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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2.09.0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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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해결사 

  

  

엘비스 불라이는 살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자급자족이 바로 그 비결입니다." 

그는 지구에서 온 스티븐 라모락을 밝은 곳으로 인도하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가는 눈웃음과 부드러운 표정에는 부자연스러운 냄새가 가득 풍겼다. 

라모락은 담배 연기를 맛나게 한모금 빨면서 호리호리한 다리를 꼬았다. 

그의 머리칼은 회색이었고 턱은 크고 강인해 보였다. 

"이거 여기 담배인가요?" 

그는 물고있던 담배를 찬찬히 살펴 보며 물었다. 상대방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오는 불편함을 애써 숨기려 했다. 

"그럼요." 

블라이의 대답이었다. 

"이렇게 작은 별에서 기호품을 재배할 여유가 있는지는 생각도 못했는데요." 

(라모락은 우주선에서 내려다 본 엘 써비어의 첫 인상을 떠올렸다. 엘써비어는 들쭉날쭉한 모양에 대기가 없고 직경이 수백마일 밖에 되지않는 미행성이었다. 항성으로부터 2억마일 떨어져 거의 보일까 말까하는 행성이었다. 어찌보면 표면이 거친 커다란 바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그나마 그항성계의 행성중에서 지름이 1마일이 넘는 유일한 별이었기에 인류는 이 미행성에서 정착촌을 일구게 되었다. 라모락은 사회학자로서 이 기이한 우주정착지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블라이의 공손한 웃음이 약간 더 커졌다. 

"여기가 그렇게 작은 별만은 아닙니다, 라모락 박사님. 2차원적 기준으로 이 별을 판단하시는군요. 엘 써비어의 지표면적은 뉴욕주의 4분의 3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엘 써비어의 지하까지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셔선 안됩니다. 반경이 50마일인 구체의 경우, 체적은 오십만 평방마일이 넘습니다. 만약 엘 써비어 내부를 50피트 간격으로 개발한다면 이 미행성의 전체 표면적은 5천6백만 평방마일에 이르게 되며, 이는 지구의 전체 지표면적과 맞먹는 수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하 개발 공간에는 버릴 땅이 없습니다." 

"그래요?" 

라모락은 잠시 멍해보였다. 

"맞습니다. 제가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요. 하긴, 전 은하계를 통틀어 땅속까지 철저히 개발된 소행성은 엘 써비어뿐이니, 저같은 외부인에게 우리는 삼차원적 공간 개발은 아주 생소하지요. 일단, 저의 이번 연구를 허락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 

블라이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라모락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군. 무슨 일이 생긴건가? 뭔가 이상해...) 

블라이가 계속 설명했다.  

"물론 아직은 면적이 무척 좁습니다. 엘 써비어 지하 공간의 개발은 아직 초기단계입니다. 사실 개발을 서두를 마음은 없습니다. 의중력 동력장치와 태양열 발전기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블라이 의원님, 개인적 호기심때문에 그러는데, 농경층이나 목축층부터 먼저 볼 수 있을까요? 땅속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방목한다는 것을 늘 신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 

"가축이라 하기엔 보잘 것 없습니다. 덩치가 좀 작은 가축들입니다. 사실 밀도 수확량은 얼마 안 됩니다. 누룩을 많이 배양하는 편이지요. 보여드릴 만한 밀밭은 있습니다. 면화와 쌀 뿐아니라 과일까지 재배합니다." 

"멋지군요. 역시 자급자족이 확실하군요. 그렇다면 자원 재활용율은 어떻습니까?" 

이 마지막 말에 블라이가 흠칫하는 것을 라모락의 날카로운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 엘써비어인의 가는 눈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더욱 가늘어졌다.  

"물론 재활용하지요. 공기,물,식량,광물 자원 등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자는 반드시 재활용되어야 합니다. 폐기물까지 재활용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동력은 충분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백퍼센트는 안되지만 그래도 꽤 높은 편입니다. 매년 물 약간량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수요가 많은 경우에는 연료과 산소 역시 수입하기도 합니다." 

