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결과가 공개되었다. 스즈키 이치로가 아깝게 단 한 표를 못받으면서 99.7%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첫 턴 헌액을 완성시켰고, CC 사바시아도 첫 턴 헌액 성공(86.8%), 빌리 와그너는 마지막 도전에 결국 명전 헌액의 영예(82.5%)를 누렸다. 그들이 세운 메이저리그 내 기록들과 영광들은 쿠퍼스타운에서 영원히 그 공로를 칭송받게 될 것이다.
이치로와 사바시아처럼 처음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얻은 12명의 선수들 중에서는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20.6%), 더스틴 페드로이아(11.9%)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광탈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반면 두 번 이상 도전을 이어간 후보자들은 모두 다음 명예의 전당 투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유지했다.
약물러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4번째 투표에서 37.1%를 받았다. 지난 투표와 비교해봤을 때 2.3%의 득표율이 오르긴 했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도 34.3%였기 때문에 답보상태라고 봐야 하겠다.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가진 자들의 시선에서 A-로드는 헌액되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게 중론이라는 것이다. 물론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 과반을 넘긴다 해도 명예의 전당 헌액은 안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물러에게는 엄격한 투표권자들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강탈한 "사인훔치기 스캔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주동자로 알려진 카를로스 벨트란이 두 번째 투표에서 70.3%를 받으면서 작년에 비해 무려 13.2%의 상승된 득표를 받은 것이다. 이 정도 페이스면 내년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는 벨트란이 헌액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메이저리그에 뭔가 큰 사건이 터지게 되면 사무국 차원에서 큰 변화를 취하게 된다. 약물 사건 이후로 부정적인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고, 심지어는 투수의 손에 발랐던 파인타르까지도 규제하면서 투수들의 팔꿈치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공정성을 유지했다. 사인훔치기도 마찬가지.
이전까지 포수가 수신호로 사인을 주는게 거의 유일한 전달방식이었기 때문에 상대팀들은 당연히 그 수신호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예전부터 해왔고, 심지어 조사에 따르면 여러 팀들이 포수의 사인을 훔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안 자체가 안되는 방식은 취약점이 있고, 들킨다 하더라도 발견한 그 팀도 사인훔치기를 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봐주는 것이다.
왜 봐주는 것일까? 결국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은 162경기이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려면 현행 기준으로 최소 11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이런 수많은 경기들을, 심지어 현행 제도상 29개의 상대팀을 모두 만나야 하는 팀이 일일이 사인을 다 분석해서 사인훔치기를 매 경기마다 시행한다는건 말마따나 "효율이 극히 떨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승을 밥먹듯이 할 것이었으면 팀들이 선수들에게 연봉을 세게 줘가면서 강팀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팀의 명예에 가장 민감한 구단주들도 "평소처럼의" 사인훔치기가 팀의 우승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피치컴을 도입하면서 아예 수신호 자체를 안쓰게 했다. 사인훔치기의 유일한 취약점이었던 부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사인훔치기는 이제 피치컴을 해킹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무국이 사인훔치기를 가볍게 봤으면 굳이 도입을 안해도 되었을텐데 왜 도입을 하게 되었을까? "그 효율이 없다는 사인훔치기를 악랄하게 사용해서 우승트로피를 강탈한 팀"이 생겼기 때문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훔치기 스캔들이 터진 뒤의 후속기사는 "다른 팀들도 사인훔치기를 했다더라"라는 기사였다. 거기에 연루된 팀들이 사인훔치기를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전형적인 물타기 기사다. 목적이 너무나 분명한 것 아닌가. 애스트로스의 사인훔치기의 악랄함을 줄이기 위한 작업. 내가 왜 애스트로스의 사인훔치기에 이렇게나 분노하냐면 다저스가 그 피해자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대부분의 구단들이 "팀의 우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방식을 애스트로스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뤄냈기 때문이다. 약물과 논리가 똑같다. 평범한 사람이 약물을 쓴다고 배리 본즈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부터 엘리트였던 선수가 약물을 쓰면 괴물이 되는 것이다. 그걸 본즈가 알았으니까 약을 빨았던 것이고. 그것으로 강탈해낸 MVP가 몇 개인가. 로저 클레멘스가 약을 함으로 인해서 강탈한 사이영이 몇 개인가.
2008년 이후 6년간 루징 시즌을 치르며(심지어는 탱킹까지 시도하면서) 유능한 유망주들을 힘이 닿는대로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애스트로스에 들어온게 조지 스프링어(2011년), 랜스 맥컬러스 Jr.(2012년), 카를로스 코레아(2012년), 카일 터커(2015년), 알렉스 브레그먼(2015년)이었다. 거기에 그 이전에 해외 유망주로 팀에 들어와서 2011년에 데뷔한 호세 알투베도 있다. 우선 알투베가 2014년에 팀의 기둥이 되면서 애스트로스의 부활의 신호탄을 날렸고(당시 bWAR 5.5), 2015년부터는 오랜만에 위닝 시즌을 만들어내면서 팀의 10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는 드래곤볼 모으듯이 모은 유망주들이 대거 포텐을 터뜨리면서 2017년에는 1998년 이후 첫 100승 시즌을 만들어내면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뤄냈다. 하지만 이 우승은 "사인훔치기를 통해 이뤄낸 결과"라는게 드러났다.
즉, "선수들 포텐만으로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는게 힘들테니 방점을 찍기 위한 방법으로 사인훔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2025년에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실패하면 일부 메이저리그 팬들이 "저렇게 돈을 쓰고도 우승 못하네!"라고 하면서 비웃을테지만 다저스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한 것이다. 공은 둥글고, 치팅을 하지 않는 이상 결국 승부의 신이 승리를 점지해주는걸 어떡하는가. 양키스도 저지의 "히 드랍 더 볼"만 없었으면 월드시리즈 우승도 해볼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애스트로스는 그렇게 미끄러지는게 싫어서 사인훔치기를 썼고, 결국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 타이틀을 얻어냈다. 2019년에도 사인훔치기를 하겠다는 마음만 독하게 먹었으면 워싱턴 내셔널스를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것이다. 물론 2019년에는 훔치지 않았다? 글쎄.
심지어 명령을 하달받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말단직원도 아니고 선수들 내에서 영향력을 굉장히 끼치면서 사인훔치기를 주동했다고 하는 자가 내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 왜 피치컴이 도입되었는지 명예의 전당 투표권자들은 모르는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벨트란에게 받아먹은 게 있어서" 쉬쉬하는 것인가? 약물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면서도 사인훔치기는 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다른 팀도 사인훔치기를 했기 때문에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트로피 강탈이 무죄가 되는 것인가?
투표권자들의 이런 행위는 결국 앞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자격을 얻을 "사인훔치기 멤버들"에게도 프리패스를 주는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럴거면 왜 약물때는 그렇게 단호했는가? 심지어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고, 커리어에 대한 명예도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야구 외적으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헌액에 실패했거나 가능성이 없는 선수(커트 실링, 오마 비즈켈 등)도 있다. 이들이 약물러보다, 사인훔치기 연루자들보다 명예가 떨어지는가? 이들이 야구 외적인 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자기 명예를 떨어뜨리긴 했어도 야구의 명예를 실추시키진 않았다. 약물과 사인훔치기 스캔들은 명백하게 야구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명예를 실추시킨 사건인데 약물은 엄격하게 보고 사인훔치기 스캔들은 엄격하게 보지 않는다?
명예의 전당 투표권자들은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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