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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SideStory
2024.10.0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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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시즌이 (두 경기만을 남겨둔 채)끝난 (미국 기준)9월 30일, 불멸의 기록을 작성한 선수가 생을 마감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한 스포츠카드 사인회에 참석해 직접 사인행사를 가질 정도로 정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피트 로즈를 추모하고자 하는 내 입장에서는 피트 로즈가 가진 두 가지 모습 중 '불멸의 안타왕'만을 다룰 것이다.

1961년, 신시내티 레즈 산하 마이너리그 D팀(지금의 싱글A라고 보면 될 것 같다.)인 탬파 타폰스에서 미친 기록이 하나 나왔다. 바로 30개의 3루타를 기록한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은 1912년 오웬 윌슨이 가지고 있는 36개고, 소위 "리그 확장 시대"의 시작점으로 보는 1961년부터는 커티스 그랜더슨이 2007년에 기록한 23개가 최고일 정도로 3루타는 홈런보다도 더 기록하기가 힘들다. 발이 느린 선수는 커리어를 통산 100개를 넘기는 것도 말도 안되게 힘들다. 그런데 아무리 마이너리그라지만 3루타를 30개나 때려내는 미친 선수가 등장했다니,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싱글A 리그인 FSL의 단일 시즌 기록으로 남아있다.

만 20세의 선수가 이뤄낸 이 기록,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 피트 로즈가 쓴 기록이다. 미친 기록을 쓴 다음 해 A팀(지금의 더블A)인 메이콘 피치스로 승격했음에도 OPS .931을 기록하면서 3할 타율, 4할 출루, 0.5대 장타율을 달성한 로즈를 레즈는 이듬해 1963년에 전격 콜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요즘도 그렇지만 마이너에서 펄펄 뛰는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메이저에서는 쪽을 못쓰는 케이스들이 많다. 피트 로즈도 기세등등하게 메이저에 데뷔했지만 2년간 OPS .678이라는 리그 평균 이하(OPS+ 91)를 기록하면서 그저 그런 2루수가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1965년, 시즌 첫 200안타를 돌파, 리그 안타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OPS .828, 첫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기염을 토해냈고, 그 이후로 피트 로즈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매 해 3할의 타율을 넘기는건 기본이고 심지어 포지션을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바꿔도 잘했던 로즈는 처음에는 1, 2, 3번타순을 오가다가 1967년 후반기부터 리드오프 1번타자로 고정되었고, 장타가 폭발했던 1973년에는 그 옛날 홈런타자가 3, 4, 5번을 치던 시대에 리드오프로 OPS .940를 기록하는 미친 시즌으로 그 해 타격왕, 안타왕에 더불어 리그 MVP까지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신시내티 레즈의 최고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1972~1978년은 소위 "빅 레드 머신"의 시대였다. 1971년 시즌 종료 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조 모건이 트레이드로 레즈로 넘어오고 나서 로즈-모건-페레스-벤치(벤치와 페레스는 서로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로 이어지는 살인타선을 구축하면서 그야말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를 타선으로 주름잡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경기당 득점력 순위는 리그 내 2위 이상을 항상 유지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비력도 장난 아니어서 수비율에서 1973년, 1978년을 제외하고서는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런 타선을 바탕으로 레즈는 1975~1976년 시즌 100승 이상 달성과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로즈는 1963년 22세 시즌부터 1978년 37세 시즌까지 레즈에서 뛰면서 3,000안타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거기에 신인왕 1회, MVP 1회, 올스타 12회, 골드글러브 2회 수상에 빛나는 수상실적과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라는 타이틀까지, 로즈는 그야말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도 모자람이 없는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그의 꾸준한 안타생산능력을 눈여겨보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1978년에 로즈와 레즈간 계약이 종료되고 FA가 되자 바로 4년계약을 맺고 팀에 데려온다.

당시 계약규모 4년 320만달러는 엄청난 규모였다. 로즈가 1977년에 레즈와 맺은 2년(이제 커리어 말기라고 생각해서인지 레즈가 짧은 계약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75만달러의 계약도 당시에는 최고 베테랑에 대한 예우에서 보여주는 큰 규모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20대의 폭발적인 커리어성적을 찍으며 MVP도 거머쥐었던 레지 잭슨이 31세 시즌인 1977년, 뉴욕 양키스와 FA계약을 맺으면서 받았던 평균 연봉이 52만 5천달러였음을 생각하면 36, 37세에 32만 5천달러를 수령하는 피트 로즈도 만만치 않게 받았다는 것인데 필리스가 로즈에게 첫 해 쥐어준 것으로 보이는 약 90만달러의 연봉은 로즈의 나이(38~41세)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였던 것이다. 필리스가 보는 로즈는 황혼기가 아닌 전성기였다는 것이다.