"언제 견학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블라이 의원님?" 

라모락이 물었다. 

이제 블라이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최대한 빨리 시작하지요. 하지만 먼저 밟아야 할 공식절차가 있습니다." 

라모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비벼껐다.  

'공식절차? 예비접촉 당시에는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빈틈없이 조직된 사회에서 저 같은 외부인이 어쩌면 외부 불청객으로 비칠 수도 있겠는데요?" 

라모락은 말을 마치고 블라이가 약간 당황해 하는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예, 사실 저희 엘 써비어 성은 다른 은하계에 비해 약간 배타적인 별이지요. 우리만의 관습이 있고 또 저마다의 신분이 있습니다. 사실 고정 신분이 없는 이방인의 방문은 저희에게 약간 불편한 일이지요." 

"하지만 신분제도라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것 아닙니까?  

"인정합니다. " 

블라이가 재빨리 답했다.  

"하지만 저희에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는 타신분간의 결혼을 엄격히 규제하며 엄격한 직업의 상속을 권장합니다. 모든 엘 써비어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자의 신분과 위치를 잘 받아들입니다. 그럼으로써 개개인은 사회에 의해 받아지는 겁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 노이로제나 정신병같은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성 질병은 없습니다. " 

"사회 부적응자는 없습니까?" 

라모락이 물었다. 

블라이는 '아니오' 하려는듯 입을 벌리려다 갑자기 말을 삼켜 버렸다. 그의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다. 잠시후에 그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박사님을 위한 저희 별 안내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은 하루 편히 쉬시면서 노독부터 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블라이는 공손히 지구인이 먼저 나가도록 문 쪽을 가르켰다.  

라모락은 블라이와의 대화에서 약간의 위기의식을 감지했다. 

신문을 보자 그런 느낌은 더욱 커졌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전에 신문을 세심하게 읽어보았다. 신문 읽는 일은 사회학자로서 그의 주된 소일거리였다. 이곳의 신분은 인조 용지로 만들어진 8면 타블로이드판이었다. 기사중 4분의 1은 신변 잡기에 관한 것으로 출산, 결혼, 공지사항, 신개발용적 등을 다루었다. (이곳에서는 개발면적이 아니라 개발 용적이다. 3차원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하도록.) 그 나머지는 학술원고, 교육자료,소설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라모락의 관점에서 뉴스라 부를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뉴스 비슷한 기사가 하나 있었지만 정보의 불충분이라는 점에서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기사의 제목은 작았다.  

"요구사항 불변" 

어제도 그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평의회 의장이 두번째 면담 후 그의 요구사항은 완전히 불 합리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받아 들여 질 수가 없다고 발표했다.  

기사 끝부분에는 괄호 속에 다른 활자체로 편집국의 입장이 실려 있었다. (본 신문의 편집위원 일동은 엘 써비어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결코 그의 요구에 굴복해서도 또 굴복할 수도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라모락은 그 기사를 세번이나 읽어보았다. 그의 태도, 그의 요구, 그의 도발 

그가 누구인가?  

라모락은 꺼림직한 기분에 편히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후 며칠 동안 라모락은 워낙 바빠서 신문 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기사는 내내 마음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라모락의 안내원 겸 길동무 역할을 맡은 블라이는 갈수록 냉정해 보였다.  

삼일 째 되는 날의 일이다.  

(이곳의 하루 시간은 인공적 개념으로 지구에서처럼 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다.)  

블라이가 설명했다.  

"이번 층은 화학 공장 전용 층 입니다. 저 지역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다음층으로..." 

블라이가 재빨리 다음 층으로 넘어 가려고 하자 라모락이 그의 팔을 잡았다.  

"이 지역의 생산물은 무엇입니까?" 

