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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11.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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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449016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앞서 예고한대로 세계 각 나라의 이름의 어원과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을 작성해보겠습니다.

 

각 대륙 별로 권역을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2) 유럽: 서유럽, 중부유럽, 북유럽, 남유럽, 동유럽
(3)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4)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남아메리카
(5) 오세아니아: 오스트랄라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번외: 미승인국가

 

이번 글에서는 서아프리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표기명 / 원어명 / 제안 표기명입니다.

 

서아프리카.png

1)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연방 공화국 / Nigeria, Federal Republic of Nigeria (영어) /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연방 공화국

나이지리아.png

 

-->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 기니의 고원 지대에서 발원하여 말리와 니제르를 거쳐 나이지리아를 통해 기니 만으로 흐르는 '나이저/니제르 강 (Niger River)'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영국 식민 지배 시절 나이지리아 총독이었던 프레데릭 루가드 (Frederick Lugard)의 아내 플로라 쇼 (Flora Shaw)가 붙인 이름입니다. 한편 나이저/니제르 강의 이름은 투아레그인 (Tuareg people)이 이 강을 '큰 강들'이라는 뜻의 'egerew n-igerewen'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지리아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 있었기 때문에 지중해 문명권과의 접촉이 늦어 문명 발달이 늦었습니다. 중세-근세에 북부에는 하우사족 (Hausa)의 소규모 국가들이, 남부에는 요루바족 (Yoruba)의 소규모 국가들이 번영하였습니다. 이후 19세기에는 소코토 칼리파국 (Sokoto Caliphate)이 하우사족 국가들을 통일했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점차 밀려오면서 영국은 나이지리아 전역을, 프랑스는 니제르 전역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영국 식민 지배 하에 있던 나이지리아는 1960년 나이지리아 연방으로 독립하였다가, 1963년 개헌을 통해 나이지리아 연방 공화국으로 전환됩니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거주하는데, 북부의 하우사족, 남동부의 이그보족 (Igbo), 서부의 요루바족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은 이들을 이간질하여 식민 지배에 활용했고, 그 결과 독립 직후부터 나이지리아는 내전에 시달리게 됩니다. 가장 심했던 것은 비아프라 전쟁 (Biafra War)으로 하우사족과 이그보족의 갈등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우사족 출신 야쿠부 고원 (Yakubu Gowon)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기존의 4개 주를 12개 주로 쪼개어 지방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에 이그보족 출신 추쿠에메카 오두메구 오주쿠 (Chukwuemeka Odumegwu Ojukwu)가 반발하여 동부 지역을 떼어 '비아프라 공화국 (Republic of Biafra)'을 선포하여 전쟁이 발발합니다. 비아프라 공화국은 초기에는 공세로 나섰지만 3년 만에 나이지리아 정부군에게 패망합니다. 그러나 비아프라 공화국이 패망한 후에도 쿠데타를 비롯한 정치 혼란이 이어졌고, 1999년에야 군사 정권의 민정 이양으로 민선 정부가 회복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나이지리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보코 하람 (Boko Haram)이 날뛰고 있어 치안이 영 좋지 않습니다.

 

 

2) 니제르: 니제르, 니제르 공화국 / Niger, République du Niger (프랑스어) / 니제르, 니제르 공화국

니제르.png

 

--> '니제르'는 서아프리카 기니의 고원 지대에서 발원하여 말리와 니제르를 거쳐 나이지리아를 통해 기니 만으로 흐르는 '나이저/니제르 강 (Niger River)'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아서 Niger의 프랑스어 발음인 '니제르'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나이저/니제르 강의 이름은 투아레그인 (Tuareg people)이 이 강을 '큰 강들'이라는 뜻의 'egerew n-igerewen'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은 국토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로였습니다. 송가이 제국 (Songhai Empire), 말리 제국 (Mali Empire), 가오 제국 (Gao Empire), 카넴-보르누 제국 (Kanem–Bornu Empire)과 하우사족 (Hausa) 국가들이 니제르를 조금씩 지배해왔습니다. 이후 19세기에는 소코토 칼리파국 (دولة الخلافة في بلاد السودان (Daular Khalifar Sakkwato al-Khilāfat fi'l-Bilād as-Sūdān))이 하우사족 국가들을 통일했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점차 밀려오면서 영국은 나이지리아 전역을, 프랑스는 니제르 전역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프랑스 식민 지배 하에 있던 니제르는 1960년 독립합니다.

 

니제르는 독립 이후 쿠데타, 부정 선거 논란, 가뭄으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보코 하람 (Boko Haram)이 날뛰고 있어 치안이 영 좋지 않습니다.

