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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내가 명철한(빛나는 직관과 인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파헤치고 싶다. 근데 그것은 내 능력과 별개로 상대적으로 초월된 그 무엇이었다. 아무리 롤랑 바르트가 젓가락으로 기호의 제국을 해석하더라도 말이다. 

 

베르그송의 글 중에 이런 게 있다..."말은 생각을 배반하고, 문자는 정신을 죽인다."

 

우리는 오로지 말과 문자(언어)를 통해 자신(문명)의 의견과 사유를 타인(비문명)에게 강제(전달)하여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은 생각을 배반하고 문자는 정신을 죽인다는 베르그송 언명의 속 깊은 뜻을 음미해보자면,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상대적으로 발달된 문명(과학과 기술)이 주장(폭력이 강제되거나 강압적인 무력을 행사)하는 말과 문자는 진정한 소통이 아닌 무력으로 변모하기에 강제성을 띠게 되고, 문명이 발전된 쪽의 말과 문자는 받아들이는 쪽의 정신과 생각을 지배한다. 문명(영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이 상대적으로 비문명이라고 간주하면 먼저 문명권 언어를 전파(교육)하고 비문명권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지배하고 파괴했다.

 

또한 롤랑 바르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취임 강연에서 아주 도발적인 언사로 말했다..."언어는 파시스트적인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의 남비크와라 인디어들에게는 문자가 없으며, 이집트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인위적인 기억으로써 공헌했으며, 이는 계몽보다는 착취의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자연에 대한 원시적인 표현들만이 이 착취의 순환적인 대상과 인간을 영원히 이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문명권의 인간이 원시자연(비문명권)을 지배하는 게 바로 지성적인 산물들이다.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이렇게 말한다..."의식은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지성(知性)이다. 의식이라 함은 또는 직관(直觀)이라고도 생각할 것이며, 직관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직관과 지성은 의식적인 작용이 대립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직관은 생명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나 지성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자연(진화)적으로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조절되어 있다. 완전하고 원만한 인간성이란 의식 활동에서 직관과 지성의 형태가 조화되어 발달된 인간성인 것이다. 인간성에 있어서 직관은 분명히 지성에 의해 희생되었다. 물질을 정복하고 자기를 자신 위에 환원시키기 위하여 의식은 그 태반의 합을 소모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직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하고 더불어 단속적이다. 그것은 거의 불이 켜지는 램프와 같은 것이고 긴 세월을 두고 또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지만 그것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체로 직관은 생명적으로 관심이 미치는 곳에서 되살아난다. 우리들의 인격, 우리들의 자유, 우리들이 모든 자연계를 점령하고 있는 위치, 우리(인류)의 기원과, 나아가 우리들의 운명에 있어서 직관은 희미한 빛을 비춰주고 있지만, 결국 그 빛은 지성이 우리들에게서 뺏어버리고 남은 밤의 어둠을 꿰뚫는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직관, 직관의 대상을 때때로 비춰준 것에 불과한 지성, 철학은 이 직관을 내 것으로 유지하고 확장하여 (직관과 지성을) 서로 결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으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밀고 나갈수록 철학은 직관과 정신 그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생명 그 자체의 것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베르그송보다 선대의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설파한다..."기하학(지성)적인 마음은 완만하고 굳어 있으며 꺾기 어렵고, 섬세한 마음(직관)의 정신은 유연한 사상을 갖고, 이것을 여러 사랑스러운 부분에 대하여 동시에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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