"비료 관련 특정 유기물질입니다. " 블라이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라모락은 멈추어 서서 믈라이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는 배경 지역을 살펴보았다. 그는 지평선과 지층사이에 낮게 들어 선 건물들을 훑어 보았다. 라모락이 물었다.  

"저기 저것은 개인용 주택 아닙니까?" 

블라이는 계속 시선을 피했다.  

라모락이 다시 물었다.  

"저 주택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큰 것 같은데요. 저런 개인 주택이 왜 이런 공장 전용층에 있지요?" 

그 점은 정말 특이했다. 엘 써비어에서 라모락이 본 모든 층들은 다 거주 공간, 농경 공간, 산업 공간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그가 돌아보며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블라이를 불렀다.  

"블라이 의원님!" 

블라이는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기에 라모락은 서둘러 따라가야 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의원님 ?" 

블라이가 중얼거렸다.  

"제가 무례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압니다. 그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로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말을 하면서도 믈라이는 보조를 늦추지 않았다. 

" '그의 요구' 말씀이시군요." 

블라이는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내가 말한 정도 뿐입니다. 그것만 신문에 실려있더군요." 

블라이가 낮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라모락이 물었다.  

"라구스닉이라구요? 그게 뭡니까? " 

블라이는 깊은 한 숨을 내 쉬었다.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창피하고 또 무척 난처한 문제입니다. 평의회에서는 짧은 시일 내에 문제가 정리되리라 생각하고 박사님의 방문에는별 방해가 안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박사님께서 신경을 쓸 필요는 없는 문제입니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갑니다. 어떤 사태가 일어잘 지 모르는 형국이니 모양새가 좀 안 좋더라도 박사님은 지금 이 별을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부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 별에 남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구에서 온 라모락이 못 믿겠다는 웃음을 지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요? 이렇게 작고 평화로운 별에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평의회 의원이 말했다.  

"설명해 드리지요. 그래야 이해를 하실테니... 말씀드린 대로 엘 써비어의 모든 물자는 재활용되어야 합니다. 그점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예." 

"그 중에는 분뇨도 포함됩니다. "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 

"물론 철저한 증류에 의해 재생됩니다. 남은 것은 누룩에 쓰기 위해 비료로 만듭니다. 그 중 일부는 유기 화학 산업의 원료나 다른 제품으로 활용됩니다. 지금 보고 있는 저 공장들이 바로 분뇨 처리 작업을 담당합니다. " 

"그런가요? " 

사실 라모락이 처음 엘써비어에 도착했을 때, 식용수 역시 재생한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물 마시기가 약간 꺼림직했었다. 하지만 곧 그는 그런 거부감을 극복했다. 지구에서도 물은 온갖 종류의 불쾌한 물질에서 자연에 의해 재생되는게 아닌가.  

블라이는 점점 더 불편해 보였다.  

"분뇨의 직접적인 처리공정의 책임자는 이고르 라구스닉이라는 사람입니다. 엘 써비어 정착지가 처음 개척된 이래 그의 선조가 대대로 그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최초 정착자 중에 미하일 라구스닉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에, 그러니까..." 

"자원 재활용 전문가였군요." 

"예, 방금 박사가 지적한 집은 라구스닉 저택입니다. 이 소행성에서 가장 훌륭하게 지어진 집이지요. 라구스닉은 우리가 갖지 못한 많은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약간 어이없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의원의 목소리에 갑자기 노기가 묻어 나왔다.  

"뭐라구요?" 

"그는 완전한 사회적 평등을 요구합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기를 요구하며, 그들의 가족이 사교모임에 참석하는 등 ... 오!.." 

그는 라구스닉의 요구사항을 입에 담기조차 역겹다는 듯 한숨으로 말을 끝맺었다.  

라모락은 신문기사에 대해 잠시 다시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신문기사에도 그의 이름이나 요구사항은 거론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천민 취급을 받는 거군요." 