 

 

3) 말리: 말리, 말리 공화국 / Mali, République du Mali (프랑스어) / 말리, 말리 공화국

말리.png

 

--> '말리'는 중세 서아프리카에 있던 말리 제국 (Mali Empire)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말리의 역사는 와가두 제국 (Wagadou Empire, '가나 제국'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의 가나 공화국과는 별 관련 없습니다.)으로부터 시작하는데 황금이 많이 났고 무역으로 번창했습니다. 와가두 제국은 이슬람 세력의 공격과 사막화로 인해 쇠퇴하고, 말리 제국이 말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말리 제국은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농업과 상업이 모두 번창하였습니다. 이 시기 만사 무사 (Mansa Musa)라는 황제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순례하면서 황금을 엄청나게 뿌려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말리 제국은 내란으로 무너지고, 이후 송가이 제국 (Songhai Empire), 바마나 제국 (Bamana Empire), 마시나 제국 (Masina Empire), 투쿨로르 제국 (Toucouleur Empire)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지역에는 18세기에 최악의 기근이 이어져 쇠퇴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됩니다.

 

말리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산업 국유화와 집단 농장을 실시했으나 처절하게 망했고, 1968년 무사 트라오레 (Moussa Traoré)가 일으킨 쿠데타 이후 1991년까지 독재 정치가 이어집니다. 이후 1992년 말리는 민주화되었지만, 북동부에서 독립을 원하는 투아레그인 (Tuareg people)과의 분쟁, 중부 지방의 풀라족 (Fula)과 밤바라족 (Bambara)의 갈등 등이 있었고, 결국 2012년, 2020년, 2021년 연이어 쿠데타가 터지면서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 모리타니: 모리타니,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 / موريتانيا (Mūrītānyā), الجمهورية الإسلامية الموريتانية (al-Jumhūrīyah al-Islāmīyah al-Mūrītānīyah) (아랍어); Mauritanie, République islamique de Mauritanie (프랑스어) / 무리타니야, 무리타니야 이슬람 공화국

모리타니.png

 

--> '모리타니'는 고대 베르베르인들의 왕국이자 이후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마우레타니아 (Mauretania)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다만 '마우레타니아'는 현재의 모리타니보다 북쪽에 있었고, 현재의 모로코 및 알제리 북부 해안이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원래 베르베르인, 니제르-콩고인, 그리고 바푸르인 (Bafour)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리타니는 7세기 경 이슬람 제국의 침입으로 이슬람화가 진행됩니다. 이후 19세기부터 프랑스가 침입하면서 1920년까지 모리타니 전역이 프랑스의 지배 하에 들어오게 됩니다. 

 

모리타니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독재자 모크타르 울드 다다 (مختار ولد داداه (Mukhtār Wald Dāddāh))는 모리타니를 일당제 독재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모크타르 울드 다다는 모로코와의 서사하라 분쟁에서 패배하고, 경제 정책도 실패하여 1978년 쿠데타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후 1979년, 1984년에 연이어 쿠데타가 일어났고, 1984년에는 마우야 울드 시드 아흐메드 타야 (معاوية ولد سيد أحمد الطايع (Ma‘āwiyah wuld Sīdi Aḥmad aṭ-Ṭāya‘))가 정권을 장악하여 21년간 독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5년, 2008년 쿠데타가 또 일어나고, 2009년에야 제대로 된 선거가 치뤄집니다. 이후 2017년에는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고, 국기를 바꾸는 개헌을 하고, 2019년에는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됩니다. 

 

모리타니는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이름답게 국교가 이슬람인데, 다른 종교로의 개종과 배교를 엄격히 금지하여 3일 간의 회개 기회를 주고 이슬람으로의 회귀를 거부하면 처형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슬람은 신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고 가르치는데, 모리타니에는 아직까지도 노예 제도가 뿌리깊게 남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15만명 정도가 노예 상태에 있습니다.

 

아랍어 발음으로는 '무리타니야'에 가깝기 때문에, '무리타니야' 내지는 '무리타니야 이슬람 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입니다.

 

 

5) 부르키나파소: 부르키나파소 / Burkina Faso (프랑스어) / 뷔르키나 파소

부르키나파소.png

 

--> 이 지역에는 모시족 (Mossi), 풀라족 (Fula), 디울라족 (Dioula) 등 다양한 부족이 살았고, 모시족이 11세기 무렵 모시 왕국을 세웠습니다. 모시 왕국은 아랍과 베르베르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19세기까지 존재했지만 프랑스의 침략으로 멸망합니다.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에는 이 지역이 볼타 강 (Volta) 상류에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어로 '볼타 강 상류'라는 의미의 오트-볼타 (Haute-Volta)라는 명칭이 붙었고, 1960년에 '오트-볼타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오트-볼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모리스 야메오고 (Maurice Yaméogo)가 집권했으나 독재하면서도 경제 성장이 미약하여 쿠데타가 연이어 일어납니다.

