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4월 23일 월요일
청운의 꿈을 품었던 소년이 정든 고향을 떠나
자갈길을 달려 대도시에 전학을 와서
첫 등교를 했던 날이었습니다.
급우들과 선생님들은 물론 책,걸상과 칠판까지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으며 학습 진도의 확연한 차이때문에
꽤나 힘들었죠.
중고교와 전문대학, 대학까지 같은 담장안에 있었기에
등하교길에 형 누나들도 가끔 보였다는 게 시골학교와는
달리 이채로운 모습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있던
어느 날 아침 등교길에 도착한 정문 앞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 형들과
그 들 사이에 위협적인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장갑차...
뉴스나 사건사고에 관심이나 지식도 필요치 않았던 나이였으니
정문앞의 광경에는 호기심만 가득했더랬죠.
대학생 형누나들이 왜 안 보이는지
장갑차와 군인들은 무엇을 지키러 온 것일까
이 땅의 어디에선가 무슨 난리가 난 것인지...
얼마나 지났을까
등하교 길에 마주칠때 눈 인사만 하던 군인형에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던 소년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봅니다.
형 그 총은 몇발이나 나가요 ? 얼마나 멀리 나가요 ?
저 탱크는 몇명이나 타나요 ? 속도는 빠른가요 ?
집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났던지
귀찮은 기색없이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더군요.
80년 5월의 어느 날 있었던 저의 기억입니다.
훗날 14 인치 TV를 통해 남몰래 보던
10여 분짜리 영상속에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도 뛰어다니고
비슷한 장갑차도 등장을 했습니다.
싸구려 외국영화이길 바랬던 영상은
80 년 5 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참극이었죠.
만약
내가 광주로 전학을 갔었더라면...
친절했던 군인 형이 광주에 있었더라면...
까까머리시절 겪었던 어느 5 월은
아직 나에게도 작지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듯 합니다.
나에겐 멋지기만 했던 장갑차가 이 땅의 누군가를 짓밟고 있었고
친절했던 군인형의 총칼에 의해
나와 같은 철부지 소년도 대학생 형누나들도
그리고 누군가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던
수 많은 희생이 있었건만
23만원을 남겨놓고 떠난 한 인물의 유산들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나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언제쯤이면 고인들의 억울함이 온전히 사라지고
유족들의 한맺힘도 풀어질 것인지
그리고
까까머리 소년이 가져야 했던 그 날의 호기심에 대한
죄책감을 스스로 용서하게 될지 두 주먹을 다시 쥐어봅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유난스런 오늘이네요
오늘도 다들 무탈하셨기를
그래서 내일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댓글 18
댓글쓰기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전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한다는 것을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갈수록 분노가 자라나는 듯 하네요.
편안한 저녁되세요.
피리부는소년 님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따뜻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글로 사람을 힐링시키시는 능력이 있으신 피리부는소년님.
길가의 작은 돌맹이도 쓰임새가 있듯
보잘것 없는 저의 글 몇 줄이 누군가에는
좋은 느낌으로 전해진다는 게 고맙고 다행스러울 뿐이네요.
저는 비슷한 어릴 적 1987을 겪었네요
꿈과 희망을 꿈 꾸기에도 부족한 시절에
억울함이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젊음은 없어야 하건만
지금의 젊음은 그러한지 안타까워요..
그러셨구나
오늘도 두번을 읽게 만드시는 좋은글~ 잘 봤습니다.
🙋♀️ 세상 좋을 때, 태어난 걸 새삼 감사하게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누구에게나 좋았던 시절도 있었을테고
힘든 시기도 지나간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들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노력들은 존중 받아야 하겠죠.
맛있는 저녁드시고 편안한 시간되세요. 고맙습니다.
경주 수학 여행
캠프퐈이어 도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라고 선생님들 소리지르고 모닥불 불은 꺼지고 다른지방 에서 여행온 남학생들은 창살에 매달려 신나게 소리지르고 그땐 무슨일이 났는지 몰랐어요~
방으로 들어가서 각자 춤추고 놀았던 기억
그날이 그날인듯 해요
같은 시대에 같은 땅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내 이웃과 주변의 삶에도
결코 무심치 말아야하는 연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되세요.
네 ~~
명심할게요
단숨에 읽었습니다~!!
아픈 글 잘 읽었네요
비극의 희생양이었던 많은 분들에 비하면
어설픈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지려 노력케 해주었던 일 이었기에
저 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듯 하네요.
화창한 휴일 , 행복한 하루 되세요
87년 고딩때 가톨릭청소년회관에서 전시했던 80년 광주 5 18 비극적인 사진을 접하고 정말 당황하고 어이없고 분노했었지요 80년에 광주에서 이런끔찍한 일이 있었다니 ......
어릴적 북한의 짓이라고 뉴스에서 떠들기에 그것이 진실인 줄 알았거든요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직도 북한이 배후에 있다거나
불만세력들의 폭동이었다 믿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기를...
굿모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