"당연하지요. 그는..." 

블라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 그는 더 침착하게 말했다.  

"지구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이해하기는 힘들거라 봅니다. " 

"나자신 사화학자로서, 어느정도는 이해합니다." 

라모락은 고대 인도의 장의사 조릇을 한 천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 고대 유대에서 돼지치기를 떠올렸다.  

"엘 써비어는 결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군요." 

박사가 말했다.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절대로!" 

블라이는 격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라구스닉은 이미 조업을 중단했습니다." 

"파업을 벌였군요." 

"그렇습니다. " 

"파급 효과가 심각한가요?" 

당분간 지탱할 식량과 물은 있습니다. 재활용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기물이 처리되지 않고 누적된다면 이 작은 소행성은 금방 오염 될 것입니다. 수 세대에 걸쳐 치밀하게 질병의 발병율을 통제해 왔기에, 엘써비어인의 신체는 병균에 대해 저항력이 낮습니다. 일단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수백명씩 죽어가게 될 것입니다. " 

"라구스닉도 그러한 사실을 압니까? " 

"그럼요." 

"그런데도 그가 자신의 협박을실천에 옮기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작업을 중단했고 박사님이 도착하기 하루전 부터 오물 처리 작업은 전면 중단에 들어갔습니다. " 

믈라이의 주먹코는 마치 구린내라도 맡은 듯 킁킁 댔다.  

라모락도 반사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이 별을 떠나시는 게 왜 현명한 선택인지 아시겠지요. 물론 저희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 

라모락이 의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시만요, 아직은 좀... 세상에, 이것은 오히려 제전공과 관련된 아주 흥미있는 사건입니다. 제가 라구스닉과 대화할 수 있을 까요? " 

"그건 절대 안됩니다." 

블라이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 곳의 사회상황은 아주 특이하며 우주 그 어느 곳과도 다릅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어떤 대화를 원하십니까? 화상통화도 됩니까? " 

"그럼요." 

"평의회에 먼저 물어봐야겠습니다. " 

블라이가 중얼거렸다.  

평의회 의원들은 근심을 애써 감추며 엄숙하게 라모락 주위에 둘러 앉았다. 블라이는 그들 가운데 앉아 지구인 라모락의 시선을 피하려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회색 머리에 가는 목과 주름이 많이 잡힌 얼굴을 한 평의회 의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모락 박사께서 그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환영 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그의 요구에 굴복할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 

라모락의 뒤로 엷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그는 장막 건너편 위원회 사람들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라모락은 자신앞에 놓인 수신기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화면이 밝아졌다.  

화면 속에 어떤 얼굴이 나타났다. 억센 턱과 얇고 붉은 입술이 단호하게 맞물린 강한 표정의 사나이였다. 화면속의 인물이 의구스러운듯 물어왔다.  

"당신은 누구요?" 

"제 이름은 스티븐 라모락, 지구에서 온 사람입니다. " 

"이방인이오?" 

"그렇습니다. 연구목적으로 엘써비어를 방문했습니다. 당신이 라구스닉입니까?" 

"이고르 라구스닉, 분부대로 대령했습니다. " 

조롱조로 라구스닉이 대답했다. 

"하지만 선생이 어떤 분부를 내리든, 나와 내 가족이 사람 대접을 보장받기전에는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라모락이 물었다.  

"엘 써비어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습니까? 돌림병이 돌게 될 거란걸 아십니까?" 

"내게 인간적 대우만 해 준다면 24시간 이내에 상황은 원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선택은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은 고등교육까지 마치신 것 같군요." 

"그래서요?" 

"제가 듣기로 선생은 모든 물질적 편의를 누린다고 하더군요. 의식주 생활은 엘 써비어의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자녀 교육은 최상의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편의는 자동제어 기계들에 의해 제공됩니다. 고아가 된 여자 아기들은 일찌기 우리에게 보내어져 성인이 되면 우리의 아내가 됩니다. 그런 후 그들은 외로움에 일찍 세상을 떠나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흥문조로 바뀌었다. 