 

연이은 쿠데타 끝에 1983년 토마 상카라 (Thomas Sankara)와 그의 동료 블레즈 콩파오레 (Blaise Compaoré)는 프랑스 식민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개혁 정책을 폅니다. 나라 이름도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 이름인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 파소'로 바꾸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이 나라에서 쓰이는 모시어 (Mossi)로 "정직한"이라는 뜻의 "Burkina"와 디울라어 (Dioula)로 "나라"를 뜻하는 "Faso"를 합쳐 만든 조어로,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 됩니다. 토마 상카라의 개혁 정책 중에는 행정 개혁으로 전국을 30개 자치구로 나눠 주민들이 나서서 관리하게 하는 '자주관리정책', 토지 재분배 정책, 사회 기반 시설 확충, 여성 인권 신장 (할례 및 일부다처제 금지), 녹화 산업 등이 있었습니다. 토마 상카라의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부족 갈등도 사라지고, 농업 생산량도 급증하여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토마 상카라의 사회주의 정책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의 사주로 토마 상카라의 동료였던 블레즈 콩파오레가 1987년 쿠데타를 다시 일으켜 토마 상카라를 살해하고 독재를 시행합니다. 블레즈 콩파오레는 토마 상카라의 정책을 상당 부분 후퇴시켜 부르키나파소를 나락에 빠트렸고, 2014년까지 장기 집권하다가 역시 쿠데타로 쫓겨납니다. 이후 2015년, 2022년 (1월 및 9월)에 연이어 쿠데타가 일어나고, 오랜 독재와 빈부격차, 테러와 시위로 인해 부르키나파소는 현재 아프리카에서도 가난한 국가입니다.

 

프랑스어로는 '뷔르키나 파소'에 가깝기 때문에, '뷔르키나 파소'라고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6)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공화국 / Côte d'Ivoire, République de Côte d'Ivoire (프랑스어) /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공화국

코트디부아르.png

 

-->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로 '상아의 (d'Ivorie) 해안 (Côte)'을 뜻합니다. 과거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한 코리끼의 엄니, 즉 상아를 유럽으로 반출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영어로는 아이보리 코스트 (Ivory Coast)라고도 하지만,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1986년 세계 각국에 '코트디부아르'를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사용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전 5개의 중요한 국가가 번영했습니다: 콩 제국 (Kong Empire), 갸만 왕국 (Gyaman Kingdom), 바울레 왕국 (Baoulé Kingdom), 인데니예 왕국 (Indénié Kingdom) 및 산위 왕국 (Sanwi Kingdom). 그러나 19세기 말 프랑스의 침략으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됩니다. 코트디부아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고, 초대 대통령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Félix Houphouët-Boigny)가 집권합니다. 펠릭스 우푸에바니는 독재자였지만, 농산물 수출 (주로 카카오)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1978년까지는 코트디부아르가 아프리카에서 꽤 경제 규모가 컸습니다. 코트디부아르가 잘 나갈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받아들였고 먹거리도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1978년부터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고, 유가가 폭등하면서 세수가 줄어듭니다. 농산물 수출을 통해 번 돈으로 산업화를 진행하겠다고 무리하게 외채를 빌려 투자한 탓에 경제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또한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추방 움직임이 일어나 많은 외국인들이 쫓겨나거나 구타/살해됩니다.

 

코트디부아르를 33년간 통치하던 펠릭스 우푸에바니가 1993년 사망한 뒤, 앙리 코낭 베디에 (Henri Konan Bédié)가 뒤를 잇습니다. 그러나 1999년 쿠데타가 발생하여 로베르 게이 (Robert Guéï) 장군이 집권합니다. 이후 2000년에 대선이 치뤄지는데 로베르 게이와 로랑 그바그보 (Laurent Gbagbo) 후보가 맞붙었고, 개표하던 중 군인들이 로베르 게이를 당선자로 선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민중 봉기가 발생하여 로베르 게이는 쫓겨나고, 로랑 그바그보가 대통령이 됩니다. 로베르 게이는 2002년에 북부에서 반란을 일으켜 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 (2002-2007)이 일어납니다. 내전 중에 코트디부아르는 월드컵 본선에 사상 최초로 진출하는데, 이때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 첼시 FC의 전설 그 분 맞습니다.)가 휴전을 호소하여 1주일 간 총성이 울리지 않습니다. 이후 2007년 평화 협정을 통해 1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이 종결됩니다. 그러나 2010년 치뤄진 대선에서 로랑 그바그보 후보와 알라산 우아타라 (Alassane Ouattara) 후보가 맞붙었는데, 북부의 지지를 받는 알라산 와타라 후보가 승리하였지만 로랑 그바그보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두 후보 모두 대통령에 취임하는 막장 사태가 일어나고, 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 (2010-2011)이 일어납니다. 이 내전에서는 알라산 우아타라가 승리하였고, 경제적으로 고도 성장을 이룩하여 2015년에 재선됩니다. 다만 알라산 우아타라는 2020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아마두 공 쿨리발리 (Amadou Gon Coulibaly) 총리를 여당 후보로서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두 공 쿨리발리가 급사하는 바람에 알라산 우아타라가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7) 가나: 가나, 가나 공화국 / Ghana, Republic of Ghana (영어) / 가나, 가나 공화국

