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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09.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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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73009

제가 철없던 시절(젊어서 정신적 유랑에 내 삶은 병들어 빗나간 꿈만이 갈 곳 몰라 허허벌판을 헤매던)에 꿈꾸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원양어선에 몸을 싣는 거였습니다. 전역 이후 자의반 타의반 가출하고서, 신문배달로 새벽을 열며, 언젠가는 꼭 원양어선에 몸을 싣고서 5대양 6대륙을 누비며 선원생활을 해 보리라고 굳게 다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동기는 멋진 해양 경험을 바탕으로 저도 허먼 멜빌처럼 모비 딕 같은 소설을 써 보고 싶었던 철 없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같이 신문배달 하시던 분 중에 부산 출신의 총무가 있었는데, 저의 철딱서니 없는 말을 듣고서는 극구 말리셨습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를 토로하며, 제가 생각했던 거(낭만적인 거)랑 생판 다른 게 선원생활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남자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 뱃일이라면서 그거 아무나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남잣일 중에서 가장 막장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목돈을 쥘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라리 그럴 바에 일반 사회에서 직장 잡고도 그 정도의 돈은 벌 수 있다고 하면서 절대로 뱃일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군요. 그러다 고시원에서 정말 새우잡이 통통배에서 생활하다가 50m를 헤엄쳐서 탈출했던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꼭 배를 타고 말겠다는 저의 굳은 의지는 어느 새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경험담을 듣고서 무척 두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정말 뱃일이 낭만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이...더군다나, 그 부산 총무와 고시원 동료는 땅딸하지만 체격이 몹시 좋아보였는 데도 그런 말을 내뱉는 걸 보니까 말입니다. 하기사, 제 체격에 뱃일을 했다가는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할 거 같아 두렵기 그지없었습니다.

 

암튼 바다에서 육지로 내딛지 못한 채 수 개월 동안 배에 갇혀 지내면 아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겁니다. 십여 년 전에 우연찮게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2개월 동안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소일거리가 있었기에, 섬주변을 개들과 산책하며 빈둥대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동물(닭, 토끼, 개)들을 돌보는 것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무료했을까요. 하물며 선원생활이야 오죽할까요. 더군다나 힘든 육체 노동의 연속이라면 말입니다. 문득 생각나는 맑스의 장밋빛 비전("어느 누구도 한 가지만의 배타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나 스스로를 도야시킬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기 때문에 사냥꾼, 어부, 양치기, 혹은 비판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곧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밤에는 비판을 할 수 있게 된다." - 독일 이데올로기 - 에서)이 떠오르네요.

 

맑스의 번뜩이는 과학적 분석의 글을 읽다가, 간혹가다 저런 낭만빛 비전을 읽을 때마다 항상 생각하던 것이 맑스는 유토피아의 부푼 꿈을 영원히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로맨티스트였지 않나 싶습니다. 노동과 여가...여가가 노동의 대가로 돌아오는 일이라면 좋으련만...힘든 노동 뒤에 달콤한 여가라면 얼마나 꿀맛일까요? 육체 노동자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노동자들의 여가는 대부분 유흥과 여행이 대부분이기에 말입니다. 

 

헤밍웨이랑 쌍벽을 이루었던 윌리엄 포크너가 이렇게 말하더군요..."사람이 매일 하루 8시간씩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하루 8시간 동안 당신은 먹을 수 없다. 하루 8시간 동안 당신은 잘 수도 없고, 8시간 동안 사랑을 나눌 수도 없다. 8시간 동안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비참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8시간 이상 할 수 있는 게 고작 일(노동)이라고 말입니다.

 

전문 직종 종사자들에게 노동 뒤의 여가는 늘어가는 형편이지만,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단순 임금 노동자나 육체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뒤에 꿈 같은 고급 여가(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고급 기술직 육체 노동자들은 모르겠지만, 보편적으로 임금 노동자들이 전문 직종의 종사자들에 비해 문화의 혜택을 덜 받고 있는 것은 여전합니다. 그것이 경제적 여건 내지 지적 수준의 차이에 따라 문화를 즐길 여력이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말입니다. 지식과 노동(의 대가의 정당한 이윤분배)의 화해(이것은 단순한 화해 차원을 넘어서)가 이루어져 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요원할 문제일 겁니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을 반추해 보면,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왜곡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경제적 윤택함과 생활적 윤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일상적 삶 속에서 화해*협력 가능성은 전적으로 노동의 상품이 고급 지식을 다루는 희소성의 가치(이를 테면, 법을 다루는 판검사나 변호사,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따라 인간의 부단한 이기적인 욕망에 기대어 있기에, 각자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단자(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입장(고급지식을 다루는 이들은 거진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기에)이나 조건(소수의 지배계급이 대다수의 피지배 계급을 착취하는 구조속)에서 그 모든 투쟁양상이 불평등하게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이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도피처 삼을 유토피아는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https://youtu.be/qVsETSgiM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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