"왜 우리는 마치 괴물인 양 사람들로 부터 고립되어 살아야 하는 겁니까? 우리도 남들과 똑같이 욕구와 감정을 지닌 인간입니다. 우리의 작업은 명예롭고 유용한 일입니다." 

라모락의 뒷편에서 한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라구스닉이 이를 듣고는 언성을 높였다.  

"평의회 여러문, 그 뒤에 숨어 있는 줄 압니다. 대답해 보시죠. 과연 명예롭고 유용한 일 아닙니까? 당신이 내놓은 당신의 분비물이란 말입니다. 어찌 폐기물을 생산하는 사람보다 정화하는 사람이 더 천한 인간이란 말이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평의회나리들. 난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엘써비어의 모든 사랍이 병들어 죽게 되고, 나와 내 아들도 같은 처지가 된다해도, 결코 나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오. 내 가족은 지금처럼 사느니 차라리 병들어 죽는편을 택할 것이오." 

라모락이 말을 가로 막았다.  

"당신은 평생을 이렇게 살아 왔지 않습니까?" 

"그렇소만?" 

"이젠 이런 대우에 익숙해 지지 않았습니까?" 

"절대로 아니오. 포기했다면 몰라도 익숙해진건 아니오. 내 아버지는 포기했었지. 나도 한 동안 그랬고. 하지만 난 내 아들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고있소. 내게는 형제가 있어 그나마 괜챦았지만 내 아들은 독자라 같이 놀아 줄 친구 하나 없다오. 그 애는 영원히 친구나 동기 없이 평생을 살 것이오. 이제 나도 더이상은 단념한 채 살아가지 않을 것이오. 내겐 이따위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빌어먹을 엘 써비어도 지긋지긋하고, 이 놈의 대화도 지긋지긋하오." 

수신기가 꺼졌다. 

의장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질렸다. 라모락 곁에 남은 이는 의장과 블라이 뿐이었다. 의장이 말했다.  

"그는 미쳤소.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모르겠소." 

의장은 옆에 놓인 포도주 한잔을 들었다. 손이 심하게 떨려 하얀 바지에 포도주 방울이 떨어져 주홍색 얼룩이 남았다. 

라모락이 말했다. 

"그의 요구 사항이 그렇게 비이성적인가요? 왜 그를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요?" 

블라이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노기를 띄었다.  

"그는 분뇨 처리자요." 

곧 다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당신은 지구에서 왔으니..." 

"라구스닉이 실제로 분뇨를 다룹니까? 제 말은 신체적 접촉이 있습니까? 분명히 전공정이 자동기계에 의해 처리된다고 아는데요." 

"물론입니다. " 

평의회 의장의 답이었다.  

"그렇다면 라구스닉이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 

"그는 기계의 조작을 담당합니다. 고장난 부분은 작동 중지시켜 자동수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지요. 반입량에 따라 작업용량을 조절하기도 하고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 할당량을 조절합니다. " 

의장은 다시 한탄조로 덧 붙였다.  

"물론 이런 제어과정까지 자동화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현재의 10배정도 되는 공장시설이 필요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공간의 낭비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라구스닉이 하는 일은 단지 버튼을 누르고 전원을 내리는 게 아닙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그의 일이 다른 엘 써비어인의 작업과 다를 게 뭐 있습니까?" 

블라이가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를 못하시는 군요." 

"당신 아이들의 생명을 걸 만큼 큰 차이입니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블라이의 목소리에는 괴로운 빛이 역력했다. 그렇게 괴로와하는 얼굴빛에서 그에게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라모락은 알 수 있었다.  

라모락은 이 모든 상황이 넌더리가 나서 극약처방을 제시했다.  

"물리력을 동원해서 파업을 중지시키는 건 어떨까요? 강제로 말입니다." 