가나.png

 

--> '가나'는 소닝케어 (Soninke)로 '전사 왕 (Warrior King)'이라는 뜻으로, '가나 제국'으로도 알려진 와가두 제국 (Wagadou Empire)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호칭으로도 쓰인 바 있습니다. 와가두 제국 (가나 제국)은 현재의 가나 공화국보다는 말리 공화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나'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영내에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게 되어 특정 민족을 표현하는 이름을 쓰기 어려워졌고, 범아프리카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프리카인의 자긍심을 돋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국가는 11세기에 아칸족 (Akans)의 일파인 보노족 (Bono people)이 세운 보노만 (Bonoman)입니다. 이후 북부에는 다곰바족 (Dagombas)이 세운 다그본 왕국 (Kingdom of Dagbon)이, 남부에는 아칸족의 일파인 아샨티족 (Ashantis)이 세운 아샨티 제국 (Ashanti Empire)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칸족은 15세기부터 유럽인들과 교역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가나는 '황금 해안 (Gold Coast)'라고 할 정도로 황금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칸족과 교역한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스웨덴인, 덴마크인, 영국인 등 다양했고 이들은 모두 황금 해안에 거점을 세웠고, 황금 및 노예 교역을 하였습니다. 이후 아샨티 제국은 19세기 초반부터 영국과 전쟁을 100여년 간 벌인 끝에 패배하여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고, 영국령 황금 해안 (British Gold Coast)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다그본 왕국은 1888년 영국과 독일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되었고, 각각 영국령 황금 해안과 독일령 토골란드의 일부가 됩니다. 이후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령 토골란드를 동서로 분할하여 통치하게 됩니다. (각각 프랑스령 토골랑과 영국령 토골란드).

 

가나는 1957년 영국령 황금 해안, 아샨티, 북부 지역, 영국령 토골란드가 연합하여 '가나 자치령'이라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다가, 1960년 가나 공화국으로 전환됩니다. 가나의 초대 대통령으로 콰메 은크루마 (Kwame Nkrumah)가 당선되었지만, 1966년 중국을 방문한 사이 벌어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됩니다. 쿠데타 이후 가나에는 군정과 민정이 번갈아가며 나타났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했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에는 공군 대위 제리 존 롤링스 (Jerry John Rawlings)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정당을 금지하였으나, 구조 조정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합니다. 이후 1992년 다당제 정치를 복원하는 새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제리 존 롤링스가 새 헌법에 따라 재선하지만, 2000년에 3선 출마 금지를 지켜 정계 은퇴합니다. 이후 가나는 선거를 통한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언론 자유도 보장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8) 토고: 토고, 토고 공화국 / Togo, République togolaise (프랑스어) / 토고, 토고 공화국

토고.png

 

--> '토고'는 에웨어 (Ewe)로 '큰 강 너머'를 의미하는 'Togodo'에서 유래합니다. 실제로 토고는 인접 국가들인 베냉 및 가나와 각각 모노강 (Mono River) 및 오티강 (Oti River)을 경계로 접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에웨족 (Ewe)을 비롯한 여러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15세기부터 유럽인들이 도착합니다. 토고, 베냉, 나이지리아 서부 연안 지대는 '노예 해안 (Slave Coast)'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19세기까지 노예 무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후 독일 제국은 이 지역에 토골란드 (Togoland)라는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하면서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령 토골란드를 동서로 분할하여 통치하게 됩니다. 영국령 토골란드는 영국령 황금해안과 합병하여 가나로 독립하였고, 프랑스령 토골란드가 1960년 독립하여 토고가 됩니다.

