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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11.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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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221848

저는 철학적*정치적 입장에서 네오-니체리안(저 스스로 그렇게 규정합니다.) 입니다.

 

즉, 니체의 통찰을 절대적으로 신봉한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무차별적인 다원성과 다양한 관점주의의 해석을 수용하되, 더 나아가 힘(Might)과 정의(Right)가 그 하나됨을 위하여 매진하는 것입니다. 물론 올바름(정의)은 상대적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이것(힘) + 저것(올바른 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 이것저것을 동시에 변증법으로 통합시키고, 실철력(단지 비극적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실천이 아니고 실천이 완성된 힘)을 발휘할 수 있거나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저는 네오-니체리안'이라고 규정합니다.

 

니체는 인간이 만들어온 도덕 자체를 의구심으로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니체는 인간의 도덕에 대해 관점적인 접근("도덕적 현상이란 전혀 없고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로 볼진대)을 보이고 있지만 말입니다.

 

즉, 니체는 '판단하고 선고하는 식으로 인간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비판'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진실로는 '자기보존'에로의 강요라는 자연적인 불변 요소로부터 결정된다라는 사실에 의거해 그런 도덕적 평가란 의지의 자유(자유의지)를 전제하기 때문에 평가 대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린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자유에 걸맞는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유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건, 멜 깁슨이 연출하고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에서 월레스가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신념과 이데올로기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다 죽어갈 수 있을 때, 자유(freedom)를 목청껏 외치며 죽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쟁취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제가 절멸의 테제를 숭상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자연현상을 빗대어 인간의 도덕적 현상에 대해 이렇게 일갈합니다. "자연이 천둥을 보내 우리를 젖게 한다고 자연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왜, 해를 끼치는 인간을 비도덕적이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자의로 지배하는 자유의지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 이 말은 자연의 현상과 인간의 도덕적 현상은 하등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니체의 판단인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니체는 모든 악한 행위들의 동기는 '자기보존' 충동이거나 아니면 더 엄밀하게 말해 쾌락을 찾거나 불쾌를 회피하려는 개인의 의도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악한 행위들은 모두 이러한 동기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과연 주인의 도덕을 갖고 사는 인간은 자신이 자유의지에 반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함의 행위를 할까요? 그리고 노예의 도덕을 갖고서 사는 인간은 자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일까요? 갑자기 주인의 도덕으로 살았던 디오게네스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노예적 덕성을 갖고 있는 부류들의 존재방식이 비천한 데서 기인(발생론적 위치)하기 때문에, 그런 원한 감정에서,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방식이 들어난다고 해서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일까요?

 

니체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쩜 인간이 인식하는 오류에 근거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니체가 주장하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며, 무엇이든 허용된다."라는 말을 상기하시길.

 

이 인간사와 자연사에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허다합니다. 어쩜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 스스로 드러낼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그런 것(자연현상)들을 '신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로 표현은 해보지만 확실하게 뭔가 명징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인식할 뿐입니다.

 

어떤 유능한 철학자가 오랜 기간 동안의 고심 끝에 내려진 결론들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가 자신들에게 분명해진 것을 깨달은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의미를 구성한 것을 비유적 언어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고, 그저 느끼거나 아니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비문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김 여수라는 (분석?) 철학자는 인간의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주의는 오늘날 문화적 전통교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사에 만연되어 있다."고. W.T 존스도 "철학이라는 학문이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상대주의'라는 파리통에서 헤어나려고 애써왔지만 이제는 각자 자기가 몸담은 파리통 안에서 안주하려는, 혹은 그것이 파리통이 아닌 것으로 착각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일갈합니다.

 

솔직히, 철학이 다루는 존재론, 실재론, 의미론, 윤리론에서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언어가 실증적이든 체계적이든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다 판단이 전제된 언어, 바벨의 언어일 뿐입니다. 우리의 사유가 인간세와 자연계를 표상한다는 것은 모두 언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만약 선하거나 악한 의지가 정말 세계를 변경시킨다면, 그것은 단지 세계의 '경계'들을 변경시킬 뿐, 사실들이 이러하다는 것에 입각한 '언어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변경시킬 수 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식에 대한 선험성으로부터 자율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객관적인 실재 또한 우리가 어떤 정밀한 분석에 의한 결론에 이른다고 해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이 인간과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전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될 수도 없겠지요. 인간의 언어가 포기(사멸)된다면 인간의 문명은 곧 사멸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외부의 사물들이나 사회현상에 근거한 유물론이나 결정론 같은 이론들은 비물질적인 세계에 적용되면 그 힘을 상실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인간의 존재론, 윤리론 같은 이론들은 반대로 인간의 의식이나, 자유의지, 사색, 정열, 직관에 의한 통찰에 의해서만 그 의미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니체가 주장한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은 솔직히 잘못 받아들이면 위험한 인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에 서길 언제나 강요받는 인간은 절대로 자연적인 덕성에 부합하여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도덕적 현상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니체가 말하는 도덕성은 솔직히 이런 복합적인 현상(자연에서 드러나는 객관적인 현상을 인간의 부자연스런 도덕성으로 환원시킬려는 오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국, 니체는 반자연적인 인간의식이 표출하는 도덕성을 외면하고 그저 자연성에 충만된 자연성을 고양시킵니다. 그러나, 자연계의 덕성은 그 자체로 의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자연현상만이 그 스스로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 과연 자연현상 그 자체는 어떤 의지(그것이 신의 의지든 無*우연의 의지든)가 발동해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린 종교적 해석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자연*과학적 현상을 유추하여 여러가지 해석적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니체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오류를 문제삼아 인간의 도덕성이 자율스럽지 못하다고 비꼽니다만,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는 M. 퐁티가 통찰한 대로 인간의 뇌의 기능적인 특성인 조작적으로 사유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공 두뇌학의 이데올로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간의 도덕성도 일종의 절대적 인공주의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언어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듯이 문명 또한 인공적이기에. 우리 인간은 언제나 구경(스스로 그러하지 못하고, 그저 조작)하는 '사유'에만 머물러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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