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가 네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 두 남매를 키우셨다.
시작은 괜찮았다. 잠실에 아파트도 한 채 있었고, 동대문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하셨다.
그런데 젊은 미망인에게 세상은 쉽지 않았다. 엄마는 무리하게 사업을 하다가 집이며 가게며 다 날리게 되었고
그 이후로 월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다.
잠실에서 독립문 근처로 이사를 와서 처음에는 연립 주택에 살다가 경복궁역 근처의 한옥집에 작은 주방 딸린 방하나를 삭월세로 들어가 세 식구가 살았다.
사직동, 지금은 광화문의아침과 스페이스본이라는 주상복합이 들어선 자리가 예전에는 서촌처럼 한옥들이 들어찬 주택가였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는 순대국집이 있었고, 집 대문옆에는 쓰레기며 연탄재를 쌓아놓는 시멘트로 발라 놓은 네모난 구조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쩌다가 동전 백 원이 생기면 남들처럼 화약놀이를 하면서 돈을 없애기가 너무 아까웠다. 화약총은 여섯발 화약을 다 쓰면 끝이다.
콩알탄도 땅에 던져서 또래 아이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깔깔대는 재미가 있었지만 한번 터뜨리면 끝이니 아깝고 싫었다.
소중한 돈을 그렇게 일회성으로 날리기 싫어서 점토를 사와서 공룡을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었다.
다시 물을 묻혀 주물러서 비닐봉지에 싸놓으면 열번이고 백번이고 가지고 놀 수 있었다.
독립문에 살던 시절에 사직공원 옆 매동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달동네인 행촌동을 넘어서 사직터널을 지나는 길로 등하교를 했다.
하교길에, 그땐 너나 나나 다 가난했던 시절 누구하나 백원짜리 동전이 생기면 아끼고 아꼈다가 가장 포만감이 오래 가는 주전부리를 사먹었다.
엄선해서 고른 두 가지가 바로 맛참과 약과다. 누가 뭐래도 이 두 가지가 그당시 또래 친구들의 검증을 거친 가성비 최고의 간식이었다.
맛참은 다른 불량식품과 다르게 삼립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식빵의 귀퉁이들 토막내서 튀기고 설탕을 뿌린 과자. 바삭하고 달고 기름졌다.
그리고 이건 약간 호불호의 영역인데, 약과는 얼핏 보기에 다른 백원짜리 간식들에 비해 작다. 하지만 그 포만감은 클라스가 다른 것이다.
조금씩 떼어 먹으면 꽤 오래 먹을 수도 있고, 주머니에 쉽게 들어간다.
이제는 mz들에게도 디저트로 각광받는다는 약과. 그 약과를 보면서 떠오른 추억들이다.
지지리도 못살고 힘들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아련하면서도 묘한 웃음이 피어오른다.
댓글 15
댓글쓰기글이 참 예뻐요~~
글이 예쁘다는 표현, 뜻밖이네유~ ㅎㅎ 감사혀유~~
어렸을적에 고생하셨는데 밝은씨앗이 되셨군요. 저는 맛참을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소서...그래도 어머님 참 위대하시네요.
어릴때 상처입은 기억들도 많은데 세월 지나니 다 잊혀지고 희미해 지더라구유~~ 편안한 휴일 보내셔유~~
ㅋㅋㅋㅋㅋ 맞아유 이거 ㅎㅎ
어린시절 서사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과 비슷하네요. 🥲🥲🥲
점토를 갖고놀던 어린시절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정갈한 씨앗님이 되셨나봐요.
인터스텔라의 한장면
"안돼 어머니 잠실아파트는 안돼요"...
이런 따뜻한 글에서 고작 천박한 생각하는 나란인간 ㅜㅜ
ㅎㅎㅎ 그 잠실주공아파트, 동대문 가게... 아직 있었으면.. 부질없는 생각... ㅋ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혀유~~
종부세 내며 문재인욕하고 계실지도 🤣🤣🤣🤣🤣
우리 윤통님, 아니 거니님이 다 해 주실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고 어머님 고생하셨겠네예~
울 시어머님이랑 비슷한삶을 사신듯~
그시절 여성가장으로써 삶이 녹록지 않았겠죠 😔😔
힘든 시절이었어유. 그래도 그땐 낭만이 있었구나 하면서 추억으로 회상해 봅니다.
편안한 휴일 되셔유~~
맛참 저도 처음 보는데 맛있겠어요... 밝은 씨앗님 닉네임이 새롭게 보이는 글이네요. 씨앗이었던 어린 시절, 그래도 밝게 지혜롭게 살아오신 그 세월이 느껴집니다!
약과를 보면서 떠오르던 어릴적 기억들을 끄적여 봤어유 ㅎㅎ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놀던 기억이 많아유.
커서는 교보문고에서 종로3가까지 이어지던 피맛길, 청진동 들락거리며 술마시던 기억
가끔 추억 이야기 꺼내 볼께유 ^^