 

토고는 독립 이후 실바뉘 올랭피오 (Sylvanus Olympio)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반대파를 탄압하여 1963년 쿠데타로 축출됩니다. 이후 1967년 냐싱베 에야데마 (Gnassingbé Eyadéma)가 쿠데타로 집권한 뒤 일당 독재를 벌여 2005년 사망할 때까지 토고를 통치합니다. 냐상베 에야데마는 죽었지만 군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아들인 포르 냐싱베 (Faure Gnassingbé)가 뒤를 잇습니다. 포르 냐싱베는 취임 후 야당의 정치 활동 확대, 반정부 인사 석방 등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2005년, 2010년, 2015년, 2020년 이렇게 4번 연속 당선되면서 장기 집권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토고의 김정은

 

 

9) 베냉: 베냉, 베냉 공화국 / Bénin, République du Bénin (프랑스어) / 베냉, 베냉 공화국

베냉.png

 

--> '베냉'은 고대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베네족 (Beneh)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이 지역에는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17세기에 퐁족 (Fon people)이 다호메이 왕국 (Kingdom of Dahomey)을 세웁니다. 다호메이 왕국은 18세기에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으며, 특유의 여군 부대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다호메이 왕국은 1894년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하여 프랑스의 지배 하에 들어옵니다. 

 

베냉은 1960년 다호메이 공화국 (République du Dahomey)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이후 1972년에는 마티외 케레쿠 (Mathieu Kérékou)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다음, 1974년 마르크스 주의자임을 선언하여 석유 산업과 은행들을 국유화하고, 1975년 나라 이름을 '베냉 인민 공화국 (République populaire du Bénin)'으로 바꿉니다. 베냉 인민 공화국은 냉전 종식과 함께 1990년 베냉 공화국으로 전환되고 오늘날에 이릅니다. 마티외 케레쿠는 1991년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기도 하지만, 1996년과 2001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냉의 민주주의 수준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10) 세네갈: 세네갈, 세네갈 공화국 / Sénégal, République du Sénégal (프랑스어) / 세네갈, 세네갈 공화국

세네갈.png

 

--> '세네갈'은 이 나라 북부에 흐르는 세네갈 강 (نهر السنغال (Nahr As-sinigāl); Fleuve Sénégal)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세네갈의 최초의 가톨릭 신부 중 한 명인 다비 부아라 (David Boilat) 신부가 1853년에 주장한 바에 따르면, 포르투갈 항해사가 월로프족 (Wolof) 어부들을 만나 강 이름을 물어봤을 때, 어부들은 강이 아니라 배가 누구 것인지 묻는 줄 알고 '이건 우리의 카누다 (sunu gaal)'라고 한 것이 와전되어 강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세네갈 강 북쪽에 살았던 베르베르족의 일파 제나가족 (Zenaga)을 가리키는 포르투갈어 'Azenegu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설로는 세레르어 (Serer)로 최고의 신을 가리키는 'Sene'와 물을 가리키는 'o gal'이 조합된 표현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9세기 경 타크루르 왕국 (Takrur)이 들어섰고, 13-14세기에는 졸로프 제국 (Jolof Empire)이 수립되었습니다. 또한 마그레브의 무라비트 왕조와 접촉한 투쿨로르족 (Toucouleurs)와 소닝케족 (Soninke)을 통해 이슬람이 전래됩니다. 유럽인들은 세네갈에 15세기부터 유입되기 시작했고, 프랑스는 17세기에 노예 무역의 거점인 고레섬 (Île de Gorée)을 확보한 이래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19세기에는 세네갈을 완전히 지배하게 됩니다. 

 

세네갈은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고,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Léopold Sédar Senghor)가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는 일당제 독재 체제를 유지하다가 1976년 다당제를 도입하였고, 1980년에 은퇴합니다. 이후 세네갈은 감비아와 함께 세네감비아 연방을 1982년 결성하지만, 세네갈은 프랑스어권, 감비아는 영어권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고, 1989년 세네감비아 연방은 해산됩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를 이은 압두 디우프 (Abdou Diouf)는 1981년부터 2000년까지 집권하였고,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여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일어납니다. 이후 세네갈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독립 이후 쿠데타가 없었습니다.

 

 

11) 감비아: 감비아, 감비아 공화국 / The Gambia, Republic of The Gambia (영어) / 감비아, 감비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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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비아'는 이 나라를 관통하여 흐르는 '감비아 강'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유럽인으로서는 포르투갈인들이 최초로 감비아 강을 탐험하고 주민들과 접촉하여 교역하였고, 포르투갈어로 '교역'을 뜻하는 'cambio'라는 명칭이 감비아 강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 유럽인이 도래하기 전에는 말리 제국 (Mali Empire)과 송가이 제국 (Songhai Empire)이 감비아를 지배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소규모 정착촌을 건설했고 송가이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감비아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지역을 놓고 경쟁하였고, 최종적으로 세네갈은 프랑스가, 감비아는 영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세네갈과 감비아는 원래 졸로프 제국 (Jolof Empire) 치하에 있었지만 식민지 쟁탈전에서 갈라진 것입니다.