그런 필리스의 바램과 달리 로즈는 첫 해인 1979년을 제외하고서는 200안타 시즌에 실패하게 되었고, 0.8 근처에서 놀던 OPS도 0.7대, 급기야는 0.6대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고액연봉자로서 기회를 받아서인지 필리스에서의 5년(4년계약 후 1년은 추가로 단년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동안 826안타를 더 쳐내면서 당시 행크 아론의 통산 안타기록인 3,771안타를 넘기면서 통산 안타 단독 2위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그의 위에 있는건 당시에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 그 중에서도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타이 콥의 4,189안타 기록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1984년에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단년계약을 쥐어주면서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OPS는 .629로 처참했지만 해당 팀에서 역대 두 번째 4천안타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다 시즌 중간에 고향팀인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에 감격해서인지 이적 후 26경기에서 OPS .888을 찍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만 44세, 프로 통산 23년째 커리어에서 드디어 타이 콥의 기록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불멸의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물론 로즈는 신시내티로 넘어올 당시에는 감독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선을 짜는데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출전기회를 자의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겠지만 1984년까지 3년간 서부지구 내 꼴지다툼을 하고 있던 팀을 2위로 끌어올렸다는건 그저 본인의 기록욕심만을 위해 감독을 한게 아니었다는 반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통산 24년을 뛴 로즈가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1위 기록은 통산 최다 안타기록이 있고, 이를 만드는 데 있어 역할을 한 통산 경기출장수, 통산 타석수, 통산 타수 모두 메이저리그 1위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통산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임팩트도 임팩트지만 꾸준함이 동반되어야 만들 수 있는 기록이라 로즈가 선수시절에 얼마나 몸관리를 신경썼는지를 보여주는 엄청난 기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시내티로 돌아오기 이전에도 이미 통산 경기출장수로 1위를 찍었다는 점도 아무도 로즈에게 감독자리를 이용해 이득을 봤다고 하지 못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나에게 피트 로즈에 대한 첫 번째 이미지는 프로레슬링 단체 WWF(현제는 WWE)에 등장해서 닭 분장을 하고 등장한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야구선수인지도 몰랐다. 그냥 재밌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그 사람이 메이저리그 내에서 입지전적인 선수였다는건 나중에 야구에 관심을 가지고나서야 알게 되었다(메이저리그에서는 헌액이 안된 명예의 전당을 WWE에서는 헌액되기도 했다).

아무튼, 올해에 윌리 메이스가 시즌 중간에 세상을 떠났고, 로즈도 시즌이 거의 끝나자마자 유명을 달리했다. 로즈의 명복을 빈다.

  • 피트 에드워드 로즈

1941년 4월 14일,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출생

1960년 6월 8일, 신시내티 레즈와 아마추어 FA계약 체결

1963년 4월 8일, 신시내티 레즈 개막전에 메이저리그 데뷔, 신인왕 차지

1973년, MVP 수상

1978년 12월 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

1983년 10월 19일, 방출

1984년 1월 20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

1984년 8월 16일,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복귀

1986년 8월 17일, 프로 마지막 경기

1986년 11월 11일, 은퇴

2024년 9월 30일, 사망

통산 커리어: 3,562경기, 1,4053타수, 4,256안타(1,041장타), 160홈런, 1,314타점, 2,165득점, 1,566볼넷, 1,143삼진, .303/.375/.409, OPS .784, OPS+ 118, bWAR 79.5

수상실적 및 팀 성적: MVP 1회(1973), 신인왕(1963), 올스타 17회, 골드글러브 2회, 실버슬러거 1회, 타격왕 3회, 안타왕 7회, 월드시리즈 우승 2회, 월드시리즈 MVP(1975),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1976)

LA다저스, 아스날 팬입니다.

꼴페미가 전부 멸망해도 민주진영에 아무런 피해도 없거니와 이 지구의 평화에 유익이 될 뿐입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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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2 12:09
    베스트

    다저스 응원드립니다 

  • 2024.10.02 13:15
    베스트

    20년간 200안타 쳐도 못 깨는 기록 ㄷㄷㄷ 이 기록은 절대 안 깨질 것입니다.

  • 길도르킴 작성자
    2024.10.02 13:39
    베스트
    @내가사는이유

    최근의 야구는 많이 안타를 치는 것보다 득점이 많은 한방을 치는 것을 더 중요시하게 여겨서 200안타 달성자 숫자도 시간이 가면서 줄어들었기에 정말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뭐, 정말 50세까지 타자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온다면 모를까.

  • 2024.10.0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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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르킴

    요새는 똑딱이의 가치가 너무 떨어졌네요.. 놀란 라이언의 5714개의 탈삼진도 절대 안 깨질 듯 싶네요

  • 길도르킴 작성자
    2024.10.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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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사는이유

    타자는 선호유형이나 중점스탯이 바뀐거라 특별하게 강점이 뚜렷한 선수가 어린 나이에 메이저무대에 등장해서 오랫동안 실력을 유지한다면야 안타, 홈런 등 기록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투수는 긴 수명을 보장하는 선수가 사라진지 꽤 되었죠. 이제 투수로 20년?! 15년 뛰어도 오래 뛰었다고 할 정도로 팔꿈치와 어깨 혹사가 굉장해져서 투수관련 기록 중 누적기록 대부분은 불멸의 기록이 되었죠. 당장 승, 이닝, 탈삼진, 세이브 기록은 문이 닫혔다고 봅니다. 승, 이닝은 이미 1911년에 사이 영이 말도 안되는 누적기록으로 문을 닫았겠지만 탈삼진과 세이브는 1990년대 이후에 세운 것이라 더 위대해보입니다.

  • 2024.10.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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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르킴

    절대 안 깨질 것 중에 하나가 마이크 마샬의 구원으로 200이닝 던진 것은 절대 안 나오겠죠..

  • 길도르킴 작성자
    2024.10.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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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사는이유

    현대시대에 불펜투수 200이닝을 "혹사"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