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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09.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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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나는 사실 자본론도 안 읽어 본 사람이다. 읽으려 했으나 재미가 없어서 던져두었다. 나는 공산혁명을 이루기 위해 투쟁했으나, 실은 진시황을 꿈꾸었다. 이제 내가 죽고나면, 자본주의자들이 자리잡고 들어설 것이다. 본래 역사는 해와 달처럼 순서대로 돌아온다."

 

마오는 극히 주역의 변화적 사고를 드러내는 중국적 사상관이다. 마오가 손자병법에도 능통했다는 건 그의 '실천론*모순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마오가 자본론을 읽지 않고 내던진 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실 서구(변증법)적 세계관이 관념적이거나 중국적 상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정부주의 이론가인 바쿠닌의 통찰 - 바쿠닌이 바라본 혁명의 성공적 열쇠는 '남국으로부터', 즉 이들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남부유럽, 즉 이탈리아나 에스파냐, 그리고 더 넓게는 라틴 문화권을 가리키면서 남부유럽이나 러시아에서는 공업이 낙후되어 도시 프롤레타리아 세력들이 미약하지만 그만큼 부르조아 자본주의에 오염되지 않았기에, 이들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의 꽃이라고 하면서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아시다피,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두었던 곳은 다름아닌 제정 러시아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중국도 농민이 주축이 되어 공산주의를 이룩하게 되었고, 베트남도 그렇습니다. 쿠바 또한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공산*사회주의 혁명은 상공업이 발달한 곳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당시 바쿠닌이 의미하는 혁명의 주체세력은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주체세력과는 달리 부르조아 문명에 의해서 거의 더럽혀지지 않은 집단적 위치에서 모든 궁핍과 빈곤 속에 미래의 사회주의의 모든 씨앗을 지니고 있는 농민들이나 무산대중에게서 오늘날의 정치 혁명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쿠닌은 마르크스가 경제결정론에 근거하여 노동자의 프롤레타리아를 염두에 둔 것보다 농민, 빈민, 천민을 포함한 무산대중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파악했던 것입니다

바쿠닌의 통찰대로 중국도 농민들을 주축으로 혁명을 완성했다.

 

맑스는 '자본론'을 집필하면서 엥겔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스스로도 지긋지긋하고 다시 들여다보기도 끔찍한 작업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자본론을 읽어보시라. 눈과 머리에서 쥐난다. 설사 읽었다손 치더라도(물론 읽진 않겠지만),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맑시즘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자본론을 실천(실력행사)으로 접목시키는 일이란 더더욱 난해한 작업이다.

 

+

 

생활 정치가 고공의 정치를 이길 수 있다(20년 전 나의 팜플렛)....제가 정치에 눈을 뜬 이후로 마음 속에 간직한 신념은, 생활 정치는 기존의 우위를 선전함 기존 정당의 고공의 정치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좌파생활 정치란 무엇보다 일반 다중에게 감동과 희망,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대다수 일반 민중들은 정치란 염증이나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살아갈 희망을 안겨다 주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그런 가운데 민중들은 신바람 나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들을 진보정당의 문턱으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라고. 그런데 지금의 실정에서 그런 생활정치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진보정치의 전략은 없고, 오로지 고공의 정치만을 펼쳐온 것이 지금의 좌파진보 정치의 실정이라고. 

 

중국 공산당의 초창기에 모택동(마오쩌둥)이 국민당의 장개석에 쫓기며 터득한 것이 그런 생활 정치의 전략(상반상성의 논리)이었다. 모택동은 힘이 미약한 공산당의 팔로군을 이끌고 도망다니면서도, 그 당시 힘없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감동(그들은 농가를 지나갈 때도 자신의 병력을 이용해 그 마을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주거나, 집을 고쳐주거나 했다. 반면에 국민당의 오합지졸들은 수탈을 일삼고 개차반이었다)을 주었다.

 

그렇기에 적은 수의 공산당으로도 썩어빠진 국민당을 본토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왜냐면 모택동의 실천적 생활정치의 효과가 민중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기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민중들에게 고공의 정치로 우롱하기에 앞서 실생활의 정치력이 민초들의 생활 향상에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 무산대중과 직접 몸을 부대끼면서 현실적으로 그들과 소통(현장 노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공의 정치는 민중들의 실생활과 유린된 정책만 남발하며 정치꾼들의 잇속에 따라 이리저리 바람결에 휘둘리는 눈치(유권자들의 심리)를 살피며, 오로지 당선만을 위해 매진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고도의 게임이라는 것은 이런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 제도가 좋다고 해서 인위적인 사회 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정치가 민주적으로 발전(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란 이렇게 일반 민중에게 희망과 감동의 미학을 선사해줄 수 있는 도구로써 어떤 도구보다 뛰어난 과학이며, 좋은 생활 정치가 구현되는 전제 없이 진보정치의 힘은 발휘될 수 없다. 

 

생활정치의 우선 원칙은 일상 생활(노동 속 현장, 즉 먹고사는 문제의 개선책들)에 의해 맞물려 돌아가는 삶 속에 직접 뛰어드는 정치라야 한다. 생활정치의 충격(효과)과 이미지는 실생활과 유린된 고공정치(정치가 일반 민중들에게 동떨어진 행태라고 여기는 냉소적 느낌)를 타파시키고, 정치인과 일반대중 사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신속한 중재자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도로 세련된 좌파생활정치란 감각적이면서도 생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정치 행위가 온갖 추잡한 관념(이것은 실생활 실천을 배제한 좌파적 이론으로만 무장한 좌파 정치꾼이나 미숙한 유권자나 매마찬가지이다)적인 것들로 넘쳐나고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말끔히 해소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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