"어떻게 말이오?" 

의장이 물었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가서 그를 붙잡는단 말이오? 또 원거리에서 그를 저격한다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오." 

라모락이 생각 끝에 물어보았다.  

"그의 기계를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아십니까? " 

의장이 발끈하여 일어섰다.  

"내가 말이오?" 

라모락이 깜짝 놀라 황급히 변명했다. 

"특별히 의장님을 지칭한 건 아닙니다. 누구라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물어 본겁니다. 혹시 다른 누군가 라구스닉의 기계 작동법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천천히 의장의 얼굴에서 노기가 사라졌다.  

"설명서는 있소. 나 자신은 그런 작업의 설명서에 관심을 둬 본적이 결코 없지만 말이오." 

"그렇다면 라구스닉이 파업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가 작동법을 익혀 그의 일을 대신하면 되지 않나요? " 

"누가 그런 짓을 하려 들겠소? 나라면 곧 죽어도 못 할거요." 

블라이의 말이었다.  

라모락은 지구에도 이에 비견할 만큼 중대한 금기사항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식인풍습, 근친상간, 신성모독 등을 이에 비유할 수 있겠지... 다시 물어봤다. 

"라구스닉의 유고시 직위 승계대책은 무엇입니까?" 

"그가 사망할 경우, 그의 아들이 자동적으로그 자리를 물려 받습니다.  

아들이 없을 땐 가장 가까운 친척이 대신합니다." 

"아무런 친척이 없다면요? 만약 전가족이 한꺼번에 죽는다면요? " 

"그런 일은 일어난 적도 없고, 일어날 리도 없소." 

의장이 덧붙였다.  

"혹시나 그럴 위험이 있다면 다른 아기를 키워서 그 자리를 잇게 하지요." 

"아, 그럼, 그 아기는 어떻게 고르지요?" 

"라구스닉가의 신부를 정할 때처럼 고아가 된 사내아이들 중에서 고릅니다. " 

"그렇다면 제비뽑기로 지금 라구스닉을 대신할 사람을 뽑으면 되겠군요." 

라모락이 말했다.  

의장이 놀라 말했다.  

"그건 안됩니다. 절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소? 사리판단력이 없는 아기를 골라서 라구스닉처럼 키운다면, 어차피 그는 커서도 자신의 삶에 큰 불행은 못느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다른 어른을 골라 라구스닉처럼 대우한다면... 오, 라모락박사. 그건 안될 말이오. 우린 그런 야만적 행위는 할 수 없소." 

'아무런 소용이 없군.' 

라모락이 무기력하게 생각했다. '결국 그 방법외에는...' 

그는 남은 한가지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다. 별로 내키지 않는 대안이었다. 

  

  

  

그날밤 사실 라모락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라구스닉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인간다운 삶'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에 대해 전체 엘써비어인 3만명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는 3만명의 생사가 달려있고, 또 다른쪽에는 한 가족의 요구가 걸려있다. 한 가족을 부당하게 대우하므로 엘 써비어인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도대체 부당하다는 것이 누구의 기준으로 내린 판단인가? 지구인의? 엘 써비어인의? 라모락에게는 과연 이를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라구스닉에게는 그 같은 자격이 있는가? 그는 자신의 판단하나로 삼만명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개중에는 차별적 관습을 별 생각없이 그저 관습으로 받아들인 남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삼만명의 목숨과 한 가족의 권리. 

밤새 고민하다 라모락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기분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다. 날이 밝자, 평의회 의장에게 전화를 했다.  

"의장님, 만약 작업을 대신할 사람만 찾아 낸다면, 라구스닉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가망이 전혀 없다는걸 깨닫고 별수 없이 다시 작업에 복귀하게 될 것입니다." 

의장이 한숨을 몰아 쉬었다.  

"대체할 사람을 찾는건 불가능하다고 이미 설명했쟎소." 

