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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11.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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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611439

조르주 상드 같은 여성이 미러링의 대표적 여성이다.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미러링으로 밀고 나가면, 결국에 남녀 간에 대립과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그럼 어떠한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고 역효과만 발생한다. 또한 남성의 여성화야말로 호모포비아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인데, 오히려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강한 남성(마초)성을 닮아 있거나 갈망한다는 게 비극이다.

 

조르주 상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쇼팽의 애인으로 유명하지만 알프레드 뮈세로 하여금 <회상>이라는 이별의 절창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이었습니다.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전에 근 40년 간의 문필생활 동안 70편의 소설과 24편의 희곡, 그리고 4만 통에 달하는 편지들을 썼다고 합니다. 큭, 4만통이라면 정말 놀라운 숫자의 편지를 썼군요. 물론 연애편지가 대부분이었겠죠.

 

오늘날 그녀의 작품은 거의 읽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녀가 유명한 것은 쇼팽, 뮈세 등을 비롯한 시인, 음악가, 예술가, 사상가들과의 파란만장한 연애 사건들이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연하의 애인들을 거느린 여자였고, 그 중성적이면서도 요부적인 이미지와 결부되어 색정증과 동성애의 혐의마저 따라붙곤 했습니다. 

 

조르주 상드가 대단한 이유는 매년 2편 이상의 작품과 1천 통의 편지를 쓰고 끊임없이 다른 남성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애인들을 돌보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정원일에 열을 올리면서도 사소한 가정일까지 다 해내는, 엄청난 에너자이저였습니다. 물론 이런 조르주 상드의 능력이 그때 당시는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냉소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의 현대적 여성들 입장에서 보면 상드가 시대를 앞서간 여성해방 운동과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칭송받을 만한 여성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필명 또한 남자이름(조르주)을 본따 지은 걸 보면, 대단히 강단과 용단이 있었던 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드는 이혼 후, 아이 둘을 데리고 파리로 올라와 문필활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남장을 하고 다니며, 여러 남자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고, 연하의 꽃미남(그녀는 금발미남의 취향이었다고 합니다)들과 숱한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소문난 바람둥이였습니다. 10년을 함께 보낸 쇼팽도 그런 그녀의 인상에 대해서 단호히 꼴볼견이이라고 한 걸 보면 상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니체의 잠언(선악을 넘어서)을 읽다가, 조르주 상드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길래 유심히 읽어보았는데, 니체 또한 상드를 아주 경멸조로 깎아내리더군요. 그 잠언 속에는 살롱문학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스탈 부인도 함께 도매금으로 씹힙니다. 그 글을 잠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여자가 여자의 본질을 보여주는 데 뭔가 유리한 증거라도 될까 해서 스탈 부인, 조르쥬 상드 씨의 예를 끌어댄다면, 그것은 여성의 악취미를 드러내게 된다는 점을 그만 두고서라도 기껏해야 타락한 여성적 본능의 예를 드러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들이 보기에 이 세상 여자들은 희극적인 여성 그 자체이며,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 해방과 여성 독재에 대한 최상의 반대 논거가 된다."

 

아마 니체가 이런 글을 쓴 이유가 조르주 상드의 그런 연애 사건들의 일화들이 유럽의 식자층들에게 널리 퍼졌었기에 가능했지 않나 싶습니다. 근데, 왜 니체가 그런 언급을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드와 니체의 나이 차는 30년입니다. 니체가 활발히 문필 활동을 펼치고 있을 때도 상드는 생존하고 있었는데, 간간히 니체의 귀에도 조르주 상드의 연애 사건들이 귓속에 들어왔나 봅니다. 니체가 루 살로메를 극찬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왜 유독 상드를 그렇게 경멸조로 깎아내렸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성도 카사노바가 되지 말란 법은 없잖습니까?

 

하여튼 조르주 상드가 그 당시 뭇남성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는 건만은 부정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뮈세 또한 그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아팠기에, 그렇게 구구절절히 <회상>이라는 시로 표현했을까요. 더군다나 조르주 상드가 병에 걸린 뮈세를 간호하는 동안 뮈세의 주치의였던 파젤로라는 젊은 의사와 애정행각을 벌였는 데도 말입니다. 그것에 충격을 먹은 뮈세는 절망과 질투에 사로잡힌 채, 한 때는 목숨까지 끊을려고 했으니, 정말 조르주 상드가 요부긴 요부였나 봅니다.

 

그럼 우리 알프레드 뮈세의 '회상'을 감상해 보시면서, 상드와 뮈세가 한때 열렬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밀월을 속삭였던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 속, 그 밀애의 현장을 몰래 들여다볼까요.

 

https://youtu.be/HyLgtjX_J0s


    *회상

                  - 뮈세 -


   보면 눈물이 흐를 것을 알면서 나는 여기 왔노니.

   영원히 성스러운 장소여, 괴로움을 각오했는 데도

   오오, 더할 나위 없이 그립고 또한 은밀하게

   회상을 자아내는 그리운 곳이여!

   그대들은 왜 이 고독을 만류했는가

   친구들이여, 왜 내 손을 잡으며 만류했는가

   정겨운 오랜 습관이 이 길을 가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때에.

   여기였다, 이 언덕, 이 꽃 피는 히드의 풀밭

   말없는 모래밭에 남아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발자취

   사랑어린 오솔길, 속삭임이 넘쳤고 그녀의 팔은

   힘껏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여기였다. 이 초록빛 잎사귀 우거진 떡갈나무숲,

   굽이굽이 굽이쳐 있는 이 깊은 협곡

   이 야생의 친구들. 옛날 그들의 속삭임에

   마음 하느작이던 아름다운 나날.

   여기였다, 이 숲 속, 지금도 걸으면 청춘은

   발자국소리 따라 한 떼의 새처럼 계속 노래한다.

   매혹의 땅이여, 아름다운 황야, 연인들의 산책길이여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아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아직 상처 고쳐지지 않은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이 눈물!

   사정보지 말고 그대로 멈추게 하라, 나의 눈에

   옛날을 숨겨주는 이 너울!

   내 행복을 지켜보는 이 숲의 메아리 속에

   애석한 마음을 외쳐 온 것은 아니다.

   아름답게도 고요히 있는 이 숲이 자랑스러울 때

   내 마음 역시 자랑스러운 것이다.

   견디기 힘든 슬픔에 몸과 마음을 맡길지니

   친구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 원래 이 시는 더 길게 이어지는 데 여기까지 감상하시고 여러분들이 직접 뮈세의 '회상'의 전시를 찾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회상하니까 간만에 김성호의 회상도 곁들여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잇싸인들도 이 음악을 들으시며 옛 애인과의 애뜻했던 이별을 추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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