 

감비아는 1965년 영연방 왕국의 형태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1970년에는 공화국으로 전환되고, 다우다 자와라 (Dawda Jawara)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다우다 자와라는 1981년 쿠데타로 축출당할 뻔했으나 세네갈의 개입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1982년에는 세네갈과 함께 세네감비아 연방을 1982년 결성하지만, 세네갈은 프랑스어권, 감비아는 영어권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고, 1989년 세네감비아 연방은 해산됩니다. 다우다 자와라는 장기 집권을 하면서 부정 부패를 저질러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994년 야히아 자메 (Yahya Jammeh)의 쿠데타로 축출됩니다. 

 

야히아 자메는 장기 집권하면서 2013년에는 영연방을 탈퇴하고, 2015년에 공식 국호를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꿉니다. 다만 이슬람을 강요하지는 않아서 실질적으로 세속 국가였습니다. 야히아 자메는 연속 4선으로 대통령을 역임한 뒤, 5선에 도전하였으나 아다마 바로우 (Adama Barrow) 후보에게 패배합니다. 야히아 자메는 선거 결과에 불복했지만 주변 국가들의 압력으로 결국 망명합니다. 이후 감비아는 2017년에 공식 국호를 '감비아 공화국'으로 복원하고, 2018년에는 영연방에 다시 가입하였습니다.

 

 

12) 기니: 기니, 기니 공화국 / Guinée, République de Guinée (프랑스어) / 기네, 기네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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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니'라는 명칭은 포르투갈어 단어 'Guiné'에서 유래하는데, 'Guiné'는 세네갈 강 남쪽에 거주하는 흑인들을 총칭하던 'Gunieus'가 거주하는 땅을 지칭하기 위해 15세기 포르투갈어에 등장한 단어로, '흑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지역은 말리 제국 (Mali Empire) 및 송가이 제국 (Songhai Empire) 등 서아프리카 주요 제국들의 일부였습니다. 이후 13세기부터 아랍인들에 의한 노예 무역이 번창하였고,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거점을 마련하면서 노예 무역은 19세기까지 이어집니다. 근세에 들어 프랑스가 침입하면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됩니다.

 

기니는 1958년 프랑스에서 독립하였는데, 프랑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식민지 시절 건설했던 사회 기반 시설을 모두 부수고 철수합니다. 기니가 독립한 뒤 아메드 세쿠 투레 (Ahmed Sékou Touré)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그는 소련과 우호 정책을 펴면서도 미국의 원조와 투자를 받고, 일당 독재를 하면서 반대파를 탄압합니다. 아메드 세쿠 투레는 이후 1984년 심장 수술을 받고 사망했고, 란사나 콩테 (Lansana Conté) 대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하여 2008년까지 독재를 단행합니다. 이후 무사 다디스 카마라 (Moussa Dadis Camara) 대위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어 2010년에 민정으로 이양합니다. 민정 이양 후 야당 지도자였던 알파 콩데 (Alpha Condé)가 2010년, 2015년, 2020년 연이어 당선되어 3선 대통령이 되었는데, 특수부대가 2021년 일으킨 쿠데타로 축출됩니다. 

 

프랑스어로는 '기네'에 가깝기 때문에 '기네' 내지는 '기네 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13) 기니비사우: 기니비사우, 기니비사우 공화국 / Guiné-Bissau, República da Guiné-Bissau (포르투갈어) / 기네비사우, 기네비사우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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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니비사우'는 '흑인들의 땅'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Guiné'와 이 나라의 수도인 'Bissau'를 합쳐서 만든 말입니다.

 

이 지역은 16세기 말리 제국 (Mali Empire)의 일부인 카부 왕국 (Kingdom of Kaabu)의 일부였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이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여 노예 무역을 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하에서 아밀카르 카브랄 (Amílcar Cabral)은 '기니와 카보베르데 독립을 위한 아프리카당 (Partido Africano para a Independência da Guiné e Cabo Verde, PAIGC)'를 이끌고 소련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령이었던 기니비사우와 카보베르데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아밀카르 카브랄은 1973년 암살되지만,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1974)에 힘입어 기니비사우는 1974년 독립합니다. 기니바사우는 독립운동을 같이 했던 카보베르데와 통합하려 했으나 입장 차이로 통합하지 못합니다.