"엘 써비어인에게는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엘 써비어인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의 관습에 괘념치 않습니다. 제가 그 대리 작업자가 되겠습니다." 

그들은 흥분했다. 라모락 자신보다 그들이 더 들떠보였다. 몇번이고 진정으로 하는 얘기냐고 물어왔다.  

면도도 하지못한 라모락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라구스닉이 파업을 위협할 때에도 대리작업자를 외부에서 불러 고용함으로써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별에는 이런 작업을 금기시하지 않으므로 돈만 충분히 준다면 단기적으로 일해줄 사람은 많이 있을겁니다. " 

(라모락은 자신의 행위가 부당한 착취를 당한 한 인간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라구스닉은 사회의 배척 말고는 아주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애써 지우려했다.') 

평의회 사람들은 라모락에게 사용설명서를 주었고 그는 여섯 시간동안 그 책을 자세히 읽어봤다. 누굴 잡고 물어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엘써비어인 중에서 그 일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그 작업을 주제로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누구나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런지 하울러에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는 항상 검류계의 눈금을 0에 맞추어 둘것."  

라모락이 소리내어 읽었다.  

"여기서 런지 하울러가 어떤 것입니까? " 

"가보면 무슨 표시가 되어 있을 겁니다." 

블라이가 낮게 말했다. 엘써비어인들은 모두 비굴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떨구고 손끝만 묵묵히 바라보았다.  

라구스닉일가가 수대에 걸쳐 작업해 온 공장 건불로 그들은 라모락을 인도했다. 건물근처에 다다르기 전에 엘써비어인들은 모두 라모락을 떠났다. 라모락은 어떤 길목에서 어디로 방향을 틀고 어느 층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 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다른이들은 멀찍이 물러서서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고 서있었다.  

그는 찬찬히 방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기기들과 계기판들이 설명서에 나와있는 도해와 일치하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저기 런지 하울러도 있군.' 

그는 적쟎이 마음이 놓였다. 정말로 기계마다 표시가 붙어있었다. 그것은 반원형의 계기판으로 다양한 색의 전등이 여러구멍속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왜 '울부짓는다'라는 뜻의 '하울러'를 이름으로 붙였을까? 알 길이 없었다. 

'이 공장 어딘가에 분뇨가 저장되어있고 오십여가지 공정의 다양한 기어와 출구, 파이프, 증류기가 재가동을 기다리고 있겠지.' 

한치의 주저없이 그는 '시동'이라고 쓰인 첫번째 스위치를 아래로 당겼다. 공장이 다시 웅웅하며 돌아가는 진동을 벽과 바닥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한 손잡이를 돌리자 불이 들어왔다.  

비록 전공정을 다 암기했지만, 한 단계 한단계 그는 책을 보고 확인하며 기기를 조작했다. 그 때마다 각 기계실에 불이 들어왔고 각 계기판의 눈금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장의 가동음이 점점 더 커졌다.  

공장 어딘가에서 쌓인 폐기물이 재활용 처리되고 있었다.  

시끄러운 신호음이 갑자기 들려 라모락은 흠칫 집중하고 있던 작업을 멈추었다. 그것은 수신기에서 나오는 신호였다. 라모락은 당황하여 수신기 전원을 올렸다.  

놀란 라구스닉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처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그것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로군." 

"아시다시피 나는 엘 써비어인이 아닙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라구스닉씨." 

"하지만 이번 일에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거요?" 

"나는 심정적으론 당신 편이지만 상황에 미루어 어쩔 수 없었소." 

"내 편이라면 왜 이러는 거요. 당신네 별에서도 여기서처럼 나 같은 사람을 벌레 취급합디까? " 

"요즘은 그런 일이 없지요. 하지만 당신의 뜻이 옳다고 해서 삼만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에 가서 내 요구에 굴복했을 것이오. 당신이 내 유일한 기회를 망쳐버렸소." 

