한 정신은 모든 존재의 배후에서 죽음을 인식하며,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권태'를 느낀다"

 

이탈리아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원작의 영화, 세드릭 칸 감독의 권태 (L'Ennui, 1998)라는 영화가 있다. 남자 주인공인 철학 교수(찌질함의 전형)는 자신의 명석한(?) 정신으로 사랑에 대해 복잡하게 이러쿵저러쿵 여자 주인공에게 떠들어댄다.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여자 주인공은 그저 아무 생각 없는 무뇌아처럼 말을 내뱉는다. 한 남자만 사랑하는 것은 따분하다며 자신의 맘과 몸이 가는대로 이 남자, 저 남자 거리낌 없이 연인관계를 맺는다. 이런 그녀의 행태에 철학 교수는 화가 치민다. 급기야, 그녀에 대해 집착을 보이면서 미행을 하게 되고, 결국 그녀와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우리네 일반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보자. 가끔 저잣거리나 재래시장에서 오랜 시간동안 육체적으로 바쁘게 생활하며, 손님을 기다리며 물건을 파시는 분들을 보면, 저 분들도 삶의 권태를 느낄까, 하는 상념에 젖곤 한다. 각기 삶의 존재 방식들이 다르다 보면, 정신(사념)의 구조나 방식,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권태를 느끼는 면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몸을 움직여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은 권태란 것에 무감각하지 싶다.

 

살아가면서 권태를 종종 느끼는 부류들은 대개 정신적 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일까? 예를 들면, 예술가나 문학관련 종사자, 소위 명석하다고 여겨지는 정신적 소유자들에게서만 보여지는 특수한 증후가 아닐까. 그렇다고 이것(권태)을 일반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권태는 요물이다. 때때로 지독한 권태를 느끼다가도, 삶의 집착도 보이는 걸 보면 권태는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삶을 지탱케하는 묘약일지도 모르겠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LBO_iWVBwQ

 

식자우환이라서 그런 걸까? 이름난 철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을 계몽시키기 위해, 그들이 인간에게 요구한 것은 난해한 넌센스인가? 아님 접근하기 힘든 의문 기호일까? 무언가 직관에 의해 해결해 버리고 말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이 도덕(윤리)적으로 얼마만큼 더욱 바람직하게 될 것인가? 혹은 지혜와 통찰의 문제는? 혹은 일반인들이 그들에게서 느끼는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왜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이 담보하고 있는 모든 의도는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헤밍웨이가 엽총으로 자살한 것은 그의 성정(기질) 때문인가? 삶에서 행복감을 못 느꼈기 때문일까?...암튼 셰익스피어도 이렇게 지껄였던 걸로 안다. 지적인 사람들의 행복은 내가 아는 한, 가장 희귀한 것이다...아니면 훼밍웨이가 나이들어 쾌락적 행동(모험)주의로 맞설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더 이상을 글(창작)을 쓸 수 없다는 권태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름모를 권태라면, 하루하루 육체 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끝없는 노동으로 삶의 권태를 잊으려고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말초적 쾌락으로 삶의 권태를 잊으려고 하는 것일까?

 

나의 우상인 니체는 '권태'에 대해 이렇게 씨불렁거렸다..."가장 섬세하고 교양 있는 두뇌의 소유자들이 지닌 권태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지상이 제공하는 최상의 것도 맛이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가려뽑은 음식과 더욱 정선한 음식만을 먹었기 때문에 조잡한 음식에는 구토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어서 그들은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 더군다나 최상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도 않고, 이따금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이거나 돌처럼 단단한 것이어서 좋은 치아라 할지라도 더 이상 씹어먹을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정말 권태를 강하게 느끼는 것은 사념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 갑자기 오장환의 毒草(독초)의 시구가 떠오른다..."혼란한 삿갓을 뒤집어쓴 가녈핀 버섯은 한자리에 무성히 솟아올라서 사념을 모르는 들쥐의 식욕을 쏘올게한다."...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던 보들레르의 마음도 그의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고'서 실어증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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