 

기니비사우의 초대 대통령은 아밀카르 카브랄의 이복 동생인 루이스 카브랄 (Luís Cabral)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1980년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João Bernardo Vieira)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사정은 나빴고, 1998년에는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정권에 불만을 가진 안수마느 마네 (Ansumane Mané) 준장의 반란으로 기니비사우 내전이 발발합니다. 기니비사우 내전은 1999년 종결되고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는 퇴진하며, 2000년에 선거가 치뤄집니다. 그러나 이후 2003년, 2012년 연이어 쿠데타가 일어났고 2022년에는 쿠데타 시도도 있느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입니다.

 

포르투갈어로는 '기네비사우'에 가깝기 때문에, '기네비사우' 내지는 '기네비사우 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14)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 공화국 / Liberia, Republic of Liberia (영어) /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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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역에는 12세기-16세기 사이에 동부와 북부에서 이주가 이뤄져서 원주민들이 거주하였습니다.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여 후추가 많이 난다는 점을 들어 '후추 해안 (Costa da Pimenta; Pepper Coast)'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교역소를 세우기도 했으나 제대로 정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흑인 노예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1821년 미국 식민 협회 (American Colonization Society, ACS)의 주도로 해방 노예들을 라이베리아에 정착시킵니다. 미국령 라이베리아 식민지는 1847년 독립하여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인 라이베리아 공화국이 됩니다. '라이베리아'는 영어로 자유를 뜻하는 'Liberty'에 국가를 뜻하는 접미사 -ia가 붙어 '자유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라이베리아는 독립한 이래 미국에서 건너온 흑인 식민지 개척자들과 그 후손들이 지배하였습니다. 이들은 해방 노예 출신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스스로를 토착 원주민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모순되게도 토착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기도 했습니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과 토착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 1980년 하사관들의 쿠데타가 일어나 토착 원주민의 일파인 크란족 (Krahn people) 출신의 새뮤얼 케니언 도 (Samuel Kanyon Doe)가 대통령으로 집권하여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을 학살합니다. 새뮤얼 케니언 도는 독재를 펼쳐 1985년 부정 선거로 당선되었고, 이에 토착 원주민계인 기오족 (Gio)과 마노족 (Mano)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학살합니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은 기오족 및 마노족과 규합하여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를 중심으로 라이베리아 국민 애국 전선 (National Patriotic Front of Liberia, NPFL)을 결성하여 1차 라이베리아 내전을 일으킵니다. 이후 NPFL 내부에서 친미파였던 프린스 존슨 (Prince Johnson)이 NPFL을 이탈하여 라이베리아 독립 국민 애국 전선 (Independent National Patriotic Front of Liberia, INPFL)을 결성하고, 새뮤얼 케니언 도를 포획하여 고문 끝에 살해합니다. 이후 수도 몬로비아를 중심으로 아모스 소여 (Amos Sawyer)가 국민 통합 임시 정부 (Interim Government of National Unity, IGNU)을 결성하였고 NPFL, INPFL, IGNU간 삼파전이 벌어집니다. 마침내 1996년 평화 협정이 이뤄져서 1차 라이베리아 내전은 종결됩니다.

 

찰스 테일러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지면 다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공갈 협박을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는 이웃 국가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기 위해서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하여 전쟁 범죄를 저지릅니다. 결국 라이베리아 내의 불만 세력들이 '화해와 민주주의를 위한 라이베리아인 연합 (Liberians United for Reconcilation and Democracy, LURD)'를 결성하여 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발발합니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 소년병 동원, 학살, 강간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2003년 찰스 테일러가 망명하면서 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종결됩니다. 이후 2005년에는 유엔과 서아프리카 연합군의 평화 유지 활동에 힘입어 민주적인 선거가 치뤄졌고, 엘런 존슨 설리프 (Ellen Johnson-Sirleaf)가 당선되었습니다. 엘런 존슨 설리프는 재선을 통해 12년 임기를 모두 채웠고, 현재는 축구 선수 출신 조지 웨아 (George Weah)가 대통령입니다. 다만 조지 웨아는 부통령으로 찰스 테일러의 전 부인인 주얼 테일러 (Jewel Taylor)를 지명하는 등 찰스 테일러가 다시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15) 시에라리온: 시에라리온, 시에라리온 공화국 / Sierra Leone, Republic of Sierra Leone (영어) / 시에라리온, 시에라리온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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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리온'은 '사자의 산'이라는 뜻으로, 포르투갈 탐험가 페드루 데 신트라 (Pedro de Sintra)가 이 지역에 있던 산맥을 보고 1462년에 붙인 이름입니다. 원래는 'Serra Leoa'라는 포르투갈어 명칭이었는데, 베네치아 탐험가 알비세 카다모스토 (Alvise Cadamosto)가 이탈리아식으로 'Sierra Leone'로 표기하면서 오늘날에 이릅니다.

