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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05.14 17:10  (수정 05.1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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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ssa.co.kr/13945333

80년 4월 23일 월요일

청운의 꿈을 품었던 소년이 정든 고향을 떠나
자갈길을 달려 대도시에 전학을 와서 
첫 등교를 했던 날이었습니다.
 
급우들과 선생님들은 물론 책,걸상과 칠판까지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으며 학습 진도의 확연한 차이때문에
꽤나 힘들었죠.
 
중고교와 전문대학, 대학까지 같은 담장안에 있었기에
등하교길에 형 누나들도 가끔 보였다는 게 시골학교와는
달리 이채로운 모습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있던
어느 날 아침 등교길에 도착한 정문 앞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 형들과 
그 들 사이에 위협적인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장갑차...
 
뉴스나 사건사고에 관심이나 지식도 필요치 않았던 나이였으니
정문앞의 광경에는 호기심만 가득했더랬죠.
 
대학생 형누나들이 왜 안 보이는지 
장갑차와 군인들은 무엇을 지키러 온 것일까
이 땅의 어디에선가 무슨 난리가 난 것인지...
 
얼마나 지났을까
등하교 길에 마주칠때 눈 인사만 하던 군인형에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던 소년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봅니다.
 
형  그 총은 몇발이나 나가요 ?  얼마나 멀리 나가요 ?
저 탱크는 몇명이나 타나요 ? 속도는 빠른가요 ?
 
집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났던지
귀찮은 기색없이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더군요.
 
80년 5월의 어느 날 있었던 저의 기억입니다.
 
훗날 14 인치 TV를 통해 남몰래 보던
10여 분짜리 영상속에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도 뛰어다니고
비슷한 장갑차도 등장을 했습니다.
 
싸구려 외국영화이길 바랬던 영상은 
80 년 5 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참극이었죠.
 
만약
내가 광주로 전학을 갔었더라면...
친절했던 군인 형이 광주에 있었더라면...
 
까까머리시절 겪었던 어느 5 월은
아직 나에게도 작지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듯 합니다.
 
나에겐 멋지기만 했던 장갑차가 이 땅의 누군가를 짓밟고 있었고
친절했던 군인형의 총칼에 의해
나와 같은 철부지 소년도 대학생 형누나들도
그리고 누군가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던
수 많은 희생이 있었건만
 
23만원을 남겨놓고 떠난 한 인물의 유산들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나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언제쯤이면 고인들의 억울함이 온전히 사라지고
유족들의 한맺힘도 풀어질 것인지
그리고
까까머리 소년이 가져야 했던 그 날의 호기심에 대한
죄책감을 스스로 용서하게 될지 두 주먹을 다시 쥐어봅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유난스런 오늘이네요
오늘도 다들 무탈하셨기를
그래서 내일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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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14 17:22
    베스트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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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족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전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한다는 것을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갈수록 분노가 자라나는 듯 하네요.

    편안한 저녁되세요.

  • 2024.05.14 17:43
    베스트

    피리부는소년 님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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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집

    항상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2024.05.14 17:43
    베스트

    글로 사람을 힐링시키시는 능력이 있으신 피리부는소년님.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4 18:00
    베스트
    @너와집

    길가의 작은 돌맹이도 쓰임새가 있듯

    보잘것 없는 저의 글 몇 줄이 누군가에는 

    좋은 느낌으로 전해진다는 게 고맙고 다행스러울 뿐이네요.

     

  • 2024.05.14 18:06
    베스트

    저는 비슷한 어릴 적 1987을 겪었네요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4 18:23
    베스트
    @올리브햇반

    꿈과 희망을 꿈 꾸기에도 부족한 시절에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젊음은 없어야 하건만

    지금의 젊음은 그러한지 안타까워요..

  • 2024.05.14 18:13
    베스트

    그러셨구나 

    오늘도 두번을 읽게 만드시는 좋은글~  잘 봤습니다.

    🙋‍♀️ 세상 좋을 때, 태어난 걸 새삼 감사하게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4 18:29
    베스트

    누구에게나 좋았던 시절도 있었을테고

    힘든 시기도 지나간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들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노력들은 존중 받아야 하겠죠.

    맛있는 저녁드시고 편안한 시간되세요. 고맙습니다.

  • 2024.05.14 21:40
    베스트

    경주 수학  여행

    캠프퐈이어 도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라고 선생님들 소리지르고 모닥불  불은  꺼지고 다른지방 에서  여행온 남학생들은 창살에  매달려  신나게  소리지르고  그땐 무슨일이 났는지 몰랐어요~

    방으로 들어가서 각자  춤추고 놀았던 기억

    그날이 그날인듯 해요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5 06:29
    베스트
    @🐰아이원🐇

    같은 시대에 같은 땅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내 이웃과 주변의 삶에도

    결코 무심치 말아야하는 연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되세요.

  • 2024.05.15 06:35
    베스트
    @피리부는소년

    네 ~~

    명심할게요

  • 단숨에 읽었습니다~!!

    아픈 글 잘 읽었네요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5 06:35
    베스트
    @몰빵🌏전인류👉🏻기본소득

    비극의 희생양이었던 많은 분들에 비하면

    어설픈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지려 노력케 해주었던 일 이었기에

    저 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듯 하네요.

    화창한 휴일 , 행복한 하루 되세요

     

  • 2024.05.15 00:32
    베스트

    87년 고딩때 가톨릭청소년회관에서 전시했던 80년 광주 5 18 비극적인 사진을 접하고 정말 당황하고 어이없고 분노했었지요 80년에 광주에서 이런끔찍한 일이 있었다니 ......

    어릴적 북한의 짓이라고 뉴스에서 떠들기에 그것이 진실인 줄 알았거든요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피리부는소년 작성자
    2024.05.15 06:47
    베스트
    @필그림

    아직도 북한이 배후에 있다거나

    불만세력들의 폭동이었다 믿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기를...

  • 2024.05.15 06:48
    베스트
    @피리부는소년

    굿모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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