"그들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당신이 이긴 겁니다. 이제 그들은 당신도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그들은 라구스닉은 불행도 못 느끼고, 별 대단한 사회문제가 못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와서 그들이 그걸 알아줘본들 뭐 합니까. 이제 그들은 아무때건 내가 문제를 일으키면 다른 별 사람을 고용하기만 하면 되는데..." 

라모락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는 이미 밤새도록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었다.  

"그들이 안다는 것은 엘 써비어인들이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느끼는 고통을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머지않아 당신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도 나올 겁니다. 그리고 다른 별 사람이 고용될 경우, 그 이방인들은 엘써비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문제를 나중에 돌아가서 자기별에 알리게 되는 창구가 될 것이고 머지않아 전 은하계의 여론은 당신 편이 될겁니다. " 

"그런 후에는 ?" 

"만사가 좋아지겠죠. 적어도 당신의 아들 대에 가서, 아들이 받게되는 대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거요." 

"내 아들대라...." 

라구스닉의 볼이 씰룩거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나의 대에서 변화를 이루길 바랬소. 어쨌든 이번은 내가 졌소. 다시 일을 시작하리다." 

라모락은 주체못할 안도감을 느꼈다.  

"지금 선생님께서 이리 오신다면 금방 작업을 넘겨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신다면 제가 선생을 직접 뵙고 악수라도 할 기회를 갖게될거고... 그렇게 된다면 제게는 영광입니다."  

라구스닉은 라모락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쳐들었는데, 그의 표정에서 약간씩 피어나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고 악수를 청하고 있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가서 당신 일이나 하라는 거요. 지구인, 나라면 남의 자리를 넘보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겠소." 

라모락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엘써비어의 위기상황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마음은 놓였으나, 울적한 기분만은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돌아가는 통로가 막혀있어 깜짝 놀라 멈춰섰다. 다른 길을 찾아 보려 둘러 보았다.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와 다시 한번 놀랐다.  

"라모락 박사, 내 말 들리시오? 나 블라이 의원이오." 

라모락이 위를 보았다. 그 소리는 어떤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 같았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외쳤다. 

"뭐가 잘 못 되었소? 내 말 들리시오?" 

"잘 들립니다." 

본능적으로 라모락이 외쳤다.  

"뭐가 잘못 되었소? 여기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소. 라구스닉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 겁니까? " 

"라구스닉은 다시 작업을 시작했소." 

블라이의 목소리가 답했다. 

"위기는 이제 끝이 났고, 박사는 떠나야만 합니다." 

"아니, 떠나다니요?" 

"엘 써비어를 떠난다는 말입니다. 당신을 위한 우주선이 준비되어 있소." 

"하지만 난 아직 내 연구를 위한 자료수집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 

라모락은 갑작스런 사태 전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문제는 도와드릴 수가 없소. 이제부터 우리는 당신에게 우주선으로 가는 길을 지시할 것이고 당신의 소지품은 자동처리 장치를 통해 우주선 화물칸에 실리게 될 겁니다. 우리는... 에, 우리는... " 

어떤 생각이 라모락의 뇌리를 스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우리는 당신이 어떤 엘 써비어인에게도 접근하거나 말을 걸려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미래에도 서로를 위해 엘 써비어로 돌아오려는 시도는 삼가해 주길 바랍니다. 추가 자료 수집을 위해 다른 사람이 오는 경우라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라모락이 메마른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는 그도 라구스닉이 된 것이다. 그는 분뇨처리 장치를 다루었고 이제 그도 이 사회의 천인이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시체 염하는 사람, 돼지치기, 백정이 된 것이다.  

"잘 있으시오."  

라모락이 말했다.  

다시 블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길을 안내하기전에, 라모락 박사, 엘 써비어 평의회를 대신하여 우리를 이번 위기에서 구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바이오." 

"원 별 말씀을..." 

라모락이 씁쓸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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