 

이 지역에는 고대부터 여러 부족이 거주했는데, 15세기부터 유럽인들과 접촉하면서 교역이 시작됩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원주민들이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거의 몰살했기 때문에, 노동력 수급이 필요했습니다. 시에라리온의 여러 부족 추장들은 경쟁 부족을 습격하여 노예로 유럽인들에게 판매하였고, 노예 무역은 17세기와 18세기에 번성했습니다. 한편 영국의 노예 폐지론자들은 노예였던 흑인들을 1787년에 이 지역에 정착시킵니다. 최초의 정착은 실패했지만 이후 1792년부터 아메리카의 흑인들이 다시 정착하기 시작하고, 1807년에는 영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영국 해군은 대서양 노예 무역에 참여하는 선박들을 나포해 선박에 있던 노예들을 시에라리온에 풀어줍니다. 이후 영국은 1808년 시에라리온을 왕령 식민지로, 1896년 보호령으로 선포하여 식민 지배를 시작합니다.

 

시에라리온은 1961년 '시에라리온 자치령'이라는 이름의 입헌 군주국으로 영국에서 독립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와 부정 부패로 경제 발전이 지지부진했습니다. 이후 1968년에는 시아카 스티븐스 (Siaka Stevens)가 집권하였고, 1971년에는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전환됩니다. 시아카 스티븐스는 1978년 일당 독재를 구축하여 오랜 기간 시에라리온을 통치하다가 1985년 물러났고, 군인 출신 조셉 사이두 모모 (Joseph Saidu Momoh)가 새 대통령이 됩니다. 조셉 사이두 모모 대통령은 부패했지만, 국내외 압력으로 1991년 다당제를 회복합니다.

 

그러나 시에라리온에 풍부하게 매장되었던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 내전을 촉발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1991년 이웃 국가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의 지원을 받은 포다이 상코 (Foday Sankoh)가 이끄는 혁명 연합 전선 (Revolutionary United Front, RUF)이 전쟁을 선언하면서 시작됩니다. RUF는 매우 잔혹했는데 방화, 신체 절단, 강간, 약탈, 살육을 저질렀으며, 시에라리온 동부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여 전비를 충당했습니다. 이 와중에 정부군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여러 번 일으켰고, 민정 이양으로 아마드 테잔 카바 (Ahmad Tejan Kabbah)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아마드 테잔 카바 대통령은 중간에 쿠데타로 쫓겨나기도 하지만 서아프리카 평화 유지군 (ECOMOG)의 도움으로 복귀하고, RUF와 평화 협정을 체결합니다. RUF는 평화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 이에 영국이 포다이 상코를 급습하여 체포함으로서 2002년 마침내 내전이 종식됩니다. 내전 이후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여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입니다.

 

 

16) 카보베르데: 카보베르데, 카보베르데 공화국 / Cabo Verde, República de Cabo Verde (포르투갈어) / 카부베르드, 카부베르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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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보베르데'는 '녹색 (Verde)의 곶 (Cabo)'라는 뜻인데 이 나라는 섬 나라이기 때문에 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베르데 곶'은 아프리카 대륙의 세네갈에 있습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이 지역은 유럽인의 도래 전에는 무인도였고, 15세기에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발견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정착하고, 16세기에는 노예 무역이 성행하여 흑인 노예들이 많이 끌려왔습니다. 노예 무역이 쇠퇴한 뒤에도 카보베르데는 대서양 항해의 거점으로 성장했습니다. 포르투갈은 민족주의를 분쇄하기 위해 1951년 카보베르데의 지위를 '식민지'에서 '해외 주'로 바꿨고, 아밀카르 카브랄 (Amílcar Cabral)은 '기니와 카보베르데 독립을 위한 아프리카당 (Partido Africano para a Independência da Guiné e Cabo Verde, PAIGC)'를 이끌고 소련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령이었던 카보베르데와 기니비사우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아밀카르 카브랄은 1973년 암살되지만,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1974)에 힘입어 카보베르데는 1975년 독립합니다. 카보베르데는 독립운동을 같이 했던 기니비사우와 통합하려 했으나 입장 차이로 통합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1980년 기니비사우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PAIGC에서 '카보베르데 독립을 위한 아프리카당 (Partido Africano da Independência de Cabo Verde, PAICV)'가 분리됩니다. PAICV는 1990년까지 일당 독재를 했으나, 소련이 무너지면서 1991년 다당제로 전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포르투갈어로는 '카부베르드'에 가깝기 때문에 '카부베르드' 내지는 '카부베르드 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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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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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6 08:45
    베스트

    진짜 취저야...헤응

  • 에스프리 작성자
    2022.11.16 08:47
    베스트
